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배우 송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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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는 인기는 많아도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떤 분들은 영혼을 갈아서 연기를 한다는데 저는 솔직히 그렇게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30대 중반부터 연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돼 너무 감사하다."
지난 6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배우 송승헌이 출연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어느덧 48세로 데뷔 29년차가 된 송승헌은 오랜만에 출연한 신작 영화 <히든 페이스>로 다시 관객들 앞에 돌아왔다.
송승헌은 최근 MC 조세호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깜짝 방문해 화제가 된 일화를 전했다. 놀랍게도 송승헌은 이전까지 조세호와 사적인 친분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조세호는 한 시사회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송승헌의 결혼 축하 인사를 듣고, 혹시나 실례가 될까 많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청첩장을 전했다고 한다.
송승헌은 친분이 없는 조세호의 결혼식에 흔쾌히 참석한 이유에 대해 "세호씨의 결혼식에 참석 못하면 왠지 뒤처지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아니나 다를까. 유명 연예인들이 줄을 서가며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갈 때는 클럽에서나 볼 법한 입장 팔찌를 차야 한다고 하더라" 는 뒷이야기를 전해 폭소를 자아냈다.
송승헌은 "조세호의 결혼식에 못갔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저는 초대받아 갔다왔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앞으로 우리 대중문화계는 조세호의 결혼식을 다녀온 사람과 안 다녀온 사람으로 나뉠 것"이라고 농담을 던지며 끝까지 조세호를 당황하게 했다.
대충 사진 보냈는데, 6000:1 경쟁 뚫고 오디션 합격
송승헌은 1990년대 모델로 처음 데뷔했다.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짙은 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서구적 미남으로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동년배인 배우 김희선은 "중학교때 인근 학교를 다녔는데 학창시절부터 송승헌의 인기가 굉장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송승헌이 어버이날에 직접 공개했던 부모님의 사진에서 미남 DNA가 유전의 결과물임을 증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작 송승헌은 데뷔할 때도 본인이 연예인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고. "TV에 나오는 분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정해져 있는 줄 알았다. 저는 사람 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한 성격의 사람이었다"고 했다.
송승헌은 어느 날 대학로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패션계 관계자의 눈에 띄어 명함을 받은 것이 인연이 돼 연예계에 입문하게 됐다. 이후 명함을 준 해당 회사에서 나온 신인모델 모집공고를 본 송승헌은, 친구들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마지못해 당구장에서 당구 큐대를 든 채 일회용 즉석카메라로 촬영한 프로필 사진을 회사에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성의 없어서 오히려 튀어보인 사진은 관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송승헌은 무려 6천여 명의 지원자가 몰린 오디션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하게 한다. 또한 성수동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최종면접을 통해 송승헌이 처음 인연을 맺게 되는 인물들이, 훗날 또다른 톱스타가 되는 소지섭과 원빈이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결국 송승헌은 최종면접에서 소지섭과 함께 발탁돼 '스톰'의 전속모델로 활동하게 된다. 송승헌은 소지섭과 함께 새벽에 자신들의 모습이 처음으로 매장에 걸린 대형광고를 보고 신기해했던 신인 시절를 회상했다. "무뚝뚝하던 소지섭이 그 광고를 보고는, 너무나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게 '형, 이제 우리 뜨는 건가?'라고 하더라"는 일화를 전하며 웃었다.
우연한 데뷔와 함께 송승헌은 배우로까지 데뷔하게 되면서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연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송승헌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으로 꼽히는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은 신동엽, 우희진, 홍경인, 이제니 등 당대의 라이징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큰 인기와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송승헌의 연기 데뷔는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도 기억난다. 첫 촬영 때 TV에서만 보던 제니가 내 눈앞에 있더라. '안녕, 제니야'라는 짧은 대사를 해야 하는데 그만 머리가 하얘지더라. 너무 떨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며 아찔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현재의 연예계는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발전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상황은 열악했다. 방송도 연기도 전혀 준비되지 못한 '생초짜'였던 송승헌은 "카메라가 저를 잡아먹을 듯 거대해보였다. NG를 수십 번도 넘게 냈다. 스태프들의 수군거리는 표정이 보이는데 땀은 나고, 결국 저 때문에 촬영이 중단됐다"고 털어놨다.
송승헌은 당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연기는 내 길이 아닌 것 같다. 집에 가겠다"고 이야기 했을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결국 어찌어찌 상황을 수습해 첫 촬영을 마쳤지만 "연기 준비가 전혀 안된 상황에서 하루하루가 힘들었다"는 게 신인 시절에 대한 송승헌의 회상이다.
"20대의 송승헌에게 연기란 그저 직업이었다"
험난했던 데뷔전에도 불구하고, 송승헌은 이후 배우로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데뷔 5년차인 2000년에는 송승헌의 인생작으로 꼽히는 드라마 <가을동화>를 만나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게 됐다. 송혜교와 호흡한 <가을동화>는 최고 시청률 42.3%를 기록하며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초창기 한류드라마 열풍의 주역으로 꼽혔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송승헌의 이름은 국내를 넘어 해외 팬들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높아지는 인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송승헌은 "내가 저분들한테 이렇게까지 환호를 받는게 맞나"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고. 송승헌은 인기와는 별개로 오랫동안 배우로서 연기력의 깊이나 다양성 측면에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화려했던 자신의 20대를 뒤돌아보던 송승헌은 "사실 그때는 연기가 재미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20대 때의 저에게 연기란 그저 내 돈벌이, 직업이었다. 현장에서 욕을 먹더라도 오늘만 버티면 또 출연료가 들어오니까. 일할 때는 너무 힘들고 피곤한데, 촬영만 끝나면 멀쩡해지고 신이 났다. 그래서 저에게 무슨 병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즐기면서 했어야 하는데,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신나지가 않았다. '난 이거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렇다고 멈추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와버린 느낌이었다"고 내적 방황을 겪던 젊은 시절을 회상했다.
배우로서의 길에 자신감과 확신이 부족했던 모습은, 주변의 평판에도 한동안 나쁜 영향을 미쳤다.
"안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놈 왜 저렇게 싸가지가 없어?' 오해도 많이 받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화려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20대 때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송승헌의 배우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우연히 한 해외 팬이 보낸 팬레터를 읽게 된 송승헌은 "당신 때문에 한국을 알게 됐고, 당신의 작품을 보면서 울고 웃는다. 누군가에게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스스로에게 감사하면서 살아달라"는 이야기를 읽고 큰 감명과 깨달음을 얻었다.
"마지막 문구를 읽고 제 자신이 굉장히 창피하게 느껴졌다. 내 직업이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는 걸 느꼈다"고 밝힌 송승헌은 "그 편지 한 통에 스스로가 너무 쪽팔리더라.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싶어 그때 이후 연기자로서의 자세가 바뀌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제야 연기 재미 조금씩 알아가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