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국일기" 포스터영화 포스터 이미지
㈜영화사 진진
코로나19 이후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 극장가에 일본영화의 파도가 불어온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일본영화 붐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마치 소수정예 엘리트 스포츠 문화처럼 보이는 한국과 저변과 기반이 튼튼한 일본 스포츠의 비교처럼 말이다. 그동안 K-콘텐츠 인기에 취했던 한국 영화계의 암울한 전망에 비해 국내외적으로 성과가 쏠쏠한 일본영화의 저력이 단연 돋보이는 요즘이다.
문화예술은 스포츠 한일전처럼 승부나 실적으로 결정될 영역이 아니다. 실시간 국경을 넘어 문화교류가 활발한 상황에서 양질의 작품이 꾸준히 등장해 공감을 받아야만 한다.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대는 이제 전설이 되었고, 하마구치 류스케나 미야케 쇼 같은 신예 거장들의 활약으로 대표되는 일본영화의 탄탄한 기본기가 빛을 발하는 중이다. 한동안 일본 대중문화를 떠받치던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비옥한 토양 역시 한몫을 담당한다. 감성 묘사의 섬세함으로 국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얻은 원작을 성공적으로 실사화한 <위국일기> 역시 그런 사례 중 하나일 테다.
비밀요새에 덜컥 침입한 외계인
제법 인기 있는 소설가 코다이 마키오는 두문불출 연재에만 몰두하는 전업 작가다. 오늘도 은둔하듯 원고 집필에 열중하던 그에게 급한 연락이 온다. 사이가 좋지 않아 연락을 끊고 산 지 오래인 언니 부부가 급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둘 다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울먹이는 엄마와도 무척이나 오랜만에 대면하는 마키오. 하지만 언니를 불의의 사고로 잃었는데도 정작 그의 표정은 무덤덤할 뿐이다. 누군가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여자아이가 한구석에 있다. 언니의 딸 아사다. 아사는 부모의 교통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한 데다, 정식 결혼 대신 사실혼 관계이던 부모 탓에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하지만 마키오는 언니의 딸을 그저 인식할 뿐, 위로하거나 보듬으려는 기색은 딱히 없다. 언니와 관계가 무척 서먹했나 보다. 그래도 친지이니 장례식장에서 자리를 지키긴 한다. 그런 마키오 앞에서 아사의 친척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소녀의 장래를 걱정하는 대신, 천덕꾸러기 취급한다. 부계 쪽으로 누구도 고아를 책임질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런 떠넘김 현장에 괜히 욱하고 발끈한 마키오는 그저 충동에 따라 이모인 자신이 아사를 맡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막상 저지르고 나니 마키오는 아사와 함께 살 궁리는커녕, 혼자 지내는 생활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 낯가림이 워낙 심한 터라 독립한 후 처음으로 타인과 함께 지내는 게 불편하기 그지없다. 전날은 자신도 모를 의분에 돌발행동을 일으켰지만, 이제 실전을 치러야 할 상황이 막막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는 몇 안 되는 지인들에게 일일이 연락하며 미성년자인 아사를 후견할 대책과 조치를 하나씩 진행해 나간다.
아사는 의지할 곳이 없다. 장례식장에서 친척들의 무관심을 넘어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행태에 이미 상처를 받은 그는 겉으론 태연한 척하지만, 이제 중학교 졸업 예정인 청소년이 멀쩡할 리 없다. 아사는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힘들고, 존재만 알던 이모와 동거가 편안할 리 없지만, 달리 갈 곳은 그렇게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어른' 마키오와 미래가 막막한 '미성년' 아사의 동거일기가 화면 가득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