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고래와 나> 스틸 이미지
SBS
시작과 함께 카메라는 태평양 섬나라 통가로 향한다. <아바타>의 '톨쿤' 모델이 된 혹등고래들이 바다 곳곳에서 출몰한다. 가족과 유소년 관객 기호에 맞춤형으로 고래 무리가 일상에서 자주 보이는 행동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거대한 몸집의 혹등고래가 구애와 다툼, 놀이에서 구사하는 온갖 행태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혹등고래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수면 위로 육중한 덩치를 솟구치며 물보라를 흩뿌리는 '브리칭'의 장관, 경쟁자를 밀어내기 위해 꼬리와 지느러미를 활용한 동작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신경전이 공들인 촬영으로 지루할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히트 런', '스파이홉', '에스코트' 등 다채로운 기술은 눈요깃거리가 아니다. 혹등고래가 고도로 발달한 의사소통은 물론 인간 못지않은 생활문화를 보유함을 설명하려는 의도다. 마침표를 찍는 건 멀리 미국 글로스터 항구까지 찾아가 고래 전문연구자와 만나는 장면이다. 1970년대 처음으로 혹등고래 소리가 그냥 소음이 아니라 '노래'라는 것을 발견했던 회고와 함께 외계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에 실려 지구의 메시지를 전하는 음반에 고래의 노래가 실리게 된 배경이 해설된다. 최초로 비-인간 동물이 가수이자 시인으로 공인된 순간이다.
이제 주연이 바뀔 차례다. 제작진은 아프리카 대륙과 인접한 섬나라 모리셔스로 향한다. 그곳에는 소설 <모비딕>의 주인공이라 할 향(유)고래가 기다린다. 거대하고 흉포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이 경이로운 생명체는 모계사회를 중심으로 생활한다. 모리셔스 앞바다를 두셋의 모계 공동체가 분점하며 교류한다. 고래는 동종이라도 집단에 따라 고유의 '사투리'를 구사하며, 필요한 경우 통역 겸 중재자를 통해 소통해 나간다.
유명 해양 다큐멘터리 <오션즈> 촬영을 맡은 프랑스 사진가는 자신이 처음 이 경이로운 존재들과 대면했을 때 기억을 회상하며, 향고래 공동체가 '코다' 체계로 대화하는 놀라운 장면을 제공한다.
혹등고래가 뛰어난 가수라면, 향고래는 수다스러운 이웃 격이다. 짧은 어휘 조합으로 쉴 틈 없이 진행되는 복잡하고 정교한 의사소통 방식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해저 2만리> 등에서) 잔인한 포식자로 그려진 선입견과 달리 공동육아를 하며 '마그리트 포메이션'이라는 노약자 보호 대형으로 위기에 대처하는 모범적인 공동체 생활 실태가 소개된다.
의인화 절정은 3/4년 1번 출산하는 향고래 특성상 '금쪽이'로 양육되는 어린 개체 중 이제 생후 1달 된 '미리암' 관찰기이다. 새끼고래가 어미 젖을 빠는 진귀한 장면이 공개된다. 4살 때까지 하루 오백 리터 모유를 수중에서 어떻게 섭취하는지 상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순간에는 그저 말을 멈추고 멍하니 볼 수밖에 없다. 미리암이 성체가 되기 전까지 겪게 될 온갖 위험과 함께 향고래 공동체가 '유치원'을 꾸려 규범과 지혜를 전수하는 교육과정 역시 흥미를 자극한다.
우리가 고래에 대해 알지 못했던 진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