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농구 월드컵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박수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농구대표팀은 오는 20일(이하 한국시각)부터 26일까지 열린 농구월드컵 사전 예선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지난 21일 조별 예선에서 체코에게 63-76으로 패했던 한국은 결승에서 다시 만난 체코에게 설욕을 노렸지만 4쿼터 마지막 3분30초 동안 체코에게 7-14로 크게 뒤지면서 67-73으로 재역전패를 당했다.

한국은 이번 농구월드컵 사전 예선을 앞두고 김단비(우리은행 우리원)와 박혜진(BNK 썸), 김정은(하나은행), 이경은(신한은행 에스버드) 등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제외했다. 대신 박수호 감독은 '2003년생 듀오' 이해란(삼성생명 블루밍스)과 박소희(하나은행)를 비롯해 허예은(KB스타즈), 박지현(뱅크스타운 브루인스) 등 2000년대에 태어난 젊은 선수들을 대거 발탁하며 세대교체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세계랭킹 13위로 사전예선 출전국 중 세계 랭킹이 가장 높았던 한국은 이번 대회 5경기 2승3패를 기록하면서 우승팀에게만 주어지는 최종예선 티켓을 따내지 못했다. 젊은 선수들이 국제 대회 경험을 쌓으면서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 있는 대회였지만 선배들이 이룬 성과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도 발견한 대회였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세대교체 단행

 한국은 에이스 박지수가 막히면 경기력이 크게 떨어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한국은 에이스 박지수가 막히면 경기력이 크게 떨어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 국제농구연맹


지난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전주원호는 김한별과 김정은, 배혜윤(삼성생명), 김단비, 박혜진 등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포함 시켰다. 하지만 조별예선에서 스페인과 캐나다, 세르비아라는 강호를 만난 한국은 3전 전패로 예선 탈락했다. 한국은 스페인을 상대로 69-73, 세이비아를 상대로 61-65로 접전을 벌이며 선전했지만 전주원 감독(우리은행 코치)은 올림픽이 끝난 후 대표팀에서 물러나야 했다.

도쿄 올림픽이 끝난 후 WKBL을 주름 잡았던 또 한 명의 '전설' 정선민 감독이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여자 농구는 2002년 9월 농구 월드컵에서 1승4패의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한국은 작년 6월 아시안컵에서도 뉴질랜드에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2024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대표팀의 기둥 박지수(갈라타사라이 SK)의 컨디션에 따라 팀 전력이 크게 달라지는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한국은 이어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4강에서 농구 강호로 거듭난 일본을 만나 58-81로 완패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아시안게임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한 것은 지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이후 17년 만이었다. 한국은 남북 대결로 열린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해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지만 정선민 감독 역시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 놓았다.

대한농구협회는 지난 4월 지도자 공개 모집을 통해 박수호 전 19세 이하 여자대표팀 감독을 대표팀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박수호 감독은 생애 첫 성인 대표팀에 선발된 박소희를 비롯해 허예은, 이해란, 박지현 등 2000년대에 태어난 신예 선수들을 대거 대표팀에 선발했다. 농구 월드컵 최종예선 티켓을 따내면서 젊은 선수들에게 경험을 쌓게 해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겠다는 목표였다.

핵심선수에 대한 의존이 큰 여자농구

 2000년생 박지현은 외곽과 골밑을 넘나들며 대표팀에서 많은 역할을 홀로 수행하고 있다.

2000년생 박지현은 외곽과 골밑을 넘나들며 대표팀에서 많은 역할을 홀로 수행하고 있다. ⓒ 국제농구연맹


하지만 박수호 감독의 포부는 20일 첫 경기에서 A조 최약체로 꼽히던 세계랭킹36위 베네수엘라에게 78-84로 덜미를 잡히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은 21일 체코에게도 63-76으로 패하면서 최종 예선 진출은커녕 조별리그 탈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멕시코의 고지대에서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은 조별리그 첫 두 경기에서 좀처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지환경에 적응한 한국은 23일 말리와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87-63으로 대승을 거두며 골득실 차에서 앞서 극적으로 4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4강에서는 B조 1위 몬테네그로를 상대로 3점슛 12개를 퍼붓는 화력쇼를 펼친 끝에 88-66으로 대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한국은 체코와의 리턴매치에서 67-73으로 재역전패를 당하면서 월드컵 최종예선 티켓을 따내는데 실패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박지수와 강이슬, 박지현으로 이어지는 핵심선수 3명을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실제로 세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각각 16.8득점과 15.4득점,14.4득점을 기록하면서 한국이 기록한 전체 득점(76.6점)의 60.8%를 책임졌다. 나머지 선수들의 지원이 부족하니 한국은 대회 기간 내내 세 선수 중 한 선수만 막혀도 경기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약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박지수를 지원할 만한 4번 자원의 부재는 한국 대표팀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나마 박지현이 공격에서 많은 도움을 줬지만 기본적으로 박지현은 외곽에서 경기를 풀어가는 가드 자원이다. 백업 센터로 선발한 진안(하나은행)은 말 그대로 박지수의 백업 역할에 충실하면서 함께 코트에 들어온 적이 거의 없었고 이해란은 평균 4득점2리바운드0블록슛으로 골 밑에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대표팀의 젊은 선수들에게 이번 대회는 분명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과 함께 가장 큰 국제 대회인 농구 월드컵은 선수들에게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성적을 보여줘야 하는 무대다. 결과적으로 한국 여자 농구는 농구 월드컵의 첫 관문인 사전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고 내년 7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컵을 통해 다시 최종 예선 출전권 획득에 재도전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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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여랑이 농구월드컵사전예선 박수호감독 박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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