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년이> 속 한 장면
tvN
한국전쟁 3년 뒤인 1956년 이후를 배경으로, 윤정년(김태리 분)이 여성국극 배우의 길에 도전하는 모습을 담은 이 픽션은 제1회 방영분에서 한국 창극의 변화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보여줬다. 바다에서 해물을 직접 채취해 시장 노점에서 언니 윤정자(오경화 분)와 함께 판매하는 정년은 행패 부리며 돈 뜯는 건달들의 위협을 받던 중에 갑자기 돌발 행동을 한다.
칼 도마로 쓰는 나무 그루터기 위로 뛰어오른 그는 갑자기 공연을 시작한다. "남원산성 올라가 / 이화 문전 바라보니 /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 떴다 봐라 저 종달새" 하며 <남원산성가>를 불러댄다.
깜짝 공연으로 시장 상인들과 행인들은 물론이고 깡패들도 노랫소리에 집중하게 됐다. 군중이 일체화되는 이 분위기는 건달들의 패악질을 더 이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공연차 목포를 방문했다가 때마침 이를 목격한 여성국극 스타 문옥경(정은채 분)이 정년에게 접근해 거리 공연이 아닌 극장 공연의 길로 인도하는 모습이 제1회에서 방영됐다.
2001년에 <고전희곡연구> 제3집에 실린 백현미 이화여대 강사의 논문 '한국 창극의 역사와 민족극적 특성'은 창극과 국극과 가극이 동일한 분야를 지칭하는 용어라고 한 뒤 "판소리를 바탕으로 창극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1900년대 초반의 문화적 변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라며 이런 설명을 한다.
"1902년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 극장인 협률사가 설립되었고 1907년을 전후해서 단성사·연흥사·장안사 등의 사설 극장이 속속 설립되면서 이른바 극장 문화가 보다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공연의 주 무대가 극장으로 옮겨가는 추세 속에서 창극이 자리를 잡았다. 바닷가와 시장에서 노래 부르던 윤정년이 극장 배우의 길을 걷는 모습은 창극과 관련된 이런 변화를 떠올리게 해준다.
2008년에 <낭만음악> 제20권 제3호에 수록된 주성혜의 '전통예술로서의 여성국극'은 "김소희와 박귀희, 박록주 등 판소리 명창들이 모여 여창들로만 구성된 창극을 처음 무대에 올린 것은 1948년 10월"이라고 한 뒤 "1950년대 내내 여성국극단은 대중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고 평한다.
지난해 <한국예술문화연구> 제3권 제1호에 게재된 남경호 한국사회문화예술진흥원 이사장의 논문 '여성국극의 재기 노력과 발전 과제'는 김소희·박귀희·박록주 등이 "남성 국악인들이 중심이 되었던 국악계의 현실에 반발"해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했다고 한 뒤 이후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임춘앵이 1952년 여성국악동호회를 탈퇴하고 나와 여성국악동지사를 조직해 활동하게 되었다. 이후 김진진의 진경여성국극단, 김경애의 새한국극단, 박만호의 보람국극단 등 30여 개의 국극단이 활동하여 인기를 누렸다."
여성국극이 대중의 호응을 얻은 배경과 관련해 위 주성혜 논문은 "외국 영화의 배급과 국산영화 제작이 일시 중단되었던 피난 시절 이후 봉건적인 낭만세계에 대한 동경을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라며 "여성이 남장하는 데서 오는 매력과 일부 남자 명창들의 월북도 여성국극의 번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지적된다"고 부연했다.
여성국극 향한 팬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