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에 '검증된 신인 DJ'가 나타났다. MBC에서 프로그램을 맡는 일은 처음이지만, 이미 '배철수의 음악캠프'(아래 배캠)에서 휴가를 떠난 배철수를 대신해 스페셜 DJ로 여러 차례 나섰기에 부스가 익숙할, 이상순 DJ 이야기다.

지난 4일 오후 4시부터 본격적인 방송을 시작한 MBC FM4U의 프로그램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는 잔잔한 프로그램이다. EBS의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후 12년 만에 이상순이 라디오 부스에 복귀해 이 프로그램을 맡는다는 소식은 꽤 파격적이었다. 첫 방송에서 본인이 말한 것처럼 이상순은 '낮보다는 심야에 어울리는 목소리'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오후 라디오의 공식'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오후 2시부터 4시를 거쳐 6시까지의 시간은 졸음을 쫓기 위한 신나는 DJ의 목소리, 신나는 음악이 중심이 되는 시간대였다. 잔잔한 목소리, 그리고 잔잔한 음악이 함께하는 이상순이 만들어 줄 오후는 어떤 분위기일까.

다른 채널 시끌벅적한데... 차별화된 '잔잔함'

 MBC FM4U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 캡처
MBC FM4U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 캡처MBC

"잘 모르겠어요. 제가 (오후) 네 시에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엄청 했어요. 그것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고요. 저는 심야 라디오를 좋아하니까요. 그렇지만 네 시도 나른하게, 저 같은 스타일로 진행을 해도 좋아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라는 기대감에 이 시간을 맡았어요."

이상순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전한 말이다. 제주도 거주 시절 라디오 DJ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고, 본인 역시 라디오에 대한 열망이 컸지만 거리의 문제로 성사되지는 못했다는 이상순. 서울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MBC가 자신을 '낚아챘다는' 이상순의 말답게, 이상순은 그간 보여준 진솔한 매력을 바탕으로 라디오 청취자들의 기대를 받아왔다.

앞서 이상순은 2년 전과 지난해 '배철수의 음악캠프' 스페셜 DJ로 나서면서 청취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본인은 성격이 급하다고 손사래를 쳤다지만, 그 말과는 대비되는 느긋한 그의 목소리와 여러 장르를 오가는 선곡은 '배캠' 청취자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런 기조가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에서도 이어진다. 이상순의 이미지가 그대로 묻어나는 듯한 선곡에 느긋하고 잔잔한 이상순의 말이 이어진다. 첫 방송에서 전화로 "지금 같은 텐션으로는 (이 시간대에) 안 된다"고 타박했던 작곡가 정재형의 평가도 있지만, 청취자로서는 만족스럽다.

그래서일까. 다른 방송국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오면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의 매력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 시간대 다른 방송국에서는 코미디언·예능인을 대거 기용해 재미있는 사연을 읽거나, 게스트와의 만담을 주고받는 방송을 주로 편성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가 다른 모습을 지녔다는 것은 잔잔한 매일 코너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매일 코너만 하더라도 청취자들이 직접 적어낸 취향 담긴 음악을 사연과 함께 선곡해 주는 '취향의 공유', 그리고 청취자들에게 간단한 상식 문제를 내는 OX퀴즈인 '상식의 순기능', 줄여서 '상순 퀴즈'가 자리 잡았다.

완벽한 하루를 부탁해

 이상순
이상순안테나

DJ 이상순의 매력은 게스트가 함께할 때다. 두 번째 방송에서 '반쪽' 이효리와 함께할 때에도, '출발! 비디오 여행'을 오랫동안 진행한 김초롱 아나운서와 영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목소리 데시벨이 많이 오르지 않는다. 도리어 함께하는 상대의 목소리가 분위기에 취해 점점 커지는 것을 들으며 괜히 또 웃음이 난다.

고정 게스트가 함께하는 주간 코너는 두 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나눌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었는데, 수요일에는 록 밴드 마이 엔트 메리의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정순용(토마스 쿡)과 함께 'X세대'의 음악과 에피소드를 나누는 시간이, 토요일에는 조아름 음악작가와 함께하는 '이주의 노래'가 편성되었다.

두 주간 코너 모두 음악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나아가 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가 가지는 정체성을 나타낸 셈이기도 하다. 실제로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에서는 라디오에서 자주 듣기 힘든 인디 밴드의 음악이나 최근 라디오에서 통 듣기 어려웠던 노래들도 자주 들려온다.

그런 선곡과 어느 때보다도 잘 어울리는 것이 이상순의 목소리와 말이다. 비록 방송에 출연했던 이효리도, 정재형도 "라디오는 목소리가 커야 한다, 늘 일정하면, 다운되어있으면 안 된다"라며 조언하지만, 어쩌면 그의 목소리와 이야기가 '이상순표 라디오'에 가장 어울리는 화룡정점인 셈이다.

물론 그는 '공부해야 하는데 졸리다'는 초등학생 청취자에게 "여기에 있으면 더 졸릴 것"이라며 다른 채널로 돌리기를 권하는, 특히 요즘 파이가 부쩍 작아진 라디오를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이야기를 꺼내는 엉뚱함도 있다. 동시에 이 시간대 시끌벅적하지 않은 라디오를 찾길 원했던 청취자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매력이 크다.

외근이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은 직장인에게도, 바쁜 일을 미리 끝내고 커피 한 잔과 함께 라디오를 켠 청취자에게도,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는 프로그램 말대로 부대끼지 않는 편안하고 완벽한 오후, 나아가 하루를 만들어주는 셈.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가 시끌벅적한 도심 한복판 공원과 같은 잔잔하고 편안함을 오랫동안 가져다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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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이야기를 찾으면 하나의 심장이 뛰고, 스포츠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사람. 철도부터 도로, 컬링, 럭비, 그리고 수많은 종목들... 과분한 것을 알면서도 현장의 즐거움을 알기에 양쪽 손에 모두 쥐고 싶어하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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