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연극을 마치고 연출을 맡은 김영미 대표와 즉흥극을 선보인 배우들이 관객을 향해 커튼콜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지난달 연극을 마치고 연출을 맡은 김영미 대표와 즉흥극을 선보인 배우들이 관객을 향해 커튼콜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황유진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여행자극장에 관객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공연 시작 후 한참 배우들의 목소리가 들려야 하는 시간에 스피커를 타고 넘어온 목소리는 고등학생 소녀의 목소리였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자존감이 낮아졌어요." 무대 왼쪽 한편에 있는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잡은 소녀는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낙심했던 시절을 회상했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등장한 배우들은 소녀의 이야기를 즉흥극으로 재현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소녀는 깔깔 웃기도 하고,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보며 즐거워했다.

이 장면은 '나 그리고 자기성장'을 주제로 (사)한국임상연극심리치료협회가 서울시 민간축제지원사업 지원으로 개최한 제4회 2024 대한민국 치유예술제에서 나왔다.

공연은 관객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배우들이 즉흥 연기를 선보이는 '플레이백 시어터' 형식의 연극이다. 1975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등장한 플레이백 시어터는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른 현대 연극에서 주목받는 장르다. 개인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고 이를 무대로 만든다는 점에서 '재생 연극'이라고도 불린다.

관객들은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으며 때로는 웃음을 터뜨렸고, 어려움을 극복한 자신을 마주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연극에 참여한 관람객들은 "30년 인생이 3분으로 압축된 느낌이었다", "잊지 못할 사진 속 한 장면 같았다", "TV를 보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치유예술제 운영과 공연 연출을 맡은 김영미 한국임상연극심리치료협회 대표는 "관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공감하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라며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치유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번 예술제의 깊은 의미를 새삼 다시 느꼈다"고 치유예술제의 소감을 전했다.

치유예술제의 막이 내린 지난달 30일 한국임상연극심리치료협회 연습실에서 만났다.

"관객이 자신의 삶을 제3자의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돕는 공연"
 
 지난달 28일 소극장 입구에는 입장 관람객들을 위해 연극의 주제 메시지가 적힌 팻말이 놓여있다.
지난달 28일 소극장 입구에는 입장 관람객들을 위해 연극의 주제 메시지가 적힌 팻말이 놓여있다. 황유진
 
- 치유예술제를 비롯해 각 공연의 연출 의도가 있다면요.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사람이 성장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라는 주제를 선택했습니다. 플레이백 형식의 연극은 특정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연극인데요. 치유예술제는 '치료용 연극'과 다르게 불특정 다수의 일반 관객들이 관람하기 때문에, 고민을 말하는 관객의 나이, 직업 등을 듣고 질문을 다르게 던지며 극을 끌어 나가요."

- 치유예술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소년원, 학교 폭력 청소년들 이런 사연을 가진 사람들과 연극치료를 진행하면서 치유예술제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들은 연극을 보며 자신을 투사하고 공감하며 치유감을 느끼고 일반인, 예술인 배우들은 취미 활동을 넘어서 공연하는 자체가 치유적인 행위기도 하고요. 결국 관객과 배우 모두 치유 효과를 느낄 수 있는 예술제를 만들자는 취지였어요."

-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관객 선정의 기준이 있나요.

"특별한 관객 선정 기준이 없어요. 사실 눈을 맞추고 마음이 안정되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 그렇다면, 연극 치료는 어떤 효과를 받을 수 있나요.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치유의 시작이에요. 그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우리는 모두 어려움을 겪지만, 그것을 완전히 극복하기보다는 함께 지니고 가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자꾸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게 좋습니다. 공연을 통해 관객들의 이야기를 즉흥극으로 보여주면, 관객들은 자신의 삶을 제삼자의 시각으로 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치유의 효과를 느끼게 되는 거죠."

- 그래서 공연이 유쾌한 분위기였나 봐요.

"찰리 채플린이 말했듯,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에요. 우리의 삶도 힘들게 살고 있지만, 멀리서 보면 웃기고 재미있는 일이 되죠.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져요. 아무리 재밌게 해도 침체된 사람에겐 희극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어요. 공연이 유쾌했던 이유는 우리 팀의 색이 유쾌해서 라고 생각해요."

김 대표는 "원래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2000년대 이후 연극을 통해 교육하고 치료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연극 치료 대학원 과정을 거쳐 치유 연극을 시작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치유 연극은 예술제와 다르다. 예술제는 단순한 공연이고, 치유 연극은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연극치료, 심리적 안정 도와"

- 연극 치료를 받아 효과적인 변화를 경험한 사례가 있나요?

"교정시설에서 연극치료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소년원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멋있었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긍정적인 면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들도 제 나름 착한 일이나 멋진 행동을 했던 기억이 있죠. 이런 기억을 통해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합니다.

연극치료는 1990년대에 도입된 다른 예술치료장르 보다 늦은 2000년대에 도입됐다. 그래서인지 연극치료의 정보는 다른 예술치료보다 인지도가 낮은 감이 있다. 김 대표는 "연극치료는 점진적이지만 꾸준히 관심받으며 성장했고, 지속적인 치유예술로써 자리 잡았다. 현재 교정시설, 학교, 장애인시설 등 다양한 곳에 가서 진행하고 있다. 예술치료는 장르가 다를 뿐 같은 목적을 두고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 다음 치유예술제에 참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요.

"치유예술제는 누구나 볼 수 있는데요, 내년에 진행될 치유예술제에는 일반인부 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치유에 대한 메시지만 있다면 일반인, 예술인 모두 가능하니까 관심 가져주세요."

취재 : 박영규·최소예·최진욱·황유진
덧붙이는 글 박영규,최소예,최진욱,황유진 총 4명의 기자가 공동 취재 후 작성한 기사입니다. 4명의 기자 블로그에도 게시 됩니다.

박영규 https://blog.naver.com/urban_yeong
최소예 https://blog.naver.com/thyess
최진욱 https://blog.naver.com/wlsdnr137
황유진 https://blog.naver.com/ellison-
치유연극 치유예술제 김영미 한국임상연극심리치료협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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