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룩킹포> 스틸컷
스튜디오팔삼구
03.
이쯤 되면 영화에도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훨씬 더 쉽지 않았다. 그나마 절친한 중식이 밴드의 음악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수 차례 수정이 더해졌다. 배우를 섭외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가장 마지막에 섭외되었다는 정하담 배우의 경우에는, 영화 <스틸 플라워>(2016)에서 만나 함께 작업했던 인연으로 지금까지 알고 지냈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
현장의 촬영 환경 역시 쉽지 않았다. 시나리오와 제작, 연출, 촬영에 액션까지 음악과 사운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역할을 감독 본인이 해낸 것만 봐도 가늠할 만하다. 여기에 정하담 배우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 작품 정말 주변에 스크립터, 촬영 이런 것도 하나도 없이 감독님 혼자 다 하시다 보니 촬영 중간에 저한테도 사운드를 시킨 적이 있었거든요? (웃음) 다른 배우가 촬영할 때 여기서 이렇게 들고 있으라면서... 그런데 이런 것들을 현장에서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시나리오도 중간에 현장에서 막 바뀌고."
내게는 이 모든 일련의 작업이 절실함처럼 다가온다. 실제로 김태희 감독은 이 작품을 기점으로 오래 알고 지내온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한번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해보고 싶은 것들 대부분 해봤고,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라고. 하지만 이런 방식만을 반복하며 나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의 정리다. 정리하고 묻고 지우기 위해서가 아닌 더 잘 매만지기 위한 행위.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반동(反動)과 같은 작업. 흡족할 만큼의 환경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잘 시도되지 않는 장르에 도전하기까지 굳이 지금, 이 영화 <룩킹포>를 만들어야 했던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04.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란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빛날 테니까
삽입곡 '나는 반딧불' – 중식이 밴드
굳이 특정하자면, 이 영화는 뮤지컬 장르의 하위 장르에 해당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에 속한다. 대중음악을 주요 소재로 이야기를 완성해 낸 작품을 말한다. 최근에는 염정아, 류승룡 배우가 주연을 맡아 출연했던 <인생은 아름다워>(2022)가 있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 작품에서는 스스로를 '촌스락(촌스러운 락)'이라는 장르로 정의하는 '중식이 밴드'의 음악이 중심이 된다. 현실적이고 솔직한 가사로 채워진 밴드의 음악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정체성이다.
극 중 감독의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던 무명 연기자들의 꿈이 그려지는 지점에서 흘러나오는 '나는 반딧불'은 인물이 놓인 현실과 음악의 가사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대표적인 곡이다. 스스로에게 지나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다 무력감을 느낀 이들이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 다시 나아가겠노라 다짐하는 노래다. 이 곡에 한 번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다. 문화와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이들 모두의 이야기. 지금 자신의 완성된 작품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찾아 헤매는 감독 역시 여기에 놓인다.
그 외에도 영화와 함께 호흡하는 곡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이야기의 또 다른 한 축으로 존재하는 'Rock으로 우주 정복'의 내러티브에서 직접 출연하는 중식이 밴드의 모습 또한 만나볼 수 있으니,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어딘가에서 관객들은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