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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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英國, 약칭 UK)의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영국은 특이하게도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까지 4개의 구성국(Constituent state)이 따로 또 같이 공존하는 '연합국가'의 체제를 이루고 있다.

영국을 이루는 4개의 나라들은 때로는 안으로 치열한 경쟁과 전쟁을 펼쳤고, 한때는 힘을 합쳐 세계를 호령하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가깝고도 먼 사이인 4개의 나라들은 어떻게 영국이라는 이름으로 복잡한 역사를 지닌 한지붕 네 가족이 됐을까.

29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한지붕 네가족, 영국의 불편한 동거'편을 조명했다. 윤영휘 경북대 사학과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2천년의 역사를 지닌 섬나라 영국의 시작은, 수많은 부족의 침입과 이주를 거듭하며 이뤄졌다. 오늘날의 영국 본토를 이루는 브리튼 섬은 기원전 1000년경 이주해온 켈트족이 자리를 잡은 것을 시작으로, 기원전 55년에는 로마제국이 진출해 남부 일대(현 잉글랜드 지역)를 정복하고 약 400여 년간 지배를 이어갔다.

5세기에 접어들며 로마제국이 쇠퇴하고 현재의 독일 북서부와 덴마크, 네덜란드 일대에 거주하던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이 브리튼 섬을 침공한다. 이들은 현재 잉글랜드인들의 기원이기도 하다.이들의 후손이 세운 잉글랜드(England)는 곧 앵글인들의 땅(Angles land)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앵글로색슨족은 서부 지역에 모여살던 켈트족을 '이방인'으로 칭했는데, 이것이 고대 영어로 '웨일스'라는 지명의 어원이다. 앵글로색슨족의 정복시대에 이르러 브리튼 섬에는 텀오늘날의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로 구분되는 세 나라의 경계가 정해진다.

1066년에 이르러 브리튼 섬은 이번엔 노르만의 침공을 받는다. 바이킹의 후손들이 세운 노르망디 공국의 기욤 2세는,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스스로 윌리엄 1세로 즉위하여 노르만 왕조를 열었다. 1301년에는 에드워드 1세의 치세에 소왕국으로 분열되어있던 웨일스마저 정복하고 세력을 확장했다. 에드워드 1세는 이어 1296년에는 브리튼 섬 통일을 노리며 북부의 스코틀랜드까지 침공하여 대승을 거두고 합병을 선언했다.

이 당시 에드워드 1세에 저항하며 스코틀랜드의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브레이브 하트>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윌리엄 월리스다. 1297년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월리스는 단 5천 명의 군사로 1만3천 명에 이르는 잉글랜드 정예군을 격파하며 명성을 드높였다.

월리스는 훗날 에드워드 1세에게 패배하여 사로잡혀 최후를 맞이한다. 하지만 월리스가 당한 끔찍한 형벌은, 오히려 스코틀랜드의 분노와 독립 의지만 더욱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월리스가 사망한 이후에도 스코틀랜드의 저항은 계속되었고 1314년 베넉번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을 다시 크게 대파한다. 결국 1328년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인정하는 '에딘버러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오랫동안 앙숙으로 지내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502년 제임스 4세 스코틀랜드 국왕이 마거릿 튜더 잉글랜드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며 처음으로 왕실간 혈연을 맺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1603년에는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없이 사망하면서 튜더 왕조의 계보가 끊기게 되자, 스코틀랜드 국왕인 제임스 6세가 두 왕조의 혈통을 모두 이어받았다는 이유로 잉글랜드로 건너와 제임스 1세가 된다.

이로서 제임스 1세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두 국가의 왕을 공식적으로 겸하게 된 최초의 군주로 등극하게 된다. 다만 같은 국왕이 두 개의 나라를 통치하면서도 완전히 통합된 것은 아니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동군연합(Personal Union)'을 형성하며 별도의 주권과 통치시스템을 보장받은 연합국가 구조로서 공존했다.

17세기 후반에 들어 스코틀랜드는 소빙하기 도래와 대기근으로 인한 식량위기 등으로 '불운한 7년'을 보내며 어려운 시간을 견뎌야했다. 같은 군주가 통치하는 잉글랜드가 발전된 해군력과 식민지와의 교역을 통해 위기를 넘긴 것과는 차이였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식민정책을 본따 1698년 중남미의 다리엔에 중개무역항을 추진했다, 당시 스코틀랜드 자본력의 25%에 해당하는 50만파운드의 거금을 투자한 프로젝트였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스코틀랜드는 결국 잉글랜드에 도움을 요청할수밖에 없었다.

잉글랜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코틀랜드에 통합의 손길을 내밀었다. 자력 생존과 무역시장 개척에 한계를 느낀 스코틀랜드 역시 잉글랜드가 닦아놓은 길을 이용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다. 결국 양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1707년 최초로 두 나라는 이미 잉글랜드에 합병되어있던 웨일스까지 포함하여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기에 이른다.

브리튼 섬의 바로 옆에 위치한 아일랜드는 오래전부터 영국의 지속적인 침략을 받아왔다. 1171년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는 아일랜드 소왕국들의 내전을 틈타 세력을 확장하여 아일랜드 영주들을 다스리는 종주왕에 등극한다. 이후 1534년 헨리 8세 시대에는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여파로 가톨릭 인구가 절대적이던 아일랜드에 영국 국교회를 믿는 잉글랜드인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종교탄압과 토지 강탈을 자행했다.

1649년에는 잉글랜드 내전으로 본국의 힘이 약해진 사이, 아일랜드가 반란을 일으키자 잉글랜드의 집권자였던 올리버 크롬웰은 내전에서 승리한 이후 아일랜드를 침공했다. 크롬웰은 아일랜드를 무력으로 진압했고, '드로이다 대학살'을 일으키며 수천명에 이르는 민간인들까지 학살했다.

영국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가 합병하고 약 100년 뒤인 1801년에는 아일랜드까지 포함시킨 연합왕국을 출범한다. 4개국의 합병으로 인해 지금의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이 탄생하게 된다.

영국은 이후 잉글랜드 중심으로 발전하며 산업혁명과 식민지 개척을 등에 업고 '대영제국'으로 불리우며 세계 역사를 호령하는 최초의 초강대국으로까지 부상한다. 그러나 정작 영국의 일원이던 아일랜드인들에게 이 시기는 머나먼 독립을 향한 고난과 투쟁의 역사로 더 기억된다.

아일랜드인들은 영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차별과 핍박을 받았고, 1845년에는 약 7년간 이어지는 '아일랜드 대기근'이 일어나며 100만 명 이상이 굶어죽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대기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양국간 역사적 논란의 중심에 있는 민감한 대목이다.

수많은 아일랜드인들은 결국 생존을 위해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가야했다. 이 당시 수많은 아일랜드계 사람들이 미국에 정착하는 계기가 됐다. 1997년 제임스 카메론의 동명 영화로 유명한 '타이타닉호 침몰사고(1912년)'도 이 시기에 나왔다.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존 F.케네디의 가문도 역시 아일랜드계 이민자 추린으로 미국에서 정착하며 정치 명문가로 성장했다.

또 많은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의 압제에 맞서 독립을 위한 투쟁을 벌였다.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아일랜드 독립을 요구하며 영국군에 가장 강력하게 맞선 무장투쟁 단체였다. 이들은 주요 인물 암살, 매복 공격과 주요 건물습격 등으로 영국군을 괴롭혔다.

거듭한 피바람에 지친 영국은 결국 협상에 돌입해 과거 많은 영국인들이 터를 잡고 있던 북아일랜드를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을 독립시키는 데 합의한다. 아일랜드는 독립한 이후에도 2023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 당시, 이를 조롱하는 응원가가 퍼지는 등 영국에 대한 적대감은 여전하다. 그리고 이러한 아일랜드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을 겪어야 했던 한반도의 역사와도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다.

이처럼 영국은 4개의 나라가 필요에 따라 때로는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미묘한 공존을 이어왔다. 영국은 20세기 두 차례의 거대한 세계대전을 함께 극복해내면서 '영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 현재에도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네 나라간의 통합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코틀랜드는 지난 2014년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투표를 진행했으나 부결되기도 했다. 또한 브렉시트 사태, 코로나19팬데믹 사태 등을 겪으며 무능한 영국 중앙정부의 능력에 불만을 품은 스코틀랜드인에게 독립을 요구하는 여론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천년 가까이 침략을 당하지 않은 영국섬 주민들은 위험이 가까워지고 커질수록 덜 긴장하고, 위험이 임박하면 더 사나워지며, 죽을 것 같을 때 두려움이 없어진다.'

2차대전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의 어록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묘하게 닮아있는 영국인들만의 공통적인 기질을 잘 요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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