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가 개봉했다. <메이즈러너> 실사영화 시리즈를 연출했던 웨스 볼 감독이 연출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국내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범죄도시4>에 밀려 전국 90만 관객에 그쳤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혹성탈출:새로운 시대>는 스타 배우의 출연 없이도 세계적으로 3억9700만 달러의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혹성탈출:새로운 시대>가 흥행에 성공한 비결 중에는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 파워'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 1968년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던 <혹성탈출>은 1973년까지 5편에 걸쳐 제작돼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고 2011년부터 2017년까지는 리부트 3부작이 개봉해 도합 16억81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린 바 있다. <혹성탈출:새로운 시대>는 7년 만에 개봉한 리부트 시리즈의 4번째 이야기다.

<혹성탈출>은 오리지널 시리즈와 리부트 시리즈를 합쳐 총 9편의 영화가 개봉했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혹성탈출>은 지난 2001년에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개성 강한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1999년 <슬리피 할로우>를 만들었던 팀 버튼 감독의 차기작으로 제작비의 3배가 넘는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혹성탈출> 리메이크 버전이었다.

 1편을 기준으로 33년 만에 리메이크된 <혹성탈출>은 여전히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1편을 기준으로 33년 만에 리메이크된 <혹성탈출>은 여전히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변신 두려워하지 않는 팔색조 배우

1966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헬레나 본햄 카터는 배우가 되기 위한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우연히 TV광고에 출연했고 1983년 TV영화 <장미의 문양>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1986년 <레이디 제인>에서 주인공 제인 그레이 역을 맡으며 주목 받기 시작한 카터는 데뷔 초까지만 해도 앳된 얼굴과 고전적인 인상으로 현대극보다는 시대극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단아한 이미지의 배우였다.

그렇게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가던 헬레나는 1999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파이트클럽>에서 커피를 공짜로 마시기 위해 불치병 환자 모임을 찾아 다니는 묘령의 여인을 연기하면서 변신에 성공했다. 관객들은 <파이트클럽>을 계기로 헬레나의 독특한 매력을 발견했고 헬레나는 2001년 팀 버튼 감독의 <혹성탈출>에서 인간과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 유인원 아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혹성탈출>에서 만난 팀 버튼 감독과 결혼한 헬레나는 <빅 피쉬>,<찰리와 초콜릿 공장>,<유령신부> 등 남편이 연출한 영화에서 마녀, 유령 등 각종 기괴한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해리포터> 실사영화 시리즈에서는 볼드모트의 추종자이자 시리우스 블랙(게리 올드만 분)의 사촌 벨라트릭스 레스트레인지를 연기하기도 했다(헬레나는 <불사조 기사단>부터 <죽음의 성물 2부>까지 총 4편에 출연했다).

2010년 조지 6세를 다룬 영화 <킹스스피치>에서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비를 연기한 헬레나는 <킹스스피치>를 통해 2011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 조연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붉은 마녀 역을 맡기도 했다. 2012년에는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팡틴이 코제트를 맡긴 여관집 부부 중 아내 테나르디에 부인 역을 맡아 또 다시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

팀 버튼 감독과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던 헬레나는 2014년 팀 버튼 감독과의 결혼생활을 끝냈다. 하지만 이혼 후에도 활발한 연기 활동을 이어가는 헬레나는 2016년 전 남편 팀 버튼이 연출한 <겨울 나라의 앨리스>에 출연했고 2015년 디즈니의 <신데렐라> 실사영화에서는 요정대모를 연기했다. 헬레나는 지난 2021년 자신보다 21살 어린 노르웨이 출신 작가와의 열애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개성 대신 흥행 선택한 팀 버튼 감독

 <혹성탈출>에서는 인간 레오(왼쪽)와 유인원 아리의 키스신도 등장한다.

<혹성탈출>에서는 인간 레오(왼쪽)와 유인원 아리의 키스신도 등장한다. ⓒ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1968년부터 1973년까지 5편의 오리지널 시리즈가 제작됐던 <혹성탈출>은 1980년대부터 꾸준히 리메이크가 추진됐다. 실제로 <플래툰>의 올리버 스톤과 <나홀로 집에>의 크리스 콜럼버스, <터미네이터>의 제임스 카메론 같은 쟁쟁한 감독들이 <혹성탈출> 리메이크 감독 후보군에 있었다. 하지만 <혹성탈출> 리메이크작의 감독으로 최종 낙점된 인물은 '할리우드의 악동' 팀 버튼 감독이었다.

<혹성탈출> 리메이크 버전은 1968년에 개봉한 <혹성탈출>의 원작 영화보다 1963년 프랑스에서 출간됐던 피에르 볼 작가의 원작 소설에 가깝게 만들어졌다. 물론 팀 버튼 감독의 개성이 워낙 뚜렷하고 확실한 스타 배우도 출연하지 않아 개봉 당시 우려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1억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혹성탈출>은 3억6200만 달러의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하면서 우려를 날려 버렸다.

1968년에 개봉했던 <혹성탈출>에서는 조지 테일러(고 찰턴 헤스턴 분)를 제외한 인간의 지능이 크게 퇴보해 짐승에 가까운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팀 버튼 감독의 <혹성탈출>에서는 인간이 여전히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고 오히려 유인원들은 총 같은 화기를 전혀 사용할 줄 모른다. 영화 막판 유인원들과 인간들의 전투에서 인간이 유인원을 상대로 그나마 대등한 승부를 펼칠 수 있었던 이유다.

유인원들과의 힘든 전투를 승리로 이끈 레오(마크 월버그 분)는 아리(헬레나 본햄 카터 분)를 비롯해 힘을 합쳐 싸웠던 유인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행성을 떠나 가까스로 지구에 귀환한다.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에 도착한 레오는 링컨 기념관에 들어갔지만 동상의 인물은 링컨이 아닌 테드 장군이었다. <혹성탈출>은 레오가 경찰과 소방관 복장을 한 유인원들에게 둘러 싸이는 반전으로 막을 내린다.

다만 팀 버튼의 <혹성탈출>은 높은 흥행 성적에도 미국의 평론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43%, 관객점수27%에 그쳤을 정도로 혹평을 받았다. 특히 관객들이 내심 기대했던 팀 버튼 감독 특유의 기괴하면서도 유쾌한 개성들이 크게 발휘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가장 컸다. 이 때문인지 팀 버튼의 <혹성탈출>은 만족스러운 흥행 성적에도 2011년 리부트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까지 속편 제작이 되지 않았다.

유인원이 된 원작 영화의 주인공

 <혹성탈출> 원작영화의 주인공 고 찰턴 헤스턴(왼쪽)은 유인원 분장을 하고 테드 장군의 아버지로 출연했다.

<혹성탈출> 원작영화의 주인공 고 찰턴 헤스턴(왼쪽)은 유인원 분장을 하고 테드 장군의 아버지로 출연했다. ⓒ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미 공군 대위 레오 데이비슨을 연기한 마크 월버그는 여러 영화에서 서브 주인공을 전전하다가 <혹성탈출>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단독 주인공을 맡았다. 관객들을 사로잡는 엄청난 열연을 펼치진 못했지만 월버그는 <혹성탈출>을 통해 할리우드에서 떠오르는 미남 액션스타 이미지를 굳혔다. 월버그는 이후 <이탈리안 잡>,<디파티드>,<파이터>,<론 서바이버>,<트랜스포머 4,5> 등에 출연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에서 '미스터 오렌지', 마블의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어보미네이션을 연기했던 팀 로스는 <혹성탈출>에서 유인원들을 이끄는 테드 장군을 연기했다. 물론 유인원으로 분장해 배우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지만 테드 장군은 뛰어난 카리스마로 유인원들을 진두지휘하면서 레오가 이끄는 인간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지하 벙커에 갇혀 최후를 맞는다.

<혹성탈출> 오리지널 시리즈 1,2편의 주인공 고 찰턴 헤스턴도 팀 버튼 감독의 <혹성탈출>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재미 있는 사실은 헤스턴이 인간이 아닌 유인원인 테드 장군의 아버지로 나왔다는 점이다. 특수효과와 특수분장의 달인으로 <스타워즈>와 <맨 인 블랙>,<너티 프로페서> 시리즈 등의 특수 분장을 담당하며 아카데미 7회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릭 베이커도 오랑우탄 장로 역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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