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니 공연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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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구를 지나자 무대 바닥에는 이종 종합격투기(UFC)의 케이지를 연상시키는 팔각형 댄스플로어가 깔려있다. 천장에는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볼법한 4대의 모니터가 설치됐다. 이런 장치는 공연장 어디에서도 출연자의 모든 동작을 관람하는데 요긴해 보인다. 중계 화면은 동작을 단순히 재현하는 창구로만 쓰지 않는다. 고도의 편집기술이 집약된 쓰리디(3D)가 요동하는 영상들은 보는 이의 혼을 쏙 빼놓는다. 여기에 카메라 감독이 찍은 찰나는 전광판에 동시에 송출된다. 이를 본 관객들은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처음 입장할 때, 무대에 설치된 카메라의 방향은 관객이 움직이는대로 따라간다. 사람들이 걷는 방향에 맞춰 자유롭게 방향이 전환된다. 최첨단 기술로 만든 반응형 촬영 장비로 관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시작이 반이다. 이런 장비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천장에 설치된 것까지 총 5대의 카메라는 공연장에서 좀처럼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카메라가 얼굴뿐 아니라 눈동자에 초점을 맞출만큼 정교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에 감탄한 것도 잠시. 공연장에서 촬영된 모든 장면은 이미 착석한 이들에게 소스로 제공된다. 실제로 모니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몇몇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린다. 반면에 어떤 이는 신기한 장면을 놓칠 수 없다며 핸드폰으로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막이 오르기 전, 공연장을 울리는 안내 멘트가 인상적이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관객들은 편하게 촬영해도 좋습니다."
지금까지 연례적으로 들었던 것과는 정반대다. 공연 도중에 핸드폰을 꺼내서 촬영할 수 있다니. 게다가 셔터 소리만 낮춘다면 마음껏 찍으라는 얘기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과한 서비스에 놀란 관객들은 처음에 주저하며 옆 사람 눈치를 살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너도나도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무용수와 관객을 쫓아가는 촬영감독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이 모든 상황이 놓친 장면을 다시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자신이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각오쯤은 하고 있어야 한다.
광고 천재 이제석의 포스터가 떠오른다. "적에게 겨누는 총구가 결국에는 자신의 뒤통수에 있다"는 바로 그 장면. < Pan & Opticon >은 인간의 기술화, 기술의 인간화 등이 절묘하게 뒤섞여 동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과 기술의 경계를 해체시킨 현대사회는 기술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다. 편리와 불편 사이를 오가는 이율배반은 발레의 형식을 빌려 완성시켰다. 그런데 작품을 제작한 이해나 안무가는 무용 중에서도 기술에 가장 보수적인 발레에서 왜 파격을 시도했을까?
"여전히 고전적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창작발레의 한계에 도전하고 싶어요. 기존에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보다 이머시브하게 관객을 개입시킵니다"
# 현대 기술이 집약된 무대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