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정원의 꽃밭. 주인공 헤트비히와 자녀
찬란
영화의 제목인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수용소 반경 40m 내 지역을 의미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곳의 관리자인 나치의 사택이 위치하고 있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존 오브의 인터레스트'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사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일상으로 채워진다. 사건이 중심이 되는 영화는 아니어서 인물들이 이끌어 가는 줄거리는 도드라지는 에피소드 없다.
성실한 군인인 루돌프 회스와 꽃이 만발하도록 정원을 가꾸는데 재능이 있는 아내, 아빠에게 깜짝선물을 준비할 줄 아는 아이들로 구성된 가족은 수영장이 딸린 그림 같은 2층 집에서 산다. 루돌프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책임자이며 집의 위치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라는 맥락을 걷어내면 잡지에 나올 법한 이상적인 모습의 가족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안에서 자신들만의 왕국을 꾸리는 데 성공한 부부. 이들은 자신의 왕국에 어울리지 않는 거슬리는 소리의 실체를 눈에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담장을 높이고 집안 전체에 커튼을 드리웠다. 하지만 소리는 담장과 커튼을 개의치 않고 집안 전체에 퍼지며 일상 어디든 파고든다.
사실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다루지만, 수감된 유대인은 영화 초반 잠시 등장하는 엑스트라가 전부다. 아우슈비츠의 공포와 참혹함은 인물이나 사건이 아닌 소리에 실려 있다.
영화 초반에는 핵심이 되는 '소리'를 인식하기 쉽지 않았다. 인물 주위를 감싸는 일상 소음이 보통의 영화보다 더 귀에 들어오지만, 어떤 소리인지 확실히 인지하기는 어려운 정도의 음량이다. 어차피 알아듣지 못하는 독일어였지만, 처음에는 인물들 간 대화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돼 일상 소음이 끊이지 않고 귀에 걸리는 것이 거슬렸다. 영화는 그 소음의 실체가 총성, 비명, 울음, 공장 가동 소음, 유대인을 실어 나르던 기차의 소리라는 것을 서서히 알아챌 수 있게 유도한다. 그때부터 모른 척 하는 게 가능했던 거슬림은 불편함으로 바뀌다가 해결되지 못하는 불편함이 쌓여 고문같이 느껴질 때쯤 영화가 끝났다.
가리고 모른척하며 모두의 합의로 담장 밖과는 철저히 분리된 것처럼 유지하고 있는 그림같은 일상에 담장 밖 현실이 예기치 않게 불쑥 찾아온다. 아이들과 냇가에서 물놀이하며 안온한 한때를 보내다 별안간 손에 쥐게 된 뼛조각의 감촉, 안락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 들이마신 검은 연기의 매캐함, 밤잠을 깨운 붉은 화염의 강렬한 빛을 경험하고 나면 내내 거슬리던 소리가 어떤 소리였는지, '쉴 새 없이 태우고 식히고 비우고 채우고 다시 반복' 하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부부의 침실에서 새어 나온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