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장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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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타이는 1175년 몽골계 부족의 하나인 우량카이족(훗날 오랑캐라는 단어의 어원) 출신으로 태어났다. 수부타이의 친형 젤메는 칭기스칸의 세력 초창기부터 최측근이었고, 1189년 수부타이도 형을 따라 14세의 나이로 칭기스칸의 군대에 합류하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어린 수부타이는 칭기스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저는 쥐가 되어 거두어들이겠습니다. 검은 까마귀가 되어 밖에 있는 것을 모아 들이겠습니다. 부드러운 덮개가 되어 덮어드리겠습니다. 두툼한 바람막이가 되어 집을 가려드리겠습니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초원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던 칭기스칸은 소년 수부타이의 당돌한 투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칭기스칸은 수부타이에게 자신의 천막 문지기를 맡겼다. 오늘날로 치면 자신의 최측근에서 가장 중요한 경호 임무를 부여할 만큼 수부타이를 신뢰한 것이다. 자연히 수부타이에게는 군주인 칭기스칸을 바로 곁에서 보좌하며 전술지휘능력과 장수들과의 회의 등을 지켜볼 수 있게 됐고, 이는 군사적 경험에 관하여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엘리트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은 셈이다.
수부타이는 병사에서 장수로 차근차근 성장해 나갔다. 1205년 메르키트 부족이 칭기스칸의 아내를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칭기스칸은 보복에 나섰는데 그 선봉에 선 것이 당시 서른 살의 수부타이였다. 그는 병사들을 평범한 유목민으로 위장시켜서 메르키트족이 방심한 틈에 기습해 대승을 이끈다.
칭기스칸의 찬사
칭기스칸은 수부타이의 기발한 전략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그를 장수로 인정하게 된다. 다만 칭기스칸은 아직 군사적 경험이 부족한 수부타이를 걱정하며 종종 지나칠 정도로 잔소리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이는 수부타이를 믿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그만큼 중요한 임무를 맡겨야 했기에 한 애정어린 조언에 가까웠다. 실제로 수부타이는 칭기스칸이 주문한 임무들을 모두 척척 수행하며 가장 신뢰받는 장수로 거듭난다.
1206년 칭기스칸은 마침내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대칸(大汗, 몽골어 xaah)의 지위에 오른다. 칭기스칸은 통일전쟁에서 특히 활약이 뛰어나고 충성스러운 8명의 장수를 사준사구(四駿四狗, 4마리의 준마와 충견)로 삼아 개국공신으로 우대했다. 사준은 보오르초, 모칼리, 보로올, 칠라올이었으며, 사구는 제베, 쿠빌라이아 함께 수부타이와 젤메 형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몽골인들은 개를 인간을 따르는 늑대로 생각하며 용맹하면서도 친근한 존재로 여겼기에, 개라는 지칭은 그만큼 충성스럽고 믿을만한 인물이라는 찬사였다.
칭기스칸은 몽골인들을 95개의 천호(千戶)로 나누고, 95명의 천호장(千戶長)을 임명했다. 31세의 수부타이도 천호장으로 임명됐다. 칭기스칸은 9만 5000명에 이르는 몽골군을 경기병 중심으로 재편하고, 강력하고 엄격한 법령을 시행하며 몽골을 전쟁에 최적화된 군사국가 체제로 확립시켰다. 이후 전 세계를 뒤흔들게 되는 '악마의 군단'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207년, 수부타이는 본격적으로 몽골 정복 전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수부타이는 칭기스칸을 보좌하여 서하를 정벌했고, 이어 1211년에는 금나라를 침공했다. 이 무렵 수부타이는 만호장으로 승격하여 일군을 이끄는 지휘관의 반열에 올랐다. 몽골군은 4년간 파죽지세로 금나라를 공격하며 벼랑 끝에 몰아넣는다.
칭기스칸은 금과의 전쟁에서 점점 승기를 잡아가고 있던 상황에서 수부타이에게 또 다른 임무를 맡긴다. 서쪽의 이슬람 왕조였던 호레즘 제국(1077 ~ 1231, 현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지역)에 대한 정벌이었다. 1218년 당시 칭기스칸은 호레즘과 우호 관계를 추진하기 위하여 대규모 교역단을 파견했으나, 호레즘은 이들을 첩자로 몰아 살해하고 금은보화를 약탈했다. 이를 항의하기 위하여 보낸 칭기스칸의 사신단마저 수염을 잘라 모욕을 주고서 쫓아 보낸다.
격노한 칭기스칸은 금나라와의 전쟁도 잠시 뒤로 미뤄둔 채, 호레즘에 피의 복수를 선포한다. 칭기스칸은 교역단을 몰살시킨 오트라르성을 점령하고 사로잡은 성주의 눈에 뜨거운 은을 부었다. 이어 호레즘의 수도인 사마르칸트를 함락하고 5만 명에 이르는 호라즘인들을 잔혹하게 몰살시켰다. 몽골군은 가는 곳마다 함락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병사와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학살했다고 한다. 호레즘 제국은 몽골의 집요한 복수 끝에 결국 1231년 멸망한다.
악연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