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설> 스틸컷
판씨네마(주)
03.
"멜로 영화 찍자. 그래서 우리 둘이 간직하는 거야.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말고."
사랑의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운 지점이 존재한다. 자신의 내면조차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태도가 마음을 알아차릴 수는 있지만 온전히 잠길 수는 없게 만든다. 설과 수안의 키스는 사랑의 표현과 교류가 아닌 검증과 확인에 가깝다. 두 사람이 양양을 떠나 서울로 향했던 밤의 일이다. 이 행위에는 서로에 대한 마음을 판명하는 일 이상의 의미도 있다. 지금 주어진 세계를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동경하던 세상을 마주했을 때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동일한 신 안에서 설은 수안이 찍는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약속한다. 수안도 설의 행위에 동조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세상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만큼만, 딱 그 정도만 상대를 향한 거리를 좁힌다. 그나마 설이 한 발 더 먼저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상대적으로 그만큼 높은 곳에 서 있었던 경험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두 사람의 태도는 또 다른 상황, 유사한 의미를 가진 장면을 통해 또 한 번 그려진다. 숨겨진 시간의 틈 속에서 연기 연습을 그만두지 못하는 수안과 대중으로부터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 다시 대중의 시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설의 모습이다.
누가 봐도 멜로인 관계인데 아닌 척을 한다는, 영화를 함께 찍겠다고 약속하고 다시 연예계로 돌아가 버렸다는, 두 거짓말은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 사이에 남게 된다. 사실은 처음부터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결말이다. 두 사람이 나누던 입맞춤과 달콤한 언어들은 이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 위에 남겨지는 것은 이제 사라져 버린 설의 흔적과 처음 모습 그대로 다시 혼자가 되어버린 수안의 공간이다.
04.
남은 것은 '수안'과 '바다'의 챕터다. 두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설'과 마주하는 자리에 있는 '수안'에서 그려지는 것은 자신의 소원대로 배우가 된 수안의 모습이다.
그는 과거 설이 경험했던 삶을 체득하며 그때는 알지 못했던 설과의 간극을 조금씩 줄여나간다. 보이는 것에만 기대 환상처럼 생각했던, 원하고 바라기만 했던 삶의 밑바닥이다. 배역을 얻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 상태와 무관하게 어디서든 알아보는 사람들, 심지어 스스로 형편없는 연기를 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멈출 수 없다. 같은 자리에 섰을 때만 보이는 것이 있다.
다시, '설'의 마지막에서 설은 떠났다. 이제 수안은 같은 세상에 발을 딛을 수 있게 됐지만 그를 찾을 수 없다. 지인을 통해 구한 약물에 기대어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과거의 바다를 잠시 다녀올 뿐이다. 다녀온 것이라 믿을 뿐이다. 그런 수안의 행동으로부터 느껴지는 것이 있다. 상실의 기운이다. 그가 가진 마음의 모양은 반드시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 위에서는 가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분명 되돌려 줘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존재는 반드시 무너진다.
설은 분명 세 번째 단락인 '바다'에서 등장한다. 그의 존재적 여부, 행방에 대한 해석은 지극히 개인의 것이지만, '수안'의 이야기에서 그의 상실을 확인한 이들에게 이후에 남은 양양 바다의 이야기는 바람과 상상, 그리고 아직 약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심상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마지막 이야기 속에서 두 사람은 파도에 휩쓸리고 폭설이 내린 언덕에 표류한다.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눈싸움과 이제 완성되는 상호 감정의 교합마저 모든 것들이 유기적이지 않고 눈덩이처럼 뭉쳐진 느낌이다. 무엇보다, 실재하는 설과 수안의 기적적인 만남이란 너무 구태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