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설> 스틸 이미지
판씨네마㈜
거의 모든 매체가 영화 <폭설>의 개봉을 맞이해 제목으로 '한소희'란 이름을 맨 앞에 붙인다. 스타성으로나 가십으로나 동 세대 배우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스타의 첫 공식 영화 출연작이니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한소희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각인되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일단 영화의 테두리 내에서 한소희라는 배우의 이미지와 지분을 놓고 볼 때 보다 더 근본적인 감상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특정 세대와 시기의 '아이콘'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일 만큼 독특한 이미지를 지닌 이 배우의 진가는 영화에서 오롯이 발현된다. 2019년 첫 촬영부터 개봉 직전인 2024년 9월 보충촬영까지 5년의 세월 동안 배우 한소희의 변천과 성쇠를 마치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폭설>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스타에 등극하기 전 배우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영화 속에서 영욕을 한 몸에 겪는 배우의 이야기와 실제 현실에서 그가 처한 일련의 상황을 겹쳐서 보고 싶다면, 혹은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스크린에선 어떤 형태로 뿜어낼지 알고 싶다면, <폭설>은 상당히 흥미로운 선택이 될 테다.
첫 번째 이야기 '설이'
'수안'은 강릉 예술계 고등학교에서 연기 전공으로 배우를 꿈꾸는 19살 소녀다. 연기 욕심이 과해서 늘 핀잔을 먹곤 한다. 평범하게 동급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만의 연기를 찾아 방황하던 그는 최근에 전학을 왔다는 스타 배우 '설이'와 만난다.
아직 단 한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지 못한 수안은 설이를 막연히 동경하지만, 설이가 굳이 서울을 떠나 강릉으로 전학을 온 데는 이유가 있다. 곧 친해진 둘은 함께 그들만의 작은 일탈을 이어간다. 수안의 어머니 차로 무면허 운전을 감행해 서울 밤거리를 쏘다니기도, 서핑을 즐기기도 한다.
수안은 자신을 배우로 기용하지 않으면, 본인이 직접 감독으로 연출해 자신을 캐스팅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설이는 그런 수안이 부럽다며 자신도 출연시켜 달라고 청한다. 업어가며 부탁해도 모자랄 판에 뜻밖의 제안을 받은 수안은 어안이 벙벙하지만, 설이는 장난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농밀해가던 둘의 사이는 10대의 마지막 시절 미묘한 갈등과 사소한 오해로 멀어지고 만다.
두 번째 이야기 '수안'
수안이 설이와 연락이 끊어진 지 10년이 훌쩍 흘렀다. 설이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수안은 이제 어느 정도 지명도를 갖춘 배우가 돼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활약 중이다. 거리에서 그를 알아보고 사진과 사인을 청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어쩌면 자신이 원하던 걸 거의 다 이룬 셈이지만, 수안의 심정은 공허하다. 10년 전 설이가 자신에게 토로하던 방황과 지금 수안의 입장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기도 하다. 권태에 빠진 그는 연기현장 외에는 유령처럼 떠돌 따름이다. 참을 수 없는 답답함에 지쳐 위험한 약에 손을 대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결국 답은 지난 10년간 찾지 못한 설이에게 구할 수 있는 걸까? 수안은 번민한다.
세 번째 이야기 '바다'
간신히 자신을 수습한 수안은 설이를 찾아 무작정 고향 강릉 해변으로 향하지만 아무런 근거도 단서도 없다. 그는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기고, 바닷가를 응시할 뿐이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들른 해변의 술집에서 수안은 꿈에도 그리던 설이를 닮은 누군가를 발견한다. 상대는 수안을 기억하지 못하는 양 외면한다. 어쩌면 대번에 알아보고 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토록 오래 찾았던 설이가 맞는지 수안은 직접 확인해 보기로 한다.
에필로그 '폭설'
마침내 재회한 두 사람. 수안과 설이의 관계는 바다와 폭설이 만나는 경계선처럼 끊임없이 조류의 밀고 당김을 거듭하며 연결된다. 과연 그 끝은 어떻게 종결될까?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몽환과 매혹이 폭설처럼 쏟아지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