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토리> 스틸컷

영화 <빅토리> 스틸컷 ⓒ 마인드마크


<에이리언: 로물루스>에 <비틀쥬스 비틀쥬스>까지. 쟁쟁한 프랜차이즈 영화들이 극장가를 지배한 8월이었는데도 이혜리·박세완 주연의 <빅토리>는 꿋꿋하게 버텨왔다. 박스오피스 순위 10위권 바깥으로 밀려나면서 천천히 사라지는 듯하더니 주연 배우들의 게릴라 무대인사, 그리고 알음알음 퍼져나간 입소문을 통해 개봉 후 27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박스오피스 5위에 안착해 꾸준히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진심 마케팅'이 얼마나 강한지와 상관없이, 한 영화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력한 특장점이 필요하다. <빅토리>의 무엇이 그렇게 특별했기에 관객들을 다시 끌어모아 '역주행'에 성공하기까지 한 것일까? 영화의 내적 요소에서 그 원인을 간단하게 찾아보자.

<빅토리>의 편집 스타일은 간결하고 긴박하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 텀을 별로 주지 않으며, 긴장감이 주어질 때는 그것을 폭발시킬 때까지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대부분 두세 장면 사이에 등장인물들이 갈등의 원인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것을 직시해 곧바로 해결해 버린다. 자칫 영화를 하나의 뮤비(뮤직비디오)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는 편집법이 <빅토리>에서 먹힌 이유는 '정면 돌파'라는 네 글자가 본작의 영혼과도 같아서다.

거제상고의 불량아 '추필선(이혜리 분)'과 '장미나(박세완 분)'는 댄스 연습실을 가지겠다는 일념으로 서울에서 온 '김세현(조아람 분)'을 내세워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든다. 처음에는 치어리딩을 대의명분으로만 생각하던 미나와 필선도 점차 치어리딩과 협업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고, 학교 축구를 응원하기 전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해 거제의 방방곡곡으로 향하며 응원을 시작한다.

'정면돌파' 와 '직면'

 영화 <빅토리> 스틸컷

영화 <빅토리> 스틸컷 ⓒ 마인드마크


<빅토리>의 본질은 이러한 플롯 속에서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직면'에 있다. 주인공 필선과 미나는 자신들에게 찾아온 문제로부터 달아나지 않는다. 동아리를 만들기 위해 부원이 필요하면 온 복도를 춤추고 다녀서라도 사람을 모으고, 첫 무대를 망친 후에는 좌절할 틈도 없이 곧바로 연습에 들어간다. 이러한 고속도로식 전개는 관객이 한 요소를 비판하기도 전에 빠져들게 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관객은 그야말로 필선과 미나의 정면 돌파에 끌려가고 있는 셈이다.

물론 <빅토리>가 갈등 없이 무작정 행복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 필선은 싸움에 휘말려 학교를 박차고 나간 뒤 서울로 향하고, 필선의 아버지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윗선의 압력 사이에서 갈등하는 관리자로서 한계에 부닥치는 데다, 필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남학우들의 '로맨스 경쟁'도 갈등이라면 갈등이다.

<빅토리>는 이러한 갈등을 무시하지 않는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필선은 자신이 탄생시킨 치어리딩 동아리의 끝을 제대로 맺기 위해 아이돌이 될 기회도 마다하고 경남 거제로 내려오며, 필선의 아버지는 딸과의 진심 어린 대화 끝에 초심으로 돌아가 노조원들과 함께한다. 이러한 장면은 감동을 불러일으킬 만하고, 조금 더 길게 끌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지 모르지만 <빅토리>는 이를 과감하게 끊어내고 다음 이야기로 계속 전진한다.

 영화 <빅토리> 스틸컷

영화 <빅토리> 스틸컷 ⓒ 마인드마크


로맨스마저도 그렇다. 이 영화에서 필선을 둘러싼 남자들의 이야기는 사건의 기폭제가 되지도, 무언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기만 한다. 약간의 개그 포인트로.

이것은 <빅토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개인에 대한 응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선은 친구들을 돕고, 아버지를 돕고,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들과도 직면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추필선 본인의 이야기를 장악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은 것이다. 추필선은 거제상고 학생이기 이전에, 아버지의 딸이기 이전에, 그리고 누군가의 '여자친구'이기 이전에 추필선 본인이고, <빅토리>는 이를 명확히 한다.

작중 인물들도 꾸준히 자기 자신으로서의 지위를 되찾는다. 동생만 여섯이고 집안의 가게 일을 돕는 미나는 '미나반점 딸' 대신 '짱미나'가 되고, 치어리딩을 가르쳐 준 세현은 '축구선수 김동현 동생'이 아닌 '김세현'이 된다. 숱한 조연들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을 이루는 요소에 정복당하는 대신 주체적인 삶의 개척자로서 재탄생한다.

<빅토리>의 정면돌파식 편집은 조금 급하게 느껴질지라도 관객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안 될 거 뭐 있냐고, 우리는 다른 것이기 이전에 우리인데 조금만 더 과감하게 나아가 보면 안 되겠냐고. <빅토리>의 쾌활한 전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응원인 셈이다.

<빅토리>의 손익분기점은 200만 관객 이상. 현재 누적 관객 수는 약 43만 명. 장기 상영을 통한 흥행을 노려본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빅토리>의 메시지는 관객들의 진심을 노리기에 충분하며 그 특유의 밝은 에너지는 새까만 화면 속에서 범죄자를 쫓는 대부분의 '흥행 한국 영화'에 더할나위 없는 개성을 가진다. 근처 남은 상영관을 통한 <빅토리> 관람으로 각자의 삶에 대한 응원을 받아 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 빅토리 이혜리 박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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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픽션 신봉자.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믿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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