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칠자화> 스틸컷
영화 <칠자화>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1.
<칠자화>
한국 / 2023 / 극영화
감독 : 김도현
출연 : 석희, 주인영

"이렇게 예쁜 신은 처음 보았다. 이 새하얀 것들은 모두 마님의 유품이다. 백옥 같은 아가씨가 이것들을 착용하면 참 잘 어울리겠지. 하지만 이 꽃신만은 아가씨에게 필시 어울리지 않는다."

한 여성의 흐느끼는 소리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제 막 엄마를 잃은 주인집 아가씨(주인영)다. 그녀의 젖은 목소리를 뒤로 하고 또 다른 여성 미도리(석희)가 등장한다. 집안의 가족 일을 돌보는 그는 돌아가신 마님의 유품 정리를 돕던 중 새하얗게 아름다운 꽃신 하나를 발견한다. 여러 유품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눈에 띄던 신발. 하지만 아가씨는 엄마가 유품으로 남긴 이 예쁜 신을 직접 신을 수 없다.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다.

영화 <칠자화>는 철저히 미도리의 심리와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작품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머물고 있는 집안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하지만 결코 드러낼 수는 없어 감춰왔던 그 탐욕스러운 욕망이 피어나는 과정을 가감 없이 표현해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극의 모든 대사에는 해당 인물의 심리가 반영돼 있다. 심지어 다른 인물의 대사조차 그의 의도에 따라 완성된 것처럼 여겨질 정도. 이 모든 대사가 연결되는 자리는 '나도 내가 좋다'던 장면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흰 꽃신이 의미하는 바는 생전에 모녀지간 이상의 관계였다던 아가씨와 마님의 관계를 지금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아가씨를 낳은 이후부터 일상생활조차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신발을 신을 수 없었던 마님과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쓰지 못해 엄마가 남긴 마지막 유품까지도 신을 수 없는 아가씨. 하나의 목숨을 나눠 가진 듯한 두 사람의 유일한 틈을(이미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자신의 의도대로 발 아래에 놓아두었음으로). 이제 미도리가 깨뜨리고자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가리키는 칠자화라는 타이틀은 실재하는 꽃나무로부터 따온 것으로 보인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흰 꽃을 피우는 칠자화는 꽃이 지고 나면 녹색이던 짧은 꽃받침이 붉은색을 띠며 점점 길게 자란다. 마치 자신이 그 자리에 원래 존재하던 꽃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원래 존재하던 흰 꽃이 떨어지고 난 뒤에야 꽃받침이 붉게 물들어 꽃처럼 모양을 갖춘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흰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 어느 한 쪽은 꼭 죽음을 맞이하고, 또 다른 한쪽은 피를 흩뿌린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통해 한 송이 꽃의 생을 모두 그려낸 것처럼.

 영화 < COMPUTER > 스틸컷
영화 < COMPUTER >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2.
< COMPUTER >
한국 / 2023 / 극영화
감독 : 김은성
출연 : 김일지, 장지훈

일지(김일지)는 빨리 게임에 들어오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탄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이유로 낯선 차를 공짜로 탄 것이 조금 미안할 정도다. 어떤 이유라도 괜찮다던 운전석의 남자는 '모든 존재는 본연의 위치로 이동하기 마련이고, 자신들 또한 앞으로 몇 번 더 만날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집에 도착한 그는 자신의 게임 중독 때문에 이별하겠다는 여자 친구 주연(김민서)의 쪽지를 발견한다.

김은성 감독의 영화 < COMPUTER >는 모든 지점이 기존의 영화적 구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작품이다.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각의 장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심지어 장과 장 사이는 같은 신을 나눠 갖는 식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떨어지지 말아야 할 자리를 인위적으로 억지로 떨어뜨려 놓은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만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심인물인 일지의 시점으로만 전개되는 탓에, 영화의 전체 내용은 극 중 인물인 일지가 받아들이는 것과 관객이 받아들이는 것에 큰 차이가 없다. 이것은 영화가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정보를 추가적으로 더 제공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이 주는 첫 감정은 괴이하다는 것이다. 어떤 정보도 없이, 화면 속 인물이 마주하는 상황을 그대로 똑같이 받아들여야 하는 관객에게 다른 감정을 꺼낼 여유는 없다. 여기에 때마다 발생하는 낯선 상황과 인물의 등장이 마치 게임 속의 돌발 이벤트처럼 주어지는 순간과의 조우는 비현실적인 감각까지 일으킨다. 여기에서 감독의 의도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밀어닥치는 영화적 순간과 정돈되지 않은 감정적 상황의 연속은 이 드라마가 가진 일종의 서스펜스를 확보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본연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는 거 선생님이 들고 있는 컴퓨터도 마찬가지거든요."

가장 쉽게 이 영화를 표현하자면 게임 중독으로 이별을 고한 여자 친구로 인해, 컴퓨터를 부수고자 하는 한 한 남자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인물의 강한 의지와 반복되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인물들에 의해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컴퓨터의 존재, 그 사건 자체를 자연 운동이라고까지 부르며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라 일컫는 영화의 설정을 보면, 표면적으로 드러난 내러티브 아래에서 '중독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의 반복되는 과오'를 이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전북 독립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는 <우두>(2021)와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이었던 < Mercy Killing >(2022) 등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가고 있는 김은성 감독의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J 비전상, 왓챠가 주목한 단편상 수상작.
덧붙이는 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운영 중인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는 2024년 2월 15일(목)부터 총 18개의 큐레이션을 통해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선정작 92편(장편 22편, 단편 70편)을 소개/상영할 예정입니다. 열일곱 번째 큐레이션인 '낯선 물체 따라가기'는 10월 16일부터 10월 30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 가입 후 무료로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 인디그라운드 칠자화 COMPU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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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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