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약 팀이 강 팀을 꺾는 것만큼 팬들을 열광 시키는 것도 흔치 않다. 지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사우디 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일본이 독일과 스페인을, 한국이 포르투갈을 꺾는 이변들이 이어졌다. 물론 결승 대진은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격돌이었지만 조별 리그에서 속출된 이변에 축구팬들은 대회 개막 전에 했던 예측들을 새롭게 뒤집어야 했다.

여자프로농구에서는 지난 2020-2021 시즌 삼성생명 블루밍스가 WKBL 역사상 최고의 이변을 연출했다. 14승16패, 정규리그 4위로 플레이오프 막차를 탄 삼성생명은 플레이오프에서 정규리그 우승팀 우리은행 우리WON을, 챔프전에서는 박지수(갈라타사라이SK)가 버틴 KB스타즈를 꺾고 15년 만에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정규리그 4위가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것은 WKBL 출범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통산 6번째 우승 이후 리빌딩을 단행한 삼성생명은 이후 3번의 시즌을 치르는 동안 우승은커녕 챔프전 무대도 밟은 적이 없다. 지난 시즌이 끝난 후에는 2015년부터 햇수로 10년 동안 삼성생명을 이끌었던 임근배 감독이 물러나고 하상윤 수석코치가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과연 하상윤 신임 감독은 지난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 3위를 기록했던 삼성생명을 더 높은 순위로 끌어 올릴 수 있을까.

대대적인 리빌딩 후 2시즌 연속 3위

 지난 시즌 WKBL에서 키아나 스미스보다 더 정확한 외곽슛 적중률을 기록한 선수는 없었다.
지난 시즌 WKBL에서 키아나 스미스보다 더 정확한 외곽슛 적중률을 기록한 선수는 없었다.한국여자농구연맹

종목을 막론하고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팀들은 두 시즌 연속 우승을 위해 우승멤버를 유지하거나 추가적인 전력 보강을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2020-2021 시즌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이후 챔프전 MVP 김한별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하면서 하위권 팀들로부터 신인 지명권을 수집했다. 그 결과 삼성생명은 2021-2022 시즌 5위로 순위가 떨어지며 봄 농구 진출에 실패했다.

5위 추락은 아쉬웠지만 삼성생명의 '큰 그림'은 2년 연속 신인 최대어 지명이라는 열매로 돌아왔다. 2021-2022 시즌 신인 드래프트와 2022-2023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한 삼성생명은 183cm의 장신 포워드 이해란과 WNBA 출신의 혼혈선수 키아나 스미스를 차례로 지명했다. 현실적으로 챔프전 2연패 도전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팀의 미래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다.

삼성생명은 이해란이 주전급 선수로 성장하고 스미스가 팀에 합류하자마자 맹활약했던 2022-2023 시즌 정규리그 2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스미스와 이주연이 무릎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는 초대형 악재가 있었다. 주전 가드 2명을 동시에 잃은 삼성생명은 정규리그 3위로 한 시즌 만에 플레이오프에 복귀했지만 BNK 썸에게 연패를 당하며 챔프전 진출이 좌절됐다.

삼성생명은 지난 시즌에도 선수 구성에 이렇다 할 변화 없이 시즌을 맞았다. 스미스와 이주연,윤예빈 등 부상 선수들만 건강하게 복귀해도 충분한 전력 상승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2라운드 후반에 복귀한 스미스가 3점슛 성공률 1위(38.5%)를 기록했고 신이슬도 전 경기에 출전하며 주전으로 도약했다. 여기에 이해란이 13.43득점6.4리바운드1.8스틸의 성적을 올리며 맹활약했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지난 시즌 좋았던 점 만큼이나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건강한 복귀가 기대됐던 윤예빈이 더딘 회복으로 4경기 출전에 그쳤고 슈터 강유림도 36.7%였던 3점슛 성공률이 20.9%로 떨어지는 믿기 힘든 슬럼프를 경험했다. 결국 2022-2023 시즌에 이어 지난 시즌에도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삼성생명은 플레이오프에서 우리은행에게 1승 후 3연패를 당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변화 대신 안정된 전력으로 정상 도전

 지난 시즌 득점8위,리바운드9위에 올랐던 이해란은 이번 시즌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를 노린다.
지난 시즌 득점8위,리바운드9위에 올랐던 이해란은 이번 시즌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를 노린다.한국여자농구연맹

삼성생명은 지난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얻은 가드 신이슬이 신한은행으로 이적했고 182cm의 장신 포워드 박혜미도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었다. 삼성생명은 신이슬의 보상선수로 신한은행에서 10년 간 활약했던 김아름을 지명했고 박혜미에 대해서는 보상선수 지명 없이 보상금을 수령했다. 지난 2~3년 간 그랬던 것처럼 삼성생명은 이번 비 시즌 동안에도 별다른 외부 영입을 하지 않았다.

삼성생명의 정신적 지주 배혜윤은 지난 시즌 12.0득점에 머물렀지만 어시스트는 커리어에서 두 번째로 많은 4.9개를 기록했다. 이 같은 변화가 단순한 득점력 감소인지 의도적인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여전히 삼성생명에는 배혜윤을 대체할 골밑 자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이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배혜윤의 활약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뜻이다.

이해란은 지난 16일 한국여자농구연맹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2024-2025 시즌 'UP그레이드' 디지털 화보에서 삼성생명의 대표 선수로 등장했다.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삼성생명의 '얼굴'이 됐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도 이해란의 연차를 고려하면 충분히 순조로운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지만 삼성생명 팬들은 이번 시즌 이해란이 다른 구단의 에이스들과 대등한 활약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신이슬이 이적하면서 삼성생명의 가드진이 다소 약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180cm의 장신가드 윤예빈이 건강하게 복귀한다면 신이슬의 공백은 크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뛰어난 허슬 플레이를 자랑하는 이주연과 리그 최고 수준의 외곽슛을 보유한 스미스, 그리고 WKBL에서 흔치 않은 피지컬을 가진 윤예빈이 버틴 삼성생명의 가드진은 공수에서 상대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번 비 시즌에는 과감한 투자를 통해 전력을 크게 보강된 팀도 있고 주력 선수들의 해외진출과 이적으로 전력이 약해진 팀도 있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감독 교체를 제외하면 6개 구단 중 유일하게 비 시즌 동안큰 전력 변화 없이 '안정'을 선택했다. 두 시즌 연속 3위라는 꾸준한 성적을 기록했던 삼성생명은 선수들의 조직력이 더욱 탄탄해진 이번 시즌 4년 만에 챔프전 복귀를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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