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두 스포츠 전설이 같은 날 영면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프로농구(NBA) 역사상 최고의 블록왕으로 꼽히던 디켐베 무톰보,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개인 통산 안타 1위 기록을 보유한 피트 로즈가 지난 9월 30일(한국시각) 나란히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레전드로 남은 무톰보, 영구 제명당한 로즈

 디켐베 무톰보

디켐베 무톰보 ⓒ AP=연합뉴스


무톰보는 1990-2000년대 NBA 농구 팬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친숙한 선수다. 1966년 아프리카 콩고에서 태어난 그는 조지타운대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덴버 너기츠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애틀란타 호크스-필라델피아 76ers, 휴스턴 로켓츠, 뉴욕 닉스, 뉴저지 네츠 등에서 무려 18시즌에 걸쳐 선수생활을 보냈다.

무톰보는 218cm의 장신에 팔이 길어 역대 최고의 수비형 센터로 활약했다. NBA '올해의 수비수상'만 무려 4회(1995, 1997-1998, 2001)나 수상했고, 디펜시브 퍼스트팀과 세컨드팀 각 3회, 블록왕 3회, 리바운드왕 2회, 올NBA팀 3회, 올스타 8회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트레이드 마크인 블록슛은 무려 3289개로 하킴 올라주원(3830개)에 이은 역대 2위다.

'산(mountain)'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무톰보는 상대 선수의 슛을 블록해 낸 뒤 검지를 까딱까딱 흔들며 도발하는 듯한 특유의 세리머니로도 유명했다. 자신을 앞에 두고 결코 슛을 시도할 수 없다는 기싸움의 표현이었다. 1994년 덴버 시절에는 서부 플레이오프 진출팀중 꼴찌인 8번시드를 받고 당시 1번시드인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격침시키는 드라마틱한 이변을 연출해낸 주역이었다. 당시 8번시드가 1번시드를 잡은 것은 덴버가 사상 최초였다.

다만 무톰보 입장에서는 다소 불운했던 부분이 있다. 그하킴 올라주원,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 샤킬 오닐 등 이른바 4대 센터로 불리우는 NBA 역대 최고의 선수들과 동시대에 전성기가 겹쳤다는 것이다. 이들에 비해 수비력은 뒤질 것이 없지만 공격력이 현저히 떨어졌던 그는 1옵션이나 에이스가 될수는 없었다. 무톰보보다 후대의 수비형 센터를 대표하는 벤 월러스나 루디 고베어 같은 선수들에 비해 수상 실적이나 동시대의 위상 면에서 손해를 본 이유다.

또한 무톰보가 뛰었던 시대에는 4대 센터 외에도 조던의 시카고 불스, 샤킬 오닐-코비 브라이언트의 LA 레이커스같은 강팀들이 포진해 NBA를 제패하면서, 무톰보는 끝내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무톰보는 2001년 필라델피아, 2003년 뉴저지에서 두 번의 NBA 파이널을 경험했으나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무톰보는 2009년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은퇴했고, 커리어 평균 9.8점과 10.3 리바운드의 성적을 남겼다. 2015년 네이스미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리그 역사에 한획을 그은 농구 레전드로 남게 됐다.

하지만 2022년 뇌종양이 발견돼 투병생활을 해왔고, 2년 뒤 58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과 작별을 고하게 했다. NBA 사무국은 이날 "애틀랜타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무톰보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에 사망했다"고 전하며 전설의 영면을 애도했다 .

무톰보와 같은날 세상을 떠난 피트 로즈는 미국 야구의 전설적인 안타왕이다. MLB 24시즌서 3562경기 4256안타로 미국 프로야구 개인 통산 최다출장-최다안타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타율 1위만 3번, 최다안타는 7번이나 차지했다. 1963년에는 신인왕, 1973년에는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으며 1975년에는 월드시리즈 MVP에도 뽑혔다. 올스타에는 무려 17번이나 등극했다. 로즈의 MLB 통산 성적은 타율 .303, 160홈런, 1314타점, 198도루, OPS .784다. 은퇴 이후에는 친정팀 신시내티 레즈의 감독이 돼 지도자로서도 한동안 승승장구하는 듯 했다.

그러나 로즈는 무톰보와 달리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했다. 선수시절 이룬 업적만 놓고보면 입성이 당연해보였지만, 신시내티 감독 시절인 1989년 자기 팀을 대상으로 한 경기에 베팅하는 도박을 했던 사실이 적발돼 이미지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로즈는 결국 그해 8월 24일 MLB에서 영구 제명당했다. 이후 1991년 명예의 전당 투표 후보에서도 자연히 제외되며 영구 탈락했다.

로즈의 도박 사건은 이는 1919년 '블랙삭스 스캔들', 1990-200년대 스테로이드(약물) 파동 등과 더불어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흑역사로 꼽힌다. 특히 로즈의 도박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을 넘어 감독이 마음만 먹으면 승부조작을 시도해 언제든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기에 문제가 더욱 심각했다. 로즈는 평생에 걸쳐 자신이 과도한 처분을 받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끝내 복권 받지 못한 채 83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두 전설의 사망... 현지 반응 극과 극

 피트 로즈

피트 로즈 ⓒ AP=연합뉴스


무톰보와 로즈의 결정적인 차이는 인성과 자기 관리였다. 무톰보는 자신의 분야에서 현역 시절 남긴 업적면에서는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로즈에 미치지 못했지만, 코트 밖에서의 '선한 영향력'을 통해 은퇴 이후에 오히려 더 많은 칭송을 받은 인물이다.

무톰보는 자신의 모국인 콩고민주공화국 국민의 건강과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거액의 사비를 들여 재단을 만들고 병원을 건립하고 봉사활동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선행에 앞장섰다. 팬데믹 기간엔 아프리카와 미국 일대에서 백신 보급을 위한 홍보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무톰보는 선수시절의 승부욕 넘치고 전투적인 모습과는 달리, 코트 밖에서는 인지한 성격과 유머러스하면서도 겸손한 인품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반면 로즈는 도박 논란 이외에도 사생활 문제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1990년에는 탈세 혐의가 적발돼 거액의 벌금을 내야했 고, 영구제명을 당한 이후에도 로즈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여러 차례 복권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거부당했다. 오히려 2010년대 이후에도 현역 시절부터 상습적인 도박과 미성년자 성추문을 저지른 사실들까지 까도까도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괴담들로 인해 말년으로 갈수록 이미지가 더욱 추해지기도 했다.

두 전설의 사망 이후 현지의 반응도 극과 극이다. NBA 커미셔너 애덤 실버는 "무톰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중 한 명이며, 그의 마음과 영혼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헌신했다. 무톰보의 관대함과 연민이 사람들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나 역시 직접 목격했다"면서 무톰보의 죽음을 애도했다.

무톰보와 같은 아프리카 출신으로 NBA 최고의 선수로 성장한 조엘 엠비드도 "오늘은 우리 아프리카인들에게 매우 슬픈 날이다. 무톰보는 코트 안에서 위대한 성과를 이뤘지만, 코트 밖에서는 더 위대한 사람이었다"며 무톰보를 자신의 롤모델로 꼽았다. 각계에서는 무톰보를 향한 추모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한편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성명을 통해 피트 로즈의 죽음을 애도했다. 공식 홈페이지인 'MLB닷컴'에서는 로즈의 화려한 야구업적과 도박-탈세 등 범죄 이력들까지 동시에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MLB닷컴'은 "로즈는 야구계 거장이자 비교할 수 없는 업적을 쌓았지만, 야구계에 죄악을 남기며 본인의 유산을 스스로 더럽혔다"는 신랄한 평가 또한 동시에 남겼다. 미국의 SNS와 커뮤니티 등에서 누리꾼들의 반응도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아무리 스포츠로 위대한 기록을 남긴 전설에게도 역사의 심판이란 준엄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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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켐베무톰보 피트로즈 선행 도박파문 승부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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