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호 재즈 평론가.
황덕호 재즈 평론가.조영서


최근 재즈는 MZ 세대 사이에서 '힙한' 음악으로 통한다. 이는 국내 재즈 페스티벌을 찾는 관객 대부분이 20, 30대라는 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재즈 소비층이 젊어지면서 재즈 클럽 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5년 전만 해도 서울에 있는 재즈클럽은 10여 곳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수도권을 포함해 300곳이 넘는다.

모든 예술 장르가 그렇듯, 재즈 역시 제대로 즐기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재즈를 온전히 감상하려면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 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이에 KBS 클래식FM <재즈수첩>을 진행하며 오랫동안 재즈를 알리는 데 힘써온 황덕호 재즈 평론가를 찾았다.

다수의 재즈 관련 서적을 번역하고 집필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재즈 로프트>를 운영 중이기도 한 그는, 지난 30여 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재즈의 매력을 소개해 왔다.

- 최근 우리나라에 부는 재즈 열풍을 어떻게 보시나요?

"사실 많이 놀랐어요. 재즈는 전 세계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장르인데, 한국에서만 유례 없는 인기를 얻고 있으니까요. 특히 젊은 세대가 재즈를 찾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해외 재즈 뮤지션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마치 록스타가 된 것 같다'고 말할 정도죠. 이번 기회에 한국에서도 탄탄한 재즈 시장이 형성됐으면 좋겠습니다."

- 이 열풍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요?

"그건 장담할 수 없어요. 재즈는 듣기 쉬운 음악이 아니니까요. 많은 이들이 재즈를 여전히 '배경음악'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최근 재즈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음악 자체보다는 재즈를 트는 장소나 이벤트에 관심이 쏠리는 느낌이죠. 이런 트렌드가 지속되면 재즈에 대한 관심이 오래가기 어려울 수 있어요. 음악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홍보와 기획이 필요합니다. 재즈 입문자 중 10%만이라도 진정한 재즈 팬으로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해요."

- 재즈를 꼭 진지하게 들어야 할까요?

"굳이 따지면, 저는 음악은 대충 들어도 된다는 쪽이에요. 그럼에도 재즈는 집중해서 들을 때 감상자가 얻는 감동이 더 큰 장르예요. 지난 100년간 재즈는 대중과 타협하지 않는 예술적 성취를 이뤄왔어요. 그 과정에서 생겨난 연주 스타일과 표현법을 이해하며 들으면 재즈만의 매력을 깊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 사람들은 왜 재즈를 어려워하나요?

"처음 재즈를 들으면 관악기 소리도 구분하기 어려워요. 재즈는 관악기가 중심이 되는 음악입니다. 특히 색소폰과 트럼펫의 차이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 재즈가 들리기 시작하죠. 우리가 라디오를 들을 때 사람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대화가 난해하거나 지루하게 들리겠죠. 재즈도 똑같아요. 재즈의 즐거움은 연주자들 간 차이를 음미하는 데서 비롯합니다. 일종의 '캐릭터 쇼'를 즐기는 거죠."

- 악기를 구분할 줄만 알면 재즈를 즐길 수 있나요?

"그건 기본 전제일 뿐이에요. 재즈의 핵심은 '즉흥연주'를 즐기는 데 있습니다. 한 곡 안에서 어디까지가 작곡된 부분이고, 어디서부터가 즉흥연주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해요. 즉흥연주의 묘미는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와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르게 연주된다는 점이에요. 그걸 이해하고 즐길 때 재즈의 진면목을 경험할 수 있죠."

재즈를 더욱 잘 들으려면

즉흥연주(improvisation)는 재즈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재즈 연주자는 연주 당시의 환경과 감정에 따라 자기 솔로 연주를 일필휘지로 펼쳐낸다. 자신도 어떤 연주가 나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재즈는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오늘만 사는' 음악인 것이다. 진정한 재즈 팬이라면 이 '날 것 그대로의 싱싱함'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 재즈를 제대로 알려면 공부가 따로 필요한가요?

"공부보다는 많이 들어보는 게 우선이에요. 대신 음악을 들을 때 그 앨범이 어떤 컨셉으로 만들어졌는지, 참여한 연주자가 누구인지 찾아보길 권합니다. 재즈는 '캐릭터 쇼'라고 했잖아요. 각 연주자의 개성을 알면 훨씬 더 입체적인 감상이 가능해지거든요. 그리고 음악에 가려진 뒷이야기를 아는 것도 도움이 돼요. 예를 들어 볼게요. 재즈 스탠더드 곡으로 유명한 아시죠? 원작자인 프랭크 처칠이 젊은 나이에 피아노 앞에서 자살한 사실을 알고 나면, 이 곡이 더 이상 달콤한 멜로디의 곡으로만 들리지 않을 거예요. 이처럼 음악을 둘러싼 맥락을 알고 들으면 색다른 감상을 경험할 수 있어요."

- 우리나라에서 재즈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어떤 점이 보완되어야 할까요?

"무엇보다 공적 지원이 필요해요. 현재 우리나라 재즈 시장은 외국에 비해 규모가 작고 자생력이 약한 편이에요. 예를 들어, 유럽 국가들은 재즈 빅밴드(big band)를 국가 차원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요. 빅밴드 수는 한 나라에서 재즈가 얼마나 존중받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공적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빅밴드가 하나도 없어요. 시장에 방치하면 쉽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 재즈 페스티벌에 대중 가수가 출연하는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재즈 팬으로서 아쉬운 마음이 크죠. 물론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걸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재즈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면, 재즈 뮤지션에 대한 적절한 대우가 이루어져야 해요. 현실은 그렇지 않죠. 재즈 뮤지션이 '돗자리'를 깔아놓으면 비재즈 음악인이 더 큰 수익을 올리는 형국이에요. 이것이 과연 진정한 재즈 페스티벌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대형 페스티벌도 좋지만, 재즈 뮤지션만으로 구성된 소규모 페스티벌이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 앞으로 평론가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신가요?

"재즈 입문자들에게 '가이드'가 되고 싶어요. 재즈를 어떻게 들을지 몰라 헤매는 이들이 재즈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일이죠. 정보 홍수 시대에 평론가는 수용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이 음악을 깊이 향유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해요. 이 역할만 제대로 해낸다면 음악 평론가는 여전히 필요한 존재로 남을 거예요."

재즈는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에는 낯설고 어렵게만 여겨졌던 재즈가 이제는 젊은 층의 인기에 힘입어 그 저변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이 유행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재즈 자체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이는 감상자뿐만 아니라, 재즈를 제공하고 기획하는 공급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황덕호 평론가의 말처럼, 재즈의 진정한 가치를 음미할 줄 아는 팬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이 음악이 우리 일상에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재즈가 '배경음악'이 아닌 '살아있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할 날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ttps://blog.naver.com/kevin6967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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