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잠자리 구하기> 스틸컷
영화 <잠자리 구하기> 스틸컷디오시네마

수학능력시험. 도로가 통제되는 건 기본, 경찰과 소방인력이 학생을 실어 나르고, 회사들은 출근 시간을 변경하며, 듣기평가 시간에 맞춰 비행기까지 뜨지 않는다. 모든 언론이 종일 수능시험 면면을 이야기하는 건 기본이다. 학부모가 교문 앞에서 시험을 치르는 아이를 기다리며 염원을 하는 일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각종 종교 종파 또한 제 신도의 복을 기원하며 기도를 올린다. 이쯤이면 수능이 국가의 중대사란 사실에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왜인가. 어째서 전 국민이 수능을 특별하게 여기는가. 그저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등용문, 수학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일뿐이 아닌가. 좋은 대학교를 나오는 게 성공을 보장하던 일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굳이 이 시험에 온 정력을 쏟아 부을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가만히 수능을 치르는 아이들의 삶을 지켜보면 그 답이 머리를 드러낸다.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에 가고, 다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본격적인 생애주기의 트랙이 제 모습을 내보인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각 3년 씩, 총 12년에 걸친 학창시절이 오로지 하나의 관문을 향해 내달리는 것이다.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과목들은 대입시험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어, 수학, 영어, 그밖에 사회와 과학 여러 과목들이 서울 도심에 사는 아이와 도서지역에 사는 아이까지 동등하게 교육되고 평가된다.

그로부터 단 한 번의 시험, 모든 것을 결정짓는 이 시험의 결과로 아이는 지난 시간을 보답 받는다.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다른 누구는 패자가 되는 게임이다. 소위 명문대, 일류 학과 등 자신과 가족이 납득할 만한 곳에 간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명확히 갈라지는 일이다.

 영화 <잠자리 구하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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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구하기>는 이 땅의 모든 학생들이 갈려나가는 수능을 향한 경주를 비춘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재수생활, 나아가 대학생이 되고 난 뒤까지가 늘상 들고 있던 카메라에 담겨 한 편의 영화로 거듭났다. 처음부터 명료한 목적은 없었던 듯 담아낸 일상은 입시 과정 중에 있는 나와 친구들, 또 그들의 고민을 비춘다. 그것이 그 자체로 한국사회의 일면이 되고, 이 사회가 품고 있는 부조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감독은 홍다예. 처음엔 그저 평범한 여고생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아무 말이나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이 시대 여느 아이와 같다. 아무 때나 카메라를 들고 학급을 비추다가 교사에게 꾸지람을 들은 날에는 격하게 선생을 욕하다가 죽고 싶다는 말까지 주저 없이 내뱉는다. 그 모습이 불만과 분노가 가득 쌓인 이 시대 흔한 청춘의 일면인 듯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어느 곳으로 가고픈 목적이나 꿈 따위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공부를 제법 잘 하는 모양으로, 서울대학교에 원서를 넣었지만 그대로 낙방했다. 그리하여 다예는 재수를 한다. 재수는 아버지의 제안이었다고 하지만 원하지 않았다면 굳이 하진 않았을 테다.

좋은 학교에 가야겠단 마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를 알 수 없는 채로 홍다예는 재수를 하고 집안과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이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 그녀의 선택은 예술이다.

불안 없는 대한민국 청소년은 없다

한예종에서 다큐를 전공한 건 자연스런 선택처럼 보인다. 학창시절 동안에도 아무 때나 카메라를 들고 친구를 찍었던 홍다예가 아닌가.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이니 무턱대고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그녀가 마냥 좋았을 리 없다. 싫은 표현도 해보고 다투기도 했다는데, 감독은 자기만 그런 일을 모르는 듯 무턱대고 찍었다고. 그렇게 찍은 영상이 모여 한 편의 영화로 태어났다. 고교시절부터 재수와 대학교 생활까지를 아우른 <잠자리 구하기>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 내내 두드러지는 건 어떤 불안이다. 왜 아닐까. 아이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공부를 하려고 정규수업이 모두 끝난 밤 늦게까지 자율 없는 자율학습에 매진해야 하는가. 오로지 소수만이 살아남는 좁은 문을 향해 끝도 없이 경쟁하고 있는가. 좋은 대학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러면 인생이 무너져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모든 아이에게 깃들어 있다. 학교 안에 갇힌 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는 수능이란 문을 통과하기까지의 12년을 어느 아이가 선택하고 결정해 걷는가.

 영화 <잠자리 구하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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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구하기>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잠자리 같은 학생들을 구하고 싶은 홍다예 감독의 일상 다큐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이유로 사회복지사와 NGO 활동가를 꿈꿨던 그녀가 다큐 감독이 돼 만든 작품엔 자신이 살아온 길과 그 길에서 고통 받았던 친구들이 담겼다. 불안의 나날 가운데 어느 친구 하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영영 마주할 수 없게 됐다고 전한다.

도전과 성취라는 흔한 영웅담이 아닌 낙방과 절망, 그리고 우울증이 이 영화 안에 담겼다. 학창시절 친구를 잃고, 이제는 스스로가 우울증을 겪는 홍다예다.

어느 날인가, 그녀는 마포대교 위에 선다. 엄마는 그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을 쏟아버리고, 아버지도 그저 미안하다고 말할 뿐이다. 무엇이 그저 열심히 살았을 그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런 기억으로 남았을까. 홍다예는 어째서 마포대교 위에 섰던 것일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그녀다. 친했던 친구와도 멀어지고, 또 다른 친구와도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대학교 동아리방에서 한 친구는 홍다예에게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관계도, 나 스스로를 아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홍다예는 여전히 여물지 않은 인간인 것만 같다.

영화는 끊임없는 방황의 기록처럼 보이기도 한다. 욕설로 점철된 발언들과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 인간관이며 세계관따위가 모두 그렇다. 어지러운 기록의 나열 가운데 분명히 떠오르는 건 방황하는 청춘, 그 자체다.

영화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건 역시 한국의 입시다. 입시와 입사 모두가 인간을 불안하게 한다. 그 사이 관계맺음이며 공동체 같은 건 들어설 자리를 얻지 못한다. 초점이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서 불안과 방황, 우울의 흔적들만 역력하다. 이것이 그저 홍다예 개인의 이야기만이 아니기에 한국사회가 <잠자리 구하기>를 함께 읽어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닐는지.

새로운 교육감에게 바라는 것

2022년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40%가량이 일상생활 가운데 스트레스 지수가 대단히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2023년 교육부의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서도 41.3%가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고 응답했다. 중·고등학생 가운데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의 깊은 우울감을 경험한 비율은 무려 28.7%다.

불안과 스트레스 속에서 짙어지는 우울감은 청소년 자살·자해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부분이 불안과 스트레스를 겪고, 그중 일부만이 살아남는 현재의 교육체계가 공동체를 위해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지난 반세기 가량이나 수능이란 좁은 문과 그를 향해 내달리는 체계를 유지해온 것이다. 대체 얼마나 더 많은 학생이 쓰러져야 이를 그만둘 것인가. 더는 효율적이지도 않은 이 체제를 언제까지 그대로 놓아둘 것인가 말이다.

 영화 <잠자리 구하기> 포스터
영화 <잠자리 구하기> 포스터디오시네마



16일은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일이다. 조희연 전 교육감이 2018년 전교조 출신 해직교사 5명을 부당하게 특별채용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으며 교육감직을 상실한 데 따른 것이다. 서울시교육감으로 10년을 일한 조 전 교육감의 뒤를 이어 서울 교육을 총괄할 새 교육감을 시민이 직접 선출해야 한다. 진보와 보수진영에서 각각 단일후보를 낸 가운데 역사의식과 교육철학, 개인적 역량 등에 대한 날 선 공방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사전투표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투표 당일도 휴일이 아닌 데다 시민사회에서도 이렇다 할 반향이 일지 않아 무관심한 선거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교육은 미래세대를 길러내는 사회의 주요한 책무다. 그 세대가 물에 빠진 잠자리처럼 허우적거리고 있다. <잠자리 구하기> 개봉일이 교육감 선거일과 같은 건 그저 우연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잠자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잠자리구하기 홍다예 디오시네마 다큐멘터리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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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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