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에드워드라는 미국 이름이 있지만, 또 제게는 한국 이름이 있어요. 저의 한국 이름은 균입니다. 한국 음식을 시키면 항상 많이 줘서 다 못 먹고 남기곤 했습니다. 특히 떡볶이, 그걸 시켜 먹으면 마지막 두세 개는 항상 남겼습니다. 처음엔 이해를 못했는데 그게 바로 배려이고,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요리는 '이균'이 만들었어요."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마지막 대결에서 에드워드 리가 남긴 편지글이 한동안 화제였다.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이라는 곳에서 오너 셰프로 오래 일해 온 그는 수십 년 쌓아온 내공으로 백수저 팀을 대표하는 유력한 우승 후보자 중 하나였다. 결과적으로 패기 넘치는 흑수저 팀 나폴리 맛피아(권성준)에게 지고 말았지만, 누리꾼들 사이에선 '내 마음속 우승자는 에드워드 리'라는 등 호감도가 급상승 중이다.

보통 예능이든 드라마에서든 언더독(Under dog, 이길 확률이 적은 쪽을 일컫는 말)이 주로 응원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흑백요리사> 속 에드워드 리에게 만큼은 그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요리에 대한 그의 진정성, 특히 재미교포 2세로 한국어는 매우 서툴지만 매회 한국 요리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재료 선정과 메뉴 구성부터 도전의 시작

 에드워드 리가 작가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 <발효>(Fermented)의 관련 이미지.
에드워드 리가 작가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 <발효>(Fermented)의 관련 이미지.SIFF

방송에선 분량상 편집돼야 했겠지만 에드워드 리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시청자 일부는 이미 전 세계 셰프를 대상으로 한 경연 대회 예능인 <아이언 셰프> 우승자 에드워드 리가 왜 필살기 메뉴를 선보이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흑백요리사> 마지막회 공개 이후 미국의 한 팟캐스트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다름 아닌, 지금까지 경연대회에 내왔던 자신의 요리와 같은 메뉴를 절대 내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원칙 때문이다.

1972년, 한국나이로 52세인 그는 서울에서 태어난 뒤 바로 미국 뉴욕 브루클린 지역에서 유년 및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할머니와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던 그는 9세 때 자기도 이유를 몰랐지만, 커서 요리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어머니도 전업주부로 주방을 지켰고, 16세 때 식당에 취직했다가 한 프랑스 식당에서 본격적으로 요리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Chez Es Saada'라고 알려진 이 프렌치 식당에서 그는 본 요리보단 직원들 식사를 만들 때 더 기뻤다고 한다(현지 해당 식당은 영업을 안 하는 것으로 보인다-기자주).

당시 기억에 대해 그는 다큐멘터리 <예스 셰프 – 에드워드 리의 이야기> 편에서 "<뉴욕타임즈>나 프랑스 <보그> 잡지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내 요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설상가상 9.11 테러로 단골손님 중 일부를 잃게 되자 충격에 빠진 그는 미국 전역을 방랑하기 시작했고, 평판도 전혀 없는 루이빌의 '610 매그놀리아' 식당에서 아주 잠깐 일을 돕기도 했다.

이때 인연으로 그는 '610 매그놀리아'의 다음 오너 셰프 제안을 받는다. 처음엔 고사했으나 이미 은퇴 시점을 지난 당시 오너가 끈질기게 설득해 가족을 이끌고 미국 남부 텍사스 루이빌로 이사하게 된다.

처음엔 많이 힘들었음을 그가 고백한다. 가게를 물려받은 지 처음 6개월 간엔 55석 규모 식당에 하루 평균 5, 6명이 채울 뿐이었다. 끊임없이 미국 남부 요리를 공부했고, 지역 식당을 찾아다니며 여러 노하우를 전수받고 음식에 대한 진정성을 강조한다. <예스 셰프 – 에드워드 리의 이야기>에 자세한 과정이 담겨 있다. 콘브레드 치킨, 켄터키식 프라이드 치킨 등 전통 남부 요리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그는 소박한 재료들의 힘과 맛의 기원을 알아가는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제겐 삶의 보물과도 같은 식당들이 여럿 있었다. 잊고 있던 맛들을 재현하는 곳"이라고 그는 다큐에서 회상한다. 루이빌 인근 농장, 목장을 직접 다니면서 소유주들과 신뢰를 쌓았다. 이 대목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 농장주에게 작물이 마치 자식과도 같지 않냐고 물으며 "사실 요리사라는 사람은 맛을 창조하는 게 아닌, 재료의 맛을 끌어다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재료가 많이 중요하다"고. 이 대목에서 재료의 중요성, 그리고 그 조합을 창의적으로 끌어내려는 그의 개성을 읽어낼 수 있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집념

또한 자신의 할머니나 어머니가 그랬듯 딸 아든과도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수박과 튀킨 팝콘을 함께 조합시키는 과정에서 그는 딸에게 맛의 복잡미묘함, 새로운 조합의 재미를 일깨우곤 한다. 아내인 다이앤 리와 연애할 때도 그는 음식과 와인 얘기로 시작해, 모든 요리를 알려주겠다고 꼬셨다고 한다. 켄터키 출신인 다이앤 리는 그가 루이빌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서적 안정감을 줬을 뿐만 아니라 지역문화와 여러음식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예스 셰프 – 에드워드 리의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선 에드워드 리가 왜 그토록 창의적일 수 있는지 그 비결과 이유를 알 수 있다. 복숭아, 딸기, 파인애플, 심지어 가공된 볼로냐 햄을 타기 직전까지 요리하면서 그는 "확 태웠음에도 탄 맛이 안 나는 재료가 있다"고 동료에게 말한다. 그 결과 볼로냐 샌드위치엔 다소 그을린 과일 재료를 올라가는 게 필요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10년 간 매일 하던 방식으로 양파를 요리한다면 학습할 수 없다. 위험을 감수하고 뭔가 다른 걸 했을 때 그게 소용없다는 걸 깨닫는다고 해도 그게 학습이다. 어떤 재료는 탔음에도 그을음을 압도하는 맛이 난다. 이처럼 자신이 원하지 않는 시도를 해보고 맛봐야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를 알게 되고, 자신만의 미각을 찾게 된다.

탄맛이 얼마나 음식의 맛을 밀어내는지 실험한다면, 어떻게 재료를 요리하고 싶은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실패를 경험해야 뇌가 움직인다. 음식을 태워보고,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망해봐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려면 완벽하게 실수해보아야 한다."

<발효>라는 다큐멘터리로 주목 받아

 에드워드 리가 작가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 <발효>(Fermented)의 관련 이미지.
에드워드 리가 작가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 <발효>(Fermented)의 관련 이미지.SIFF

2017년 그가 작가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 <발효>(Fermented)는 시애틀영화제의 초청을 받는다. <흑백요리사>에서도 팀 미션이었던 대결에서 '장아저씨 식당'를 구상할 만큼 발효된 장에 진심이었다. 루이빌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한국 식료품점을 찾아다니며 여러 재료를 사용해 본 경험이 팀 미션에서도 빛을 발해 고추장 기반 스테이크를 선 보일 수 있게끔 했다.

<발효>라는 작품에서 그는 미생물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드러낸다. "흔히들 개가 인간의 가장 오랜 친구라고들 알고 있지만, 미생물이 사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운을 뗀 그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미생물을 활용한 음식을 마시 러시안 룰렛처럼 생각하는데, 내겐 모든 음식의 기본이자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발효라는 건 어떤 문화나 인종적 배경과 상관이 없다. 누구에게나 발효의 역사가 있다. 그게 매혹적이었다. 우리 주변에 손을 뻗기만 해도 박테리아를 만질 수 있고, 뭐든 만들 수 있다. 발효는 요리 기술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이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다."

한 평론가는 해당 다큐에 대해 "<발효>라는 작품은 요리계에서 간과되기 쉽지만 널리 사용되는 과정 중 하나를 환상적으로 탐구한 작품"이라며 "유일한 불만은 이 다큐멘터리가 한 시간 분량밖에 안 된다는 것"이라며 극찬하기도 했다.

여성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에드워드 리.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에드워드 리.넷플릭스

그가 자신이 세운 요리학교를 통해 꾸준히 여성 셰프를 독려하고, 동네 커뮤니티 행사를 통해 노동자나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여러 외신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에드워드 요리학교 내 여성 셰프들은 꾸준한 교육과 지원을 받으며, 정기적으로 요리를 평가받고 보완 방법을 배운다.

이런 교육방식에 대해 에드워드 리는 자신이 왜 음식에 이야기를 중시하는지로 대신 설명한다. 그는 "요리라는 건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여러 사람의 이야기"라며 "내 요리 또한 수년간 쌓아 올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리하는 사람이 여성이어도, 유럽인이나 미국인이 아니어도, 경력이 적은 젊은 친구라도 배울 것들이 있다"고 강조해오고 있다.

지역 커뮤니티 행사를 열고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도 그는 재밌는 실험들을 하곤 한다. 다큐 <에드워드 리의 이야기>에서 파티 공동 주최자에게 머스타드 색깔의 소스를 먹게 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맛보고는 딱 머스타드인 줄 알던 이에게 에드워드 리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바나나를 열심히 구워 만든 소스라고 설명한다. 소스 하나에조차 그의 창의성을 담아낸 셈이다. 호탕하게 웃으며 동료에게 내뱉는 한 마디 말에 어쩌면 그의 요리 철학 정수가 담긴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원한 건 음식 그 자체가 아닌 음식으로 맺어진 기억과 추억, 그리고 사랑이다. 내가 당신에게 요리법을 알려줄 수도 있지만, 그게 당신으로 하여금 요리를 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난 당신이 원한다면 악기를 알려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의 기억과 추억이다. 그걸 얻기 위해서 당신은 요리를 할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릴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한하다."

에드워드리 흑백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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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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