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없이 방 안에 앉아 좋은 것을 보고 맛난 것을 먹는다. 고요하고 안온한 시간을 즐긴다. 그러다 보면 온 세상이 내 방과 같이 평화로운 것만 같다. 내 몸이 편하면 저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이 안온하다. 퍼붓는 빗줄기를 대하는 감상도 마찬가지. 온기가 도는 방에 앉아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일은 운치가 있다. 폭우 속에 집을 잃은 수재민이며 애써 지은 농작물이 떠내려갈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내다보는 건 번거롭기만 하다.
마음도 관심도 쉬이 고립된다. 제 자리에 눌러 붙어서는 볕이 좋은 방향으로만 가지를 친다. 매체를 통하여 전해지는 이야기는 화려하고 커다란 것뿐. 그를 가만히 보다보면 누구 말처럼 "돈 많이 벌고 TV 나오고 유명해지고 그런 삶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 소실되는 게 있다는 걸 우린 너무 쉽게 잊는다. 애써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려오지 않는, 바람결에 실리지 않고서야 전해질리 없는, 그런 목소리를.
그러고 보면 많은 목소리가 있었다. 어느 높고 반듯한 빌딩 앞에 쳐진 텐트에서, 또 도심 높은 건물 옥상 위에 올라선 누구에게서, 그도 아니면 통근길 지하철을 가로막고 소리를 내지르는 어떤 이에게서 그런 목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다.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일단의 사람들과 크레인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는 누구들과 또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고 행진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목소리를 들었던 것만 같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를 귀 기울여 본 적 드물다. 매체가 전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여서, '돈 많이 벌고 TV 나오고 유명해지고 그런 삶'을 살지 않는 이들이어서 나는 그를 외면해온 것일까.
세상에 흩뿌려진, 관심 간절한 목소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