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노라> 관련 이미지.
영화 <아노라> 관련 이미지.유니버설 픽쳐스

인생의 한 순간을 낭비하며 사는 이들도 희망을 꿈꾸기 마련이다. 전 세계 메트로폴리스라고 할 수 있는 뉴욕에서 스트리퍼로 살아가는 아노라(미키 메디슨)는 자신의 고객에게 달콤한 사랑의 말을 듣고 황홀경에 빠지고 만다.

제77회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아노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만틈 그의 상황과 내면을 통해 인생의 단면을 과감하게 들여다본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러시아 재벌 2세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을 고객으로 만나게 되고, 그의 온갖 구애와 제안을 수용하다가 문득 충동적인 청혼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까다롭고 엄격한 엄마와 달리 이반은 철부지 그 자체다. 러시아를 떠나 미국에서의 단 2주의 휴가 동안 이반은 음주, 성매매, 마약까지 손댄다. 마치 작정하고 순간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려는 이반을 두고 아노라는 자신의 상황을 타계해 줄 사랑의 상대처럼 여기고 만다.

 영화 <아노라> 관련 이미지.
영화 <아노라> 관련 이미지.유니버설 픽쳐스

본격적인 사건은 여기서부터다. 영화는 아들의 깜짝 결혼 소식에 놀라서 달려온 부모, 그에 앞서 하수인을 시켜 어떻게든 이혼을 시키려는 과정을 유쾌하게 묘사한다. 기를 쓰고 거부하며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아노라는 어느새 하수인들과 함께 이반의 행방을 쫓는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이혼시켜야 하는 자들과 이혼하기 싫은 자들이 공통의 인물을 추격하는 과정을 액션과 코미디 장르 요소로 풀어냈다. 주인공들이 20대 초반이라는 설정, 그리고 험악한 인상과 달리 다소 허당의 모습이 있는 하수인 설정 등 캐릭터 조합 또한 흥미롭다. 잠깐 달콤한 꿈을 꿨던 아노라가 희망을 잃어가는 과정 자체는 절망적이지만, 그 또한 무겁게만은 다루지 않는다.

웃고 공감하다 보면 이 무모한 이혼 작전이 전하는 주제를 문득 떠올리게 된다. 재력이 현대 사회의 신분제처럼 작동하는 사회에서 아노라의 발버둥은 운명을 거스르고 싶지만 자신의 모습은 결코 바꾸기 싫은 청춘을 상징한다. 그 순진함과 어리석음은 다행히도 어리숙하면서도 선한 악당들을 만나며 크게 상처 입진 않았지만, 선택의 무서움과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당위의 무게감까지 무마하진 못한다.

그래서 <아노라>를 보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또한 이반과 아노라를 마냥 철없다며 무시할 수만은 없다. 누구든 자신의 인생에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거나 허황한 꿈을 꾼 채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지점을 유쾌하게 건드린다는 데 이 영화의 미덕이 있다.

 영화 <아노라> 관련 이미지.
영화 <아노라> 관련 이미지.유니버설 픽쳐스

한줄평 : 유쾌한 통찰력에 설득당하고 만다
평점 : ★★★☆(3.5/5)
영화 <아노라> 정보

원제 : ANORA
감독 : 션 베이커
출연 : 미키 매디슨, 마크 아이델슈테인, 유리 보리소프 외
수입 및 배급 : 유니버설 픽쳐스
관람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국내개봉 : 2024년 11월 6일






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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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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