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사회를 보다 보면 매일이 전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날마다 벌어지는 사건 사고도 그렇지만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로 온 언론이 도배가 되고 있고 그 말이 또 말을 낳고 공격하고 변명하고 해명하고 번복하고 그 모두가 언론에 보도된다. 일개 개인의 말이 입법과 사법과 행정을 들썩이게 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 나라에 삼권분립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마음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가지고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진다. 이념 전쟁이다. 5.18과 관련된 전쟁이고, 4.3과 관련된 전쟁이며, 거슬러 올라가면 3.1 운동과 관련된 전쟁이다. 이런 와중에 조선시대 전쟁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 <전, 란>을 몇 번을 끊어가며 봤다. 사실 한 번에 보기가 힘들었다. 영화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우리의 역사를 '수난의 역사'라고 말하는 정도니 우리 선조들에게 전쟁은 숙명이나 천형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하기에 같은 배경으로 여러 편의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져도 다양하게 해석되며 꾸준히 관객을 끌어들인다. 또한 감독이나 제작진, 혹은 배우에 따라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고 관객의 마음에 웅장한 울림을 주기도 하는 경우가 많다.

임진왜란, 그 혼란의 시대

영화 <전, 란>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를 그린다.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노비 천영(강동원)이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의 서사는 천영과 종려가 이끌어 간다. 어느 날 갑자기 양인의 신분을 박탈당하고 하루아침에 노비가 된 천영, 천영이 노비로 들어간 집안의 아들 종려. 무술을 배우는 어린 종려의 모든 실수는 종려의 아버지에 의해 어린 천영에게 매질로 돌아온다. 맞아 죽지 않기 위해 종려에게 밤마다 무술을 가르치는 천영의 삶은 애초에 전란이다.

그러한 중에 둘은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되지만, 엄격한 신분제는 둘을 얽매는 족쇄가 된다. 견고하고 단단한 신분제도의 현실 앞에서 왜구의 침입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본능을 드러내게 하는 촉매제가 된다.

그간의 영화에서 선조의 모습은 무능하지만 군주로서의 고뇌와 품위가 조금은 보였다면, 이 영화의 선조는 무능하고 무력하고 광기마저 보여준다. 군주가 그러니 왜구의 살육에 고스란히 노출된 백성들은 죽거나 도망치거나 할 수밖에. 특히 피란길 배를 타고 떠나는 선조는 적병이 뗏목을 만들어 건널 것을 염려해 "배를 가라앉히고 나루를 끊고 가까운 곳의 인가도 철거시키도록 명했다(선조실록)." 살겠다고 배로 달려드는 백성을 죽이는 것도 선조의 명에 의해 자행된다.

종려 대신 과거에 급제한 천영은 약속대로 노비의 신분을 벗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만 매질당하고 광에 갇힌다. 그러는 사이 종려는 선조의 피란길 호위를 위해 떠나고 종려 집안의 노비들은 살기 위해 불을 지르고 달아난다. 정신을 차리고 광에서 빠져나온 천영 앞에 펼쳐진 무수한 주검과 불타는 집. 천영은 종려의 부인과 아이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지만 종려의 부인은 스스로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이로부터 천영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다. 몸은 자유로운 것 같으나 그렇지 못한 신분 노비의 굴레. 천영과 비슷한 신분인 의병의 무리는 왜구에 맞서 싸우고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우지만 노비의 신분을 벗기 위한 면천의 길은 사실상 요원하다. 오히려 권력에 의해 역도로 내몰린다.

선조의 전란이 우리 땅을 침략한 왜구들을 통해서라도 채울 것은 채우겠다고 타협하는 것이었다면, 천영과 의병들의 전란은 침략군에 대한 저항이며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선택이다. 권력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혹은 그 틀을 견고히 하려고 차마 하지 말아야 할 것들까지 동원할 때, 백성들은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함께 살 바를 도모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정여립의 모반에 대한 단죄로 시작된다. '대동'을 기치로 한 정여립의 사상은 영화의 마지막에 의병들의 '범동'으로 이어진다. '대동'이 역모가 되고 함께 뜻을 모은 모두가 효시된 것처럼, 살아남은 의병들에 의해 만들어진 '범동' 또한 당시의 배경을 감안한다면 역모로 끝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 63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의 전란은 무엇일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강유정 의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남원의 만인의총역사문화관이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정유재란'을 '정유전쟁'으로 공식 팸플릿을 인쇄해 사용하고 있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엄연히 '쟁'과 '란'은 그 의미가 다르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오랜 기간 우리가 당한 사회적 혼란과 고통을 생각한다면 자구 하나의 쓰임도 우리는 엄격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준 선조의 모습은 무모하면서도 무능한 권력의 단면이다. 현재 우리 정부의 태도와 방향도 선조의 뒤를 따르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작은 틈 하나가 둑을 무너뜨린다. 지금까지도 일제 36년간의 강점과 수탈에 대해 일본은 어떤 사과와 반성도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교묘하고 악랄한 태도를 생각한다면, 우리 스스로 조금의 빈틈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가지고 이념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스스로 전란에 몰아넣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부 보수(나는 이들을 보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체가 <소년이 온다>가 5.18에 대한 편파, 편향된 역사 왜곡이라며 노벨상 위원회의 주최국인 스웨덴 대사관에서 시위를 한다고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4.3 사건의 해석 또한 그들은 부정한다.

어느 나라든 의견의 차이는 존재한다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의 문제는 단순히 의견의 차이로 가볍게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소모적인 이념 전쟁이 우리를 전란으로 몰아넣을까 걱정된다. 그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사적 인식이고 역사관이다. 이미 5.18 민주화운동이나 4.3 사건은 이미 무수한 논쟁을 통해 결론에 이르렀으며 불필요한 의혹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무수한 침략에도 우리 민족은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게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은 삶과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틀리지 않았다는 증명 같기도 하다. 우리의 민족적 긍지를 말과 글로 보여주었고 인정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지나친 걸까.

임진왜란을 여러 시각으로 조명하고 그때마다 관객이 몰리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분명 아픈 역사지만 기어코 함께 살아내고자 하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조선의 임금 선조는 실패 군주임에도 살아남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무능하고 무력한 폭군은 아마도 국민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더불어 '대동'이든 '범동'이든 함께 살아남는 것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전란 이념전쟁 한강 노벨문학상 지도자의역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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