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복수의 레퀴엠"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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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처음 방영된 <기동전사 건담>은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철인 28호'나 '마징가 Z' 부류 '슈퍼로봇'과 대비되는 '리얼 로봇' 시대를 열었다. 이후 45년이 지났음에도 시리즈는 수많은 분야로 확장되며 수명연장에 성공 중이다. 텔레비전 시리즈는 물론 비디오로 시작해 DVD와 블루레이 등 2차 매체로 판매되는 OVA(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 그리고 극장판에 이르기까지 가지를 뻗어가며 로봇 애니메이션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명사 <신세기 에반게리온> 전설 역시 건담 시리즈가 없었더라면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건담 시리즈는 영상화에 그치지 않고 피규어 진영 일각을 담당하는 반다이의 '건프라'(건담 프라모델)로도 기획되어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기는 취미생활로 자리매김한다. 국내에도 명절만 되면 성인 남성들이 조카들의 공격에 노심초사하며 프라모델 장식장을 사수하려 애쓰는 비화가 심심찮게 들릴 정도이니 일본만의 문화를 초월한 지 이미 오래다.

건담 시리즈는 영상화와 함께 만화, 소설,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형식으로 뻗어 나간다. 다양한 결의 영상작업 중에서 일가를 이룬 게 현실 전쟁물과 궤를 같이하는 밀리터리 경향 작품군이다. 애초 리얼 로봇 장르를 표방한 것도 이전의 슈퍼로봇이 외계의 존재나 지구정복을 노리는 정체불명 악의 조직과 반복적인 대결을 펼치는 소년만화 형식을 벗어나 성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현실 정치나 사회적 대립을 과감히 접목했기 때문이다. 그런 특성을 한층 더 심화하는 경향은 프라모델 수요와 맞물려 독자 흐름을 형성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건담의 인기는 일본과 동아시아 일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서구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건담' 시리즈는 어떤 모습일까?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마침내 할리우드판 건담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많은 이들이 환호하며 어쩌면 좀 더 본격 밀리터리 장르로 재해석되지 않을까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본좌' 넷플릭스가 제작에 나섰다. <기동전사 건담: 복수의 레퀴엠>은 바로 그 첫 번째 도전에 해당한다.

"기동전사 건담 복수의 레퀴엠"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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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잔병의 시선으로 본 '하얀 악마' 건담

<기동전사 건담: 복수의 레퀴엠>은 수많은 건담 시리즈 중 기원에 해당하는 '퍼스트 건담'이 활약하던 1년 전쟁 후반부를 배경으로 삼았다. 때는 인류가 우주 개척에 나서 우주 식민지 스페이스 콜로니를 건설한 지 1세기가 다 되어가는 시점이다. 우주 진출을 기념해 서력을 우주세기(U.C)로 개정해 0079년이 되던 때다. 거대한 인공구조물을 건설해 지구 인구 과반수가 우주로 이민한 상태다. 하지만 소수 지구 잔존 기득권, '어스노이드'가 강제로 이주시킨 '스페이스노이드'를 수탈하고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 식민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사이드 1-7으로 명명된 스페이스 콜로니 그룹은 형식적 자치권을 부여받지만, 지구연방군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가장 멀리 떨어진 사이드3이 지온공국으로 개칭하고 독립전쟁에 나선다. 국력이 압도적으로 열세한 지온은 전쟁 초반에 자신들에 동조하지 않는 스페이스노이드도 학살하고 지구로 콜로니를 질량 병기 삼아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지고 국력이 한계에 달한 지온은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한다.

그나마 지온이 선전한 건 고도로 발달한 레이다 등 장거리 감시수단을 무력화하는 신기술 채용과 함께, 사실상 2차 대전 시절로 회귀한 근접전투 양상에 적합한 인간형 기동 병기, 모빌슈트(MS)의 활약 덕분이다. 하지만 지구전으로 시간을 번 연방군은 자체 모빌슈트 개발에 나선다. 그 결과물이 건담 프로젝트다. 지온의 질적 우위가 사라지고 연방군 모빌슈트가 더 성능이 뛰어난 게 확인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대역전 발판을 마련한 지구연방군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일대를 석권한 지온을 지구에서 몰아내기 위한 '오뎃사 작전'을 개시한다. 선봉에는 공장에서 쏟아져나오는 양산형 모빌슈트 GM, 그리고 지온 군에게 '하얀 악마'라 불리던 건담이 있다. <기동전사 건담: 복수의 레퀴엠>은 지금껏 이야기의 주역으로 등장하던 건담을 마치 악역처럼, 그리고 압도적 위력의 건담에게 패퇴하는 지온 모빌슈트 파일럿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반전의 작품이다.

아들 곁으로 돌아가고픈 엄마 Vs. 전쟁으로 모든 걸 잃은 소년병

1년 전쟁 11개월이 지나 지온 군은 공세종말점에 처한 뒤, 연방의 대반격으로 곳곳에서 패주하는 중이다. 남은 전력을 모아 지구의 본거지 오데사에서 우주로 탈출 작전이 진행되던 중, 동유럽 루마니아의 전초기지가 연방군의 기습을 받는다. 지원에 나선 솔라리 대위의 '레드 울프' 부대는 공격을 물리치지만, 그날 밤 건담의 습격으로 부대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겪는다. 마치 죽음의 사신처럼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건담은 '하얀 악마'란 별명에 걸맞은 압도적인 위력을 선보인다.

솔라리 대위는 많은 부대원을 잃고 생존자를 규합해 후방으로 탈출하지만, 건담은 사냥개처럼 일행을 끈질기게 추격하며 가는 곳마다 쑥대밭으로 만든다. 간신히 재활용 기지에 도착하지만, 이곳이라고 안전할 리 없다. 솔라리 일행은 도주를 포기하고, 재활용 자재로 지온 주력 모빌슈트 '자쿠' 2대를 재생한다. 다시 쳐들어온 건담과 GM을 간신히 물리치지만, 피해는 너무 컸다.

겨우 살아남은 후 유리 켈라네 장군에게 특명을 받은 솔라리 일행은 연방군의 양산형 병기 GM 탈취 작전에 나서지만, 추격해온 건담에게 실패로 끝나고 남은 대원도 잃고 만다. 하지만 솔라리는 건담 조종사가 소년병이란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전쟁 전 촉망받는 음악가였던 그녀로선 자기 아들보다 고작 몇 살 더 많은 건담 조종사가 아군을 몰살시킨 적군이라는 사실을 수용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든 건담의 공격을 막아야만 한 명이라도 더 아군을 우주로 귀환시킬 수 있다. 솔라리는 자신의 자쿠로 후위를 자처해 건담과 마지막 대결을 치를 결심을 다진다. 전황은 갈수록 악화일로고, 우주로의 퇴로도 봉쇄되기 직전이다. 솔라리는 필사의 항전을 치르면서도 건담 조종사와 어쩌면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꿈꾼다. 하지만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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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밀리터리 장르로 재현

처음부터 건담 시리즈 양대 대립 축인 지구연방과 지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vs 독일군을 참고한 설정이긴 했다. 복식과 무장부터 참조한 티가 팍 난다. 이후 무수히 등장한 밀리터리 경향 후속편들은 그런 대비를 더욱 심도 있게 고증하고 새로운 설정을 덧붙여나갔다. 처음엔 청소년 대상 적당히 끼워 맞춘 수준이던 무기와 군대 재현은 갈수록 까다로운 밀리터리 애호가들의 구미를 충족하고자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3D 애니메이션 제작된 < MS IGLOO > 시리즈는 <복수의 레퀴엠>의 직계 선조 작업이다. 건담 시리즈 중에도 가장 기원이자 원조에 해당하는 퍼스트 건담과 그 시대 배경인 1년 전쟁의 여백을 채우고 영상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았지만 여러 설정 자료집과 시나리오로 보강된 MSV(모빌슈트 바리에이션) 시리즈를 실물로 등장시키는 틈새시장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된 <이글루> 시리즈는 지온의 시선으로 본 전쟁과 연방군 시선으로 본 전쟁 외전 시리즈까지 9개의 에피소드로 호평을 받았다.

<복수의 레퀴엠>은 <이글루> 시리즈 질감을 고스란히 물려받으며 실제 전쟁에서 땅을 구르는 병사들이 공포의 시선으로 응시하는 적군의 탱크나 전투기처럼 양군의 모빌슈트를 형상화한다. 건담과 GM은 막강한 성능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연방군에겐 구세주 같은 존재이지만, 지온 군인들에겐 악마 그 자체다. 기묘하게도 <레디 플레이어 원>에선 사악한 메카고지라에 맞서는 정의의 히어로로 등장하던 건담이 <복수의 레퀴엠>에선 메카고지라 형상을 고스란히 닮았다. 해골 같은 형체에 빨간 눈을 희번덕거리는 건담의 존재는 올드팬에겐 너무나 낯선 풍경일 테다.

하지만 후반부에 밝혀지는 건담 소년병 조종사와 솔라리의 교감에서 일방적으로 패주하는 지온의 치부도 드러나기 시작한다. 소년병 입장에선 솔라리와 지온 군인들은 평화롭던 고향에 갑자기 침략해 질량 병기로 지구를 쑥대밭으로 파괴하고 가족을 죽인 외계 참략자에 불과한 것이다. 살려서 우주로 보내면 다시 힘을 키워 쳐들어올 것이다. 반드시 몰살해야 한다는 전쟁 증후군이 건담 조종사를 잠식한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지온 군인들도 딱히 다르지 않다.

여기에 특이한 개인이 추가된다. UMRC란 의료단체다. 현실의 '국경 없는 의사회'를 떠올리게 하는 단체 구성원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구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만, 이들 중 솔라리 일행에 동행한 젊은 의사 '오니'와 지온 군인들은 자주 설전을 벌인다. 무익한 살상을 지양하라는 오니와 내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군인들의 갈등은 전투 와중에도 불꽃을 튀긴다.

결국 생사를 건 대결은 결착을 봐야만 한다. 하지만 그저 전투 하나 끝날 뿐이다. 전쟁은 계속되고, 원한은 복수를 불러오고 새로운 전쟁으로 이어질 테다. 45년 동안 건담 시리즈는 화려한 거대 로봇들의 전투 장면으로 눈을 사로잡으면서도 전쟁과 평화에 관한 보편적 질문을 거듭해 왔다. 새로운 시리즈 역시 반다이 프라모델 신규 라인업 & 넷플릭스 서구 시청자 모두를 만족시킬 만하지만, 현란한 3D 액션 이전에 시리즈의 근본 질문을 새겨야 할 테다. 작품 속 소년병과 유가족의 비극은 지금 우리 세상에 넘쳐나지 않는가. 건담의 정수는 바로 거기에 있다.

"기동전사 건담 복수의 레퀴엠"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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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정보>

기동전사 건담: 복수의 레퀴엠
Mobile Suit Gundam: Requiem For Vengeance
2024 일본 리얼로봇 애니메이션
2024. 10. 17. 공개 편당 24분(총 6화) 15세 관람가
기획 반다이 남코 필름 워크스
제작 선라이즈, SAFE HOUSE
감독 에라스무스 브로스다우
각본 개빈 히그나이트
스트리밍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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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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