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2> 스틸컷
CJ ENM
연쇄살인이라는 아찔한 아이템을 다루지만, 류승완 감독은 < 베테랑2 >를 기획하며 "전통적인 의미의 빌런을 없애고 싶었다"는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리고 그 결과, 악랄한 범죄로 사회의 공분을 샀으나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탓에 응당한 죗값을 치르지 않은 이들을 단죄하는 해치가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해치의 활동에 환호하는 대중들의 반응이나, 류 감독의 기획 의도처럼 그가 전통적인 빌런이라고 단순하게 바라보기는 어렵다. 심지어 어떤 이유로 사적제재를 하는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서도철을 향한 계승 의지가 모든 사건의 원인인 세계에서 싸움의 장소도 변화한다. 전편에서는 가건물 하나 규모의 불법차량 개조기지에서 시작된 싸움이 차이나타운 주택가 옥상을 지나 명동 한복판으로 확장됐다. 서도철의 해결 방식이 타인을 설득하는 과정인 탓이다. 적당히 수사를 무마하려는 경찰 윗선뿐 아니라 대중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아야 조태오라는 거물을 잡아넣을 수 있다. 설득 대상은 물론 영화를 보는 관객도 포함된다.
2편은 반대다. 넓은 곳에서 점점 좁은 곳으로 이동한다. 남산공원을 지나 미로 같은 마약굴을 거쳐 피아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폭우가 쏟아지는 옥상. 최후의 결투 장소는 폐쇄된 터널이다. 헤드라이트와 촬영용 조명이 없으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은, 악과 싸운다는 명분으로 서슴없이 폭력을 사용했던 서도철의 내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 터널 안에서 서도철을 기다리고 있는 건 당연히 폭력의 계승 의지이자 정당화 그 자체인 박선우다.
선우는 도철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한쪽에서는 미지의 장소에서 도철의 아들이 의자에 묶인 채 휘발유가 끼얹어지는 장면이 송출된다. 터널 안에는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죽였다는 오해를 받고 목에 흉기가 겨눠진 채 운전석에 묶여있는 국제결혼여성 투이가 있다. 아들을 구하러 간다면 도철이 해치로 오해받도록 짜깁기 된 정보들이 대중에게 공개된다. 투이를 구한다면 아들에게는 불붙은 라이터가 던져진다.
선우의 강요는 '누구'를 구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철에게는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묻는 말이기도 하다. 무슨 선택을 하든, 서도철에 의해 광역수사대에 투입되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던 선우가 원하는 답은 정해져 있다. 악에 대한 분노나 좌절감 끝에 서도철이 자신처럼 폭주하게 만드는 것. 그러나 서도철은 투이를 구하러 간다. 영화상에서는 광수대 동료들이 아들을 구하지만 도철에게도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전편에서 조태오를 검거하는 순간으로 돌아가 보자. 정당방위의 명분을 얻은 후에도 서도철은 조태오를 무력으로 때려눕히지 않는다. 서도철은 조태오의 관절기에 걸려 발목이 부러지고, 얻어맞고 쓰러진 상태에서 자신의 팔에 수갑을 채우고 또 다른 수갑 한쪽을 조태오의 팔에 채운다. 그가 싸움을 잘해서 생각해 낸 임기응변이 아니라 범죄자를 때려눕히는 게 경찰이 할 일이 아닌 탓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궁지에 몰린 선우는 차를 타고 도주하려다가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상태로 충돌해 튕겨 나간다. 서도철은 선우에게 달려들어 미친 듯 심폐소생술을 한다. 그 순간 스크린에서는 도철이 선우를 죽이고 싶은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렇게 살려낸 선우에게 도철은 '조서 쓰면서 살살 죽여주겠다'고 말하며 사건이 종료된다. 어두운 터널 끝에서 도철이 발견한 자신은 경찰이었다.
20년 걸린 류승완의 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