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까지 한국 남자농구는 '슛 도사' 이충희의 현대전자와 '컴퓨터 슈터' 고 김현준의 삼성전자, 그리고 '농구 대통령' 허재가 이끄는 KIA자동차의 삼파전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연세대와 고려대로 대표되는 대학 농구팀의 실력이 일취월장하며 실업팀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 농구의 선전으로 10대~20대의 젊은 세대와 여성들 사이에서 농구의 인기가 급증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마이클 조던과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등 NBA 슈퍼스타들로 구성된 '드림팀'이 올림픽 무대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들은 차원이 다른 실력으로 여유 있게 금메달을 따냈고 농구팬들에게 '신세계'를 보여줬다. 여기에 1992년 소년챔프를 통해 국내에서 첫 연재를 시작한 전설의 농구만화 <슬램덩크> 역시 한창 타오르던 농구 열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특정 분야가 대중들의 관심을 끌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바로 방송국이다. 실제로 당시 각 방송국에서는 농구의 인기가 높아지자 농구대잔치 주요 경기들은 물론이고 대학 농구 경기들까지 중계하면서 농구 팬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았다. 그리고 지난 1994년 초 MBC에서는 농구의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장동건과 심은하, 손지창 주연의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제작·방영했다 .

  심은하는 다슬이 역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청춘스타로 등극했다.
심은하는 다슬이 역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청춘스타로 등극했다.MBC 화면 캡처

농구 잘하는 청춘스타들

스포츠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당 종목에 대한 출연 배우들의 숙련도가 필수적이다. 대역이나 카메라트릭 만으로는 시청자들의 눈을 속이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승부> 역시 농구 선수 역을 소화할 수 있는 키 크고 운동 능력 좋은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됐다. MBC 입장에서 다행스러웠던 부분은 당시 청춘스타로 불리던 배우 중 농구 경험자들이 제법 많았다는 점이다.

주인공 윤철준 역의 장동건은 1992년 MBC 2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최고의 청춘 드라마였던 <우리들의 천국> 시즌2에서 김찬우와 함께 투톱 주인공으로 캐스팅될 정도로 MBC에서 강하게 밀어주던 신인이었다. 장동건은 <마지막 승부>에서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대학 농구의 약체였던 한영대를 농구대잔치 우승으로 이끄는 포인트가드 윤철준을 연기하면서 199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편찮으신 어머니의 병원비 때문에 혼자 거액의 장학금을 받고 다른 대학으로 진학한 이동민을 연기한 손지창은 캐스팅 당시 최고의 청춘스타였다. 데뷔 초부터 김민종과 함께 가수와 배우를 병행한 '원조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손지창은 <마지막 승부>에서 최고의 대학농구 스타를 연기했다. 몇몇 시청자들은 이동민의 독특한 슛 폼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이는 오히려 이동민의 '시그니처 동작'이 됐다.

김선재 역의 이종원은 <마지막 승부> 출연 당시 남성적인 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던 신예였다. 이밖에 이동민의 동료이자 라이벌 장용호 역의 박형준과 한영대 주장 박용주 역의 이정훈 등도 농구에 대한 이해가 높은 배우들이었다. 심지어 교포선수 마이클 최 역의 박재훈은 실제 농구선수 출신으로 <마지막 승부>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했다.

여주인공 캐스팅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과거 이상아가 TV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당초 청춘스타였던 이상아가 주인공 정다슬 역에 캐스팅됐다. 하지만 미주 역할을 맡은 배우가 갑작스레 하차했다. 감독은 미주의 캐릭터가 강해 신인에게 맡기기 어렵다며 이상아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상아가 미주를, 당시 신인이던 심은하가 다슬을 연기하게 됐다. 이후 심은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청춘스타로 등극했다.

스포츠물과 청춘 멜로의 적절한 조화

 <마지막 승부>는 신인가수가 부른 주제가가 가요 프로그램 5주 연속 1위를 차지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마지막 승부>는 신인가수가 부른 주제가가 가요 프로그램 5주 연속 1위를 차지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오감엔터테인먼트

사실 <마지막 승부>는 <여명의 눈동자>나 <모래시계> 같은 대작들과 달리 처음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은 드라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첫 방송이 나가면서 10~20대 젊은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뜨거운 반응이 터져 나왔고 출연 배우들은 주연과 조연 할 것 없이 대부분 청춘스타로 도약했다. 그리고 <마지막 승부>는 50% 가까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스포츠 드라마의 새 역사를 썼다.

<마지막 승부>는 친구에서 원수가 된 윤철준과 이동민을 중심으로 한영대와 명성대의 치열한 라이벌전, 그리고 철준과 다슬, 동민, 미주의 사각 관계를 어렵지 않게 조합하면서 젊은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물론 스포츠 드라마였던 만큼 촬영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비슷한 장면이라도 전 경기에 나왔던 장면을 다음 경기에 '붙여넣기' 하면 박진감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농구 유경험자 배우들이 대거 출연 했지만 아무래도 전문 농구 선수가 아니다 보니 구현하기 어려운 장면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이동민이 감독 앞에서 신무기라며 선보였던 '코너 턴어라운드 3점슛'은 실제 프로 선수들도 하기 힘든 기술이다. 마지막회 농구대잔치 결승 장면에서 윤철준이 선보인 '버저비터 결승 덩크슛' 역시 실제 경기였다면 NBA선수가 아닌 이상 당연히 확률 높은 레이업슛을 시도했을 것이다.

농구 경기에서도 멋진 장면이 많지만 시청자들을 설레게 했던 <마지막 승부> 최고의 명장면은 역시 철준의 청혼과 이를 수락하는 다슬이었다. 15회에서 한영대가 처음으로 명성대를 꺾은 날, 철준은 다슬에게 "너, 나한테 시집올래?"라며 무뚝뚝한 청혼을 한다. 이후 철준은 "별로 행복하게 해줄 자신은 없어"라며 우물쭈물하지만 다슬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갈게, 갈게 시집"이라고 대답하며 철준에게 안긴다.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OST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신인가수 김민교가 부른 주제가 <마지막 승부>는 KBS < 가요톱10 >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솔로 2집이 부진했던 손지창 역시 <사랑하고 있다는 걸>을 히트시키며 가수로서 재기에 성공했다.

심은하 못지않은 신은경 열풍

 신은경은 <마지막 승부>를 통해 시대를 앞서가는 패션감각과 통통 튀는 매력으로 X세대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신은경은 <마지막 승부>를 통해 시대를 앞서가는 패션감각과 통통 튀는 매력으로 X세대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MBC 화면캡처

<마지막 승부>에서 철준과 동민, 다슬, 미주는 드라마 후반까지 사각 관계의 긴장감을 유지하지만 한영대의 에이스 김선재(이종원 분)와 매니저 김수진(신은경 분)은 초반부터 큰 위기 없이 커플로 연결된다. 특히 수진을 연기한 신은경은 <마지막 승부>에서 톡톡 튀는 연기와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X세대'의 선두 주자로 급부상했고 곧바로 <종합병원>에 출연하면서 199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영화 <모가디슈>를 통해 2021년 청룡 영화상을 비롯해 4개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던 허준호는 <마지막 승부>에서 명성대 주장 장만재 역을 맡았다. 초반에는 이동민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빌런처럼 나왔지만 사실 이는 감독(송기윤 분)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졸업 전에 동민과 화해했다. 워낙 다혈질 캐릭터이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몇 차례 등장하는 명성대와 한영대의 '난투극'을 주도하기도 했다.

극 중 이종원이 연기한 김선재가 다리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게 되자 한영대 농구부에는 미국에서 농구했던 신입생 마이클 최가 입부했다. 마이클 조던의 고등학교 후배임을 자처하는 마이클 최를 연기한 박재훈은 실제 농구선수 출신으로 190cm에 가까운 큰 신장에 탄력도 좋아 경기 중 덩크슛이 가능한 흔치 않은 배우였다. 물론 드라마 내에서도 덩크와 리바운드만 잘하는 캐릭터로 나왔다.

<마지막 승부>의 숨은 주역 중 한 명은 한영대 주장 박용주를 연기한 이정훈이다. 박용주는 윤철준이 각성하기 전까지 김선재에 이어 한영대의 2옵션으로 활약했고 주장으로서 리더십도 갖추고 있으며 우승을 위해 졸업까지 미룰 정도로 학교에 헌신적이다. 183cm의 좋은 신장에 실제로 학창 시절 농구를 하기도 했던 이정훈은 <마지막 승부>에 출연한 배우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슛 폼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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