방송 장면 갈무리
방송 장면 갈무리KBS

김영하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는 그가 처음 떠났던 외국, 중국 여행에 대한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바야흐로 1980년대 아직 여행 자유화가 시작되기 전, 대학 학생회 간부였던 김영하는 운동권 젊은이들에 대한 유화책 차원에서 마련된 중국 여행을 간다. 학생들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해 안기부 직원과 형사까지 동행한 여행이었다.

대학에서 사회주의 사상의 세례를 받은 당시의 청년들에게 중국은 설레는 곳이었다. 그래서 베이징에 도착한 김영하와 후배는 몰래 일행을 빠져나와 북경대 학생들을 접촉했다. 사회주의 조국에 사는 젊은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현실의 북경대 학생은 기숙사 방에 마오쩌둥의 초상화 대신 미국 지도를 붙여 놓고, 자신의 꿈이 미국으로 가는 것이라 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제 미국과 세계적 주도권을 다투고 있는 중국의 젊은이들은 달라졌을까.

다큐를 보면, 이들은 여전히 미국행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이제 그들은 혹독한 남아메리카 밀림을 지나는 밀입국도 불사하고 있었다.

무엇이 중국의 젊은이들을 그 멀고 먼 여정에 자신을 던지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 중국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젊은이들도 기회만 있다면 자신의 고국을 떠나고 있었다. 동북아시아의 강국 중국과 일본,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엑소더스'의 길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0월 24, 31일 방영된 KBS <다큐 인사이트 엑소더스 2부작>이 그 길을 따라나섰다.

미국으로 가려는 중국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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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접경지대인 멕시코 국경 지대, 그곳에는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기회를 노리는 밀입국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런데 대다수 남미 국가 사람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중국인들이 눈에 띈다.

3만 7439명, 2023년 밀입국을 시도하다 체포된 중국인들의 숫자다. 2021년 689명으로 1년 사이에 무려 54배나 급증했다. 밀입국의 여로는 만만찮다. 최근 밀입국자에 대한 미국의 대처가 엄중해졌기에 더욱 그렇다. 우선 비자가 필요치 않은 태국을 거쳐 중국인들은 남미로 건너간다. 그중에서도 콜롬비아가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밀림과 강을 건너야 한다.

이 밀입국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거 마약 카르텔에 속해 있다 이제는 밀입국 중개인이 된 이들에게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많은 돈을 건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뱀들이 들끓고, 비만 오면 범람하는 계곡 등을 목숨을 걸고 지나가야 한다. 종종 산길에서 목숨을 잃은, 혹은 강을 건너다 떼로 목숨을 잃은 중국인들의 기사가 등장한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도 국경을 건너다 체포되면 본국으로 송환된다.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가려는 이들이 상당하다. 중국 경제가 최근 침체를 겪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친다. 2019년 3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던 베이징, 하지만 불과 4년 만에 30%가 급감했다. 중국은 지난해 6월 청년실업률이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는 2024년 현재 중국 배달업 종사자를 약 2000만 명으로 추정한다. 당연히 청년 사이의 경쟁은 치열해지는데, 물가는 고공행진 중이기에 사람들이 비상구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과거 전 세계의 유명 브랜드의 상당수 공장이 중국에 있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은 더 이상 싼 노동력을 대표하는 국가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임금은 두 배 가까이 올랐고, 많은 외국 기업이 중국에서의 공장을 더 싼 임금이 보장되는 베트남 등으로 옮기고 있다. 공장이 사라지자 공장을 기반으로 하던 지역 경제는 무너져 갔다. 미국에 맞서 국제 경제와 정치에서 주도권을 거머쥐려 했던 중국의 의지는 수출입에 있어 대중 규제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코로나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처다. 상하이 봉쇄처럼 제로 코로나 정책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에 머물던 외국인들의 발길을 돌리도록 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중국인 해외 망명 신청자가 95만 명에 육박한다. 자산가들도 중국을 떠나는 중이다. 중국 정부는 첨단 산업을 발전시키고 러시아와 무역 규모를 늘리는 등 변화하는 정세에 대처하고 있지만 고국을 떠나 밀림을 헤매며 미국으로 향하는 자국민들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정체된 조국을 떠나 삶의 활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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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젊은이들도 고국을 떠난다. 일본의 젊은이들 역시 자신의 조국이 이제 그다지 희망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인들이 미국행을 고집하는 것과 달리 뉴질랜드나 베트남으로 향하기도 한다.

1990년대 거품 경제 붕괴 이후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30년'이라 칭한다. 1990년대 이후 30년간 일본은 장기적인 불황의 늪에 빠져 있었다. 2024년 2월 일본의 주가가 '거품 경제' 이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드디어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한 걸까.

하지만 다큐에 등장한 전문가는 고개를 젓는다. G7, 이른바 선진국 중 일본만이 유일하게 임금이 정체됐다는 것이다. 경제 재생을 내세운 아베노믹스, 그 후 10년 엔저를 통해 기업은 살아났을지 모르지만 그게 고용과 국민 생활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낮은 임금, 불안한 일자리, 침체된 경제 속에서 청년들은 저마다 호구지책을 찾아 나섰다. 잃어버린 30년, 일본의 젊은이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조국 일본에서 삶의 희망을 찾은 적이 없었다.

뉴질랜드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일본인 여성, 이곳에서는 아르바이트만 해도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보수적인 일본과 다르게 개방적인 이곳의 분위기가 삶의 활기가 된다고 했다.

베트남 등으로 향하는 일본 젊은이들도 있다. 이들은 비록 이제 더는 희망을 찾기 힘든 일본보다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베트남과 같은 국가에서 자기 미래의 희망을 찾는다.

상황은 다르지만 조국을 떠나는 중국과 일본의 젊은이들, 그들은 역설적으로 '국가의 존재'를 묻는다. 높은 청년 실업률, 아버지 세대보다 더는 잘 살 수 없는 우리의 젊은이들도 하고 싶은 질문일 것이다.

다큐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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