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리에게> 화면 갈무리
ENA
은호와 현오는 빈집 같은 사람들이다. 어렸을 적 부모를 잃은 은호는 친척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동생과 함께 컸다. 그러나 동생은 은호가 억지로 보낸 졸업여행에서 실종됐고 할머니는 충격에 세상을 떠난다. 현오의 아버지는 노름꾼이었고, 어머니는 가출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빚더미에 빠진 현오는 전주(錢主)의 도움으로 겨우 컸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전주 할머니와 그의 동료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약속 아닌 저주에 걸려있다.
그런 둘이 같은 방송국에서 동료 아나운서로 만났다. 사내 운동회에서 현오는 처음 인사한 은호에게 다짜고짜 자신을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래 놓고 운동장 바닥을 샅샅이 살핀다. 몇 시간이고 말없이 뒤적이는 현오 때문에 은호가 분노를 터뜨리자 그제야 숨은 비밀을 말한다. 사실 자신의 어머니가 남기고 간 목걸이를 찾고 있었다고.
끝내 목걸이를 찾지 못하지만, 은호는 현오에게 약속한다. 그 목걸이를 자신이 꼭 찾아주겠다고. 둘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한다. 첫 만남에서 밑바닥을 보인 현오와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민 은호. 그들이 사랑에 빠진 건 순리였다.
그러다 8년째 사귀던 해에 은호는 "결혼하자"고 말했고, 현오는 매정하게 떠났다. 죽을 때까지 전주를 도와야 하는 자신의 굴레에 은호까지 끌어들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별은 서로를 향한 '돌봄'을 선명하게 했다. 둘은 앙숙처럼 싸웠지만, 서로를 도왔다. 현오는 회사에서 찬밥 신세가 된 은호를 돕겠다고 프로그램 편성을 바꾸고 보직까지 내려놓았다. 반대로 은호는 무엇이든 하겠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현오를 도와달라고 빌었다. 헤어졌지만 둘은 상대의 표정을 끝없이 살폈고, 사랑했던 사이라서 알 수 있는 힘듦을 알아챘다.
미묘한 사이에 기폭제가 된 건 은호였다. 가족, 남자친구, 이젠 아나운서라는 직업마저 위태로워지자, 은호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런 은호를 찾은 건 현오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빈틈을 채웠다.
마치 사귀었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모든 곳에 손을 뻗었다. 은호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고, 집을 청소하고, 동네를 걸었다. 그의 투정을 들어줬고, 차마 말하지 못할 때는 표정으로 읽었다.
아픈 은호를 향한 현오의 사랑은 일방적인 보살핌이었다. 모든 걸 잃은 은호는 시름시름 앓았고 현오는 질려하지 않고 옆에 있었다. 오히려 행복해 보였다. 항상 그에게 돌아가려고 했고 마침내 명분을 찾은 사람처럼 현오는 '아프다'는 은호의 말에 되레 미소를 지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해서 대신 '도와주겠다'는 그들의 사랑은 끝없이 취약한 서로를 감쌌다.
'가끔씩 아파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