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의 <스테이지 파이터>는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3회만에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순수예술계에 20년간 몸담고 있는 필자로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순간이다. 이쪽에서도 관계자가 아니면 관심을 받기 쉽지 않은 '무용'이 대중들의 눈길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선 몸을 무기로 다양한 몸짓을 보여주는 64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전쟁 같은 현장에서 자신만의 필살기를 보여주기 위해 몸부림친다. 흔히 무용의 3대 장르라 불리는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아르코 댄스&커넥션' 포스터
'아르코 댄스&커넥션' 포스터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선보인 무용기획제작 프로젝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르코 댄스&커넥션'(Arko Dance&Connection)이라는 타이틀을 단 안무 창작경연 프로젝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이하 예술극장)이 <서울댄스컬렉션>, <솔로이스트>, < 아르코 파트너 Best & First >, < 아르코댄스필름 A to Z >, < SPAF > 등 몇 년간 펼쳐왔던 다양한 사업들을 종합해 2024년 새롭게 선보였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10년 넘게 무용PD로 활동해온 오선명씨는 이렇게 취지를 설명했다.

"다양한 예술환경이 공존하는데, '교류와 연결'에 적합한 창작플랫폼을 구축하려 합니다. 다시 말해, 실험적인 예술작업들의 연결지점에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도록 창작지원 환경을 만드는 것이죠."

'아르코 댄스&커넥션'은 그동안 예술극장이 집중해온 3가지 주제(접근성, 기후변화, 다양성)들 중에서 다양성에 초점을 맞췄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다양성을 중심으로 무용계에서 다각도의 창작 영역을 확대할 수 있도록 창작지원 환경을 구축하는 무용 기반 플랫폼"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지난 4월 공모를 통해 총 37명의 지원자들이 모였는데, 이중에서 4명을 선발했다. 신진부터 중견까지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거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거나,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을 실험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무용창작자들이 대상이었다.

여기에 선정되면 2년간의 로드맵이 약속된다. 1단계(2024년)에선 오픈콜 공모로 4명을 선정한 후, 중간 공유회와 연계프로그램 등을 거쳐 공연기간에 자신의 창작물을 공개한다. 2단계(2025년)에선 전 단계에서 완성된 작업을 1시간으로 레벨업시켜 지속 가능한 창작물로 다듬게 된다.

이런 장기적인 지원의 첫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행사가 곧 펼쳐진다. 오는 31일부터 11월 7일까지 총 4명의 안무가들이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스튜디오 하늘에서 그동안의 창작물을 연이어 공개한다.

전혁진 'Extinction Ver2 '(10월 31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전혁진의 작품은 옴니버스 형식의 퍼포먼스로 전개된다. 소멸에 관한 6개의 주제를 가지고 사진과 영상이 결합된 실시간 퍼포먼스로 말이다. 현대무용, 사진, 영상의 공동작업으로 실험적 협업을 통하여 결과물을 완성시켰다. 공간과 시간의 제한 속 신체 움직임을 카메라의 시각적 프레임에 담아내는 시도이자 존재하는 몸 그리고 소멸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혁진의 작품은 옴니버스 형식의 퍼포먼스로 전개된다. 소멸에 관한 6개의 주제를 가지고 사진과 영상이 결합된 실시간 퍼포먼스로 말이다. 현대무용, 사진, 영상의 공동작업으로 실험적 협업을 통하여 결과물을 완성시켰다. 공간과 시간의 제한 속 신체 움직임을 카메라의 시각적 프레임에 담아내는 시도이자 존재하는 몸 그리고 소멸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그라운드 제로 프로젝트의 예술감독이자 쿤스트(KUNST) 영상감독으로 활동해온 전혁진은 오랜 기간 안무가로 활동해왔지만 영상으로 활동영역을 확장하면서 타 장르와 접목을 꾸준하게 시도해왔다. 그랬던 그가 다시 몸짓에 대한 고민을 떠안고 이번 작품에 돌입한다고 다짐을 밝혔다. 실제로 댄스필름을 만드는 사람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왔고, 실시간으로 캡쳐해낸다는 것은 새로운 실험이기 때문에 자신도 어려운 도전이라 고백했다.

"기억되지 못한 것은 존재하지 않듯 매 순간 수많은 존재가 소멸되고 오직 기억되는 형상만이 존재한다."

시작은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기억의 소멸이 누구에게 닥쳐올 수 있는 일이지만 꼭 질병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작품을 기획했다. 공연은 다원적인 요소가 결합된 사진작가와 무용수로 출발했다면, 이제는 안무가가 바라보는 무용수의 프레임 안에 결과물을 담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은 옴니버스 형식의 퍼포먼스로 전개된다. 소멸에 관한 6개의 주제를 가지고 사진과 영상이 결합된 실시간 퍼포먼스로 말이다. 현대무용, 사진, 영상의 공동작업으로 실험적 협업을 톨해 결과물을 완성시켰다. 공간과 시간의 제한 속 신체 움직임을 카메라의 시각적 프레임에 담아내는 시도이자 존재하는 몸 그리고 소멸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철인X이진형 '어떤 힘 (Invisible Forces)'(11월 3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2016년에 창단한 ‘멜랑꼴리 댄스컴퍼니’의 대표로 ‘자유낙하’ ‘비행’ ‘초인’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온 정철인은 분명 무용계에서 가장 뜨거운 존재감을 갖는 안무가 중 한 명이다. 국립현대무용단과 작업을 할 때도 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왔던 그가 이번에는 융복합의 힘을 빌려 작품을 완성시켰다. 아마도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아르코 댄스&커넥션'의 취지에 정확히 부합하듯이 협업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2016년에 창단한 ‘멜랑꼴리 댄스컴퍼니’의 대표로 ‘자유낙하’ ‘비행’ ‘초인’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온 정철인은 분명 무용계에서 가장 뜨거운 존재감을 갖는 안무가 중 한 명이다. 국립현대무용단과 작업을 할 때도 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왔던 그가 이번에는 융복합의 힘을 빌려 작품을 완성시켰다. 아마도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아르코 댄스&커넥션'의 취지에 정확히 부합하듯이 협업과정에 초점을 맞췄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6년에 창단한 '멜랑꼴리 댄스컴퍼니'의 대표로 '자유낙하', '비행', '초인'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온 정철인은 분명 무용계에서 가장 뜨거운 존재감을 갖는 안무가 중 한 명이다. 국립현대무용단과 작업을 할 때도 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왔던 그가 이번에는 융복합의 힘을 빌려 작품을 완성시켰다. 아마도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아르코 댄스&커넥션'의 취지에 정확히 부합하듯이 협업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얽힘'의 비국소성을 모티브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운동성, 에너지를 가지고 장면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기술적 바탕을 활용한 장치와 연결해 사람과 사물의 '얽힘'에 대한 실험을 이어간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힘이 주제다.

이 움직임은 보통의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연결과 단절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사물은 뜻밖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양자역학의 모티브를 가지고 현실을 넘어, 새로운 감각으로 '다르게 보기' 를 제안한다.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한 세계에서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흐른다. 손짓 하나에 반응하는 사물은 때로는 거리를 두고, 때로는 긴밀하게 엮인다. 보이지 않는 힘들이 뒤엉켜 현실을 새롭게 재편하는 순간, 일상은 낯선 퍼즐로 변한다.

김건중 '미들 워킹 미들(middle walking middle'(11월 5~6일, 대학로예술극장 스튜디오 하늘)

 김건중의 '미들 워킹 미들'은 누구보다 빨리 나아가고 싶지만 뛰지 않기 위해 걸려 넘어지는 경보의 움직임에서부터 출발한다. 스포츠의 규범이 요구하는 몸의 규율들은 경보하는 몸을 뒤틀고 왜곡한다. 빠르게 걷기 위해 경보 선수들의 골반은 기이하게 뒤틀리고, 나아가는 다리는 무릎을 편 채 땅을 딛는다. 작품은 몸 안에서 벌어지는 ‘느린 스펙터클’이자 역설적인 몸의 역동성에 주목한다.
김건중의 '미들 워킹 미들'은 누구보다 빨리 나아가고 싶지만 뛰지 않기 위해 걸려 넘어지는 경보의 움직임에서부터 출발한다. 스포츠의 규범이 요구하는 몸의 규율들은 경보하는 몸을 뒤틀고 왜곡한다. 빠르게 걷기 위해 경보 선수들의 골반은 기이하게 뒤틀리고, 나아가는 다리는 무릎을 편 채 땅을 딛는다. 작품은 몸 안에서 벌어지는 ‘느린 스펙터클’이자 역설적인 몸의 역동성에 주목한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미들 워킹 미들'은 누구보다 빨리 나아가고 싶지만 뛰지 않기 위해 걸려 넘어지는 경보의 움직임에서부터 출발한다. 스포츠의 규범이 요구하는 몸의 규율들은 경보하는 몸을 뒤틀고 왜곡한다. 빠르게 걷기 위해 경보 선수들의 골반은 기이하게 뒤틀리고, 나아가는 다리는 무릎을 편 채 땅을 딛는다. 작품은 몸 안에서 벌어지는 '느린 스펙터클'이자 역설적인 몸의 역동성에 주목한다.

근대 이후의 무용이 끊임없이 추구해 온 역동성을 '뛰기'로 간주한다면, 2000년 전후로 등장하기 시작한 멈춰서는 안무들을 '걷기'로 볼 수 있다. 최근에 와서 "걷기와 뛰기 사이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동시대적 안무의 미학은 무엇인가"를 고민한 것이다. '미들 워킹 미들'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경보의 몸을 탐구해 동시대 안무가 좇는 몸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실제로 안무가는 단순히 보는 공연을 너머 작품이 공개되는 '대학로예술극장 스튜디오 하늘'에서 관객들이 달려볼 수 있는 러닝머신을 설치했다. 안무가가 의도한 '걷기'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다면 안무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않을까.

이해니 'Pan & Opticon'(11월 7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현대무용에 속하는 다른 3명의 안무가들과 다르게 이해니는 발레 영역이다. 개인의 선택으로 시작되는 알고리즘의 감시는 오히려 인간의 주체적인 선택을 제한한다. 변형된 기억과 편향된 사고를 주입하고 형성하는 메시지를 관객 참여형으로 표현한다.
현대무용에 속하는 다른 3명의 안무가들과 다르게 이해니는 발레 영역이다. 개인의 선택으로 시작되는 알고리즘의 감시는 오히려 인간의 주체적인 선택을 제한한다. 변형된 기억과 편향된 사고를 주입하고 형성하는 메시지를 관객 참여형으로 표현한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대무용에 속하는 다른 3명의 안무가들과 다르게 이해니는 발레 영역이다. 개인의 선택으로 시작되는 알고리즘의 감시는 오히려 인간의 주체적인 선택을 제한한다. 변형된 기억과 편향된 사고를 주입하고 형성하는 메시지를 관객 참여형으로 표현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내 말은 알고리즘이 듣는다."

인류는 휴대폰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됐고, 그와 동시에 알고리즘이란 덫에 빠져 인간은 스스로 목줄을 착용한 채 살게 되었다. 목줄이 채워져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개처럼 인류는 알고리즘이 가둔 영역 밖으로 스스로의 사고를 옮기지 못하는 처지에 빠진다.

'Pan & Opticon'은 알고리즘의 감시통제사회를 현대판 판옵티콘(Panopticon)에 비유해, 알고리즘에 의해 파생된 편향적 사고, 통제, 왜곡 등의 여러 문제점을 '보다: OPTICON'라는 키워드로 다각적으로 탐구한다. 여가에 관객 참여를 통해 관객(감시자)과 무용수(피감시자)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는 역판옵티콘(reverse panopticon) 구조를 차용해 시각적 행위의 개념적 확장과 재해석을 무대 위에 그려낸다. 모두를 뜻하는 Pan과 '눈으로 본다'를 의미하는 Opticon의 합성어로, 판옵티콘은 간수가 죄수들의 모든 행동과 모든 관계를 한눈에 파악하고 감시할 수 있는 시설을 의미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포스트에도 실립니다.
아르코 댄스 커넥션 무용 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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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예술만 씁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계 현장에 몸담고 있으며, 문화예술 종합시사 월간지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년)과 한겨레신문(2016~2023년)에서 매주 문화예술 행사를 전하는 '주간추천 공연·전시' 소식과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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