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칠자화>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1.
<칠자화>
한국 / 2023 / 극영화
감독 : 김도현
출연 : 석희, 주인영
"이렇게 예쁜 신은 처음 보았다. 이 새하얀 것들은 모두 마님의 유품이다. 백옥 같은 아가씨가 이것들을 착용하면 참 잘 어울리겠지. 하지만 이 꽃신만은 아가씨에게 필시 어울리지 않는다."
한 여성의 흐느끼는 소리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제 막 엄마를 잃은 주인집 아가씨(주인영)다. 그녀의 젖은 목소리를 뒤로 하고 또 다른 여성 미도리(석희)가 등장한다. 집안의 가족 일을 돌보는 그는 돌아가신 마님의 유품 정리를 돕던 중 새하얗게 아름다운 꽃신 하나를 발견한다. 여러 유품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눈에 띄던 신발. 하지만 아가씨는 엄마가 유품으로 남긴 이 예쁜 신을 직접 신을 수 없다.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다.
영화 <칠자화>는 철저히 미도리의 심리와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작품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머물고 있는 집안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하지만 결코 드러낼 수는 없어 감춰왔던 그 탐욕스러운 욕망이 피어나는 과정을 가감 없이 표현해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극의 모든 대사에는 해당 인물의 심리가 반영돼 있다. 심지어 다른 인물의 대사조차 그의 의도에 따라 완성된 것처럼 여겨질 정도. 이 모든 대사가 연결되는 자리는 '나도 내가 좋다'던 장면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흰 꽃신이 의미하는 바는 생전에 모녀지간 이상의 관계였다던 아가씨와 마님의 관계를 지금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아가씨를 낳은 이후부터 일상생활조차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신발을 신을 수 없었던 마님과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쓰지 못해 엄마가 남긴 마지막 유품까지도 신을 수 없는 아가씨. 하나의 목숨을 나눠 가진 듯한 두 사람의 유일한 틈을(이미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자신의 의도대로 발 아래에 놓아두었음으로). 이제 미도리가 깨뜨리고자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가리키는 칠자화라는 타이틀은 실재하는 꽃나무로부터 따온 것으로 보인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흰 꽃을 피우는 칠자화는 꽃이 지고 나면 녹색이던 짧은 꽃받침이 붉은색을 띠며 점점 길게 자란다. 마치 자신이 그 자리에 원래 존재하던 꽃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원래 존재하던 흰 꽃이 떨어지고 난 뒤에야 꽃받침이 붉게 물들어 꽃처럼 모양을 갖춘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흰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 어느 한 쪽은 꼭 죽음을 맞이하고, 또 다른 한쪽은 피를 흩뿌린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통해 한 송이 꽃의 생을 모두 그려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