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남녀공학 전환 움직임에 반대하며 학생들이 시위중인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교정의 모습.
13일 남녀공학 전환 움직임에 반대하며 학생들이 시위중인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교정의 모습. 권우성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덕여자대학교 학생들이 들고 일어섰다. 이들은 지난 11일부터 대학본부가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공학 전환 논의를 규탄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학과 점퍼(과잠)를 벗어 바닥에 늘어놓는 '과잠 시위'를 하는가 하면 수업을 전면 거부하고 캠퍼스 곳곳에 붉은 스프레이로 '공학 전환 결사반대' 등을 써놓았다. 동덕여대 졸업생들은 14일 학교 앞에 트럭 전광판을 보냈는데, 여기에는 "협의 없는 공학 전환 동문들도 규탄한다" 등의 문구가 적혔다.

시위가 시작된 건 '공학 전환' 논의 때문이다. 앞서 동덕여대는 이달 5일 학교 발전 계획을 수립하면서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했다. 학교 측은 "결정된 건 없다"고 해명하면서도 "이슈가 불거진 만큼 학생들과 충분한 토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학생들은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논의를 진행했다며 반발했다. 그러면서 '여성만을 위한 공간'을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덕여대뿐만 아니라 성신여대에서도 외국인 대상으로 개설된 국제학부에 외국인 남학생이 입학할 수 있다는 모집 요강이 공개되면서 학생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교내 곳곳에는 '자주 성신의 주인은 여성이다', '국제학부 남학생 입학 결사반대' 등의 문구가 스프레이로 쓰여 있고 과잠 수백 개가 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시위에 나선 학생들이 한 영화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국내 개봉한 적 없는 이 영화의 이름은 <프리티 펀치>. 현재(15일 기준) 제작사 측의 요구로 유튜브에서 내려갔지만, 동덕여대 학생들은 이 영화에 "영화처럼 여성 학교를 지켜내자"로 릴레이 댓글을 달았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왜 이 영화를 소환했을까.

우리끼리 지낼 권리

 영화 <프리티 펀치> 스틸컷
영화 <프리티 펀치> 스틸컷Alliance Communications

1998년에 만들어진 영화 <프리티 펀치>의 배경은 1963년 미국의 여자기숙학교 미스가더즈예비학교다. 원제는 < 파업(Stike!) >인데, 여자기숙학교가 재정난 때문에 이웃의 세인트 아이브스라는 남학교와 합치게 된다는 소식에 발칵 뒤집어진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60년대의 미국은 지금보다 더 여학생에게 '예쁘기만' 한 역할을 요구했다. 예의와 범절을 잘 배워 좋은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고 아이를 정성껏 키워내는 것을 덕목으로 하던 시기다. 여학생에게 다른 꿈을 꿀 권리 같은 건 주어지지 않던 시대였지만, 미즈가더즈의 학생들은 미국 명문대인 MIT 입학을 꿈꾸고, 아지트에 모여 "서로의 야망을 응원하자"고 외친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와 이사회 측은 일방적으로 남녀공학을 추진하려 한다. 여학생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묻지 않는 일방 행정에 반발한다. 또 '여성의 공간'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유일하게 여성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성들의 공간이자 최소한의 교육 공간으로 '미스가더즈예비학교'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투쟁을 선포한 여학생들은 창문에 시위 현수막을 내걸고, 손에 스포츠 라켓을 들어 올린 채 저항한다. 영화 속 여학생들은 "남성의 권위가 없으면 여성은 더 강해진다", "남자들이 학교를 장악하면 우린(여성) 매장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에 이사회가 물러서고, 결국 남녀공학 계획은 취소된다.

여대의 존재이유

 영화 <프리티 펀치> 스틸컷
영화 <프리티 펀치> 스틸컷Alliance Communications

여성들만 존재하는 학교가 왜 필요한 걸까. 영화 속 미즈가더즈의 학생들, 그리고 덕성여대 학생들, 또 성신여대 학생들은 왜 남녀 공학에 반대하는 걸까.

동덕여대 학생들은 학교 측의 일방적인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비판하며 동시에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성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여대의 사명이 있고 이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이라는 '특성화 요소'를 일방적으로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통합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편에 섰던 교장 선생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남자들이 학교에 깃발을 꽂으면 우리들은 묻힐 것이다. 그건 현실 세상처럼 교묘하고 은밀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부장적 구조가 공고한 사회에 나가면 여성들은 이에 길들여질 가능성이 높은데 학교에서라도 가부장성에 대항할 힘을 키우고 개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어 "소녀들에겐 남성들의 지배권에서 벗어나 성장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2024년의 대한민국을 똑같은 선상에서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을 재단하고 역할을 규정하려는 가부장적 속성이 남아있기에 2024년도의 여대생들 역시 여전히 자신들의 공간을 지키려 애쓰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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