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일렁일렁>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와이드 앵글 작품 가운데는 10대 소녀들을 중심으로 내면의 갈등을 다루고자 한 작품이 많았다. 선재상을 수상하며 운명과 선택에 대한 섬세한 탐구를 이뤄냈다는 평을 받은 송지서 감독의 <유림>이 있었고, 졸업을 앞둔 여중생들의 모습을 뒤따르며 이들의 하룻밤 모험을 그려내는 임이랑 감독의 <산책자들>이 그랬다. 이들 작품은 아직 채 여물지 못한 감정과 관계를 바탕으로 경쟁과 충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에너지를 포착해 스크린 위로 옮겨다 놓는 데 성공한다.
김예원 감독의 <일렁일렁> 또한 그중 하나다. 그는 전작인 <우연히 나쁘게>(2020)를 통해 청소년기의 여고생이 타자를 통해 느끼게 되는 감정을 바라보며 내면을 그리고자 했던 바 있다. 하나의 상황 앞에 주어지는 끌림과 파괴라는 양가적 충동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의도에 해당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 사이의 관계로 조금 더 나아간다. 수영장을 같이 다니는 이름이 같은 두 친구 윤지우(금빈 분)와 송지우(유은아 분)의 관계다. 영화의 시작을 통해 두 사람을 단짝으로 이어준 그는 그사이를 헤집으며 관계가 일으킬 수 있는 상처와 갈등을 정확히 바라보고자 한다.
02.
"너 뭐가 문제야? 난 너랑 잘 지내고 싶은데."
이름이 같은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친구가 된다. 전학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송지우가 쏟은 물고기 밥을 지나가던 윤지우가 도와주게 되는 상황.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이름이 서로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빠르게 가까워진다. 수영 또한 두 지우의 관계를 이어주는 하나의 도구다. 어릴 때부터 오래 수영을 해온 송지우는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윤지우를 돕겠다고 나서며 함께 수영장을 다니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두 사람이 이렇게 단순한 이유로 절친한 사이가 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그 시작은 영화의 첫 장면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윤지우는 물에 잠긴 상태로 등장한다. 수영은 못하지만 잠수는 꽤 잘하는 편이다. 그런 그를 수영장 바깥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나연(김지우 분)은 윤지우와 잘 지내고 싶다고 말한다. 분명 비꼬는듯한 태도다. 두 사람 사이에는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날카롭게 반응하는 그를 나연은 강하게 밀쳐 다시 빠뜨린다. 학교 폭력의 서사가 시작되는 자리다. 윤지우의 잠수는 자신의 일상을 괴롭히고 파괴하는 무리로부터의 해방이자 자신만의 시공간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이제 그 일조차 침범당하기 시작했다.
한편, 송지우 역시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따돌림과 폭력을 당하다 전학을 오게 되었다. 학교 폭력을 당하는 존재의 곁에 서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그 수렁의 깊이를 몸소 경험한 바 있다는 뜻이다. 그런 송지우가 지금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는 윤지우와 마주 서게 만들고 빠르게 친한 친구가 되게 만드는 영화와 감독의 의도는 일면 잔혹하기까지 하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윤지우의 곁에는 있어 줄 수 있지만, 다른 무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윤지우의 옆에서까지 함께 서 있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