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특집방송 - 여름날의 재회> 포스터.
문화방송
"새 집을 짓는 대신, 오래 된 집을 고쳐 산다는 어떤 분이 인터뷰에서 말씀하시더라고요. 반짝반짝 빛이 나는 집보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집이 나에게는 더 좋다고요. 그런 마음일까요. 반짝반짝 빛이 나는 프로그램도 많은데, 반질반질 윤이 나는 이 프로그램을 계속 좋아해주시는 이유가요.
저의 손때가 묻은 FM 영화음악에 여러분의 손때가 더해져 어느덧 20년이 흘렀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정든 님' 정은임 아나운서를, 그리고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를 20년 동안 잊지 못했던 청취자들의 가슴 한켠에 묻었던 마음을 달래는 세 시간이었다. 지난 8월 2일 MBC FM4U에서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그리고 밤 11시부터 12시까지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특집방송 - 여름날의 재회>가 전파 위에 올랐다.
"달나라 같았던, 실크로드 타고 온 '서역상인' 같았던 방송"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특집방송 - 여름날의 재회>의 첫 순서는 오디오 다큐멘터리. 과거 FM 영화음악을 진행했던 배우 한예리 씨가 나레이션을 맡은 다큐멘터리는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 걸쳐 겨우 3년 남짓 방송한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정영음)가 왜 지금도 기억되는지에 대한 발자취를 찾아나선 방송이었다.
박찬욱 영화감독과 조영욱 음악감독이 먼저 인터뷰를 하고 나섰다. 조영욱 음악감독은 당시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의 음악작가로, 박찬욱 감독은 영화평론가로 방송에 고정 출연했다. '영화로 돈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힘들었던 시기였기에 기꺼이 방송에 나섰다고 두 사람은 회상했다.
그런가 하면, '정영음'은 영화 팬에게 '달나라 같은 신세계'이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영화감독 류승완 씨는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에서 정성일 평론가의 소개를 통해 <저수지의 개들>을 알게 되었다"며, "마치 서역상인이 실크로드를 타고 와서 '서양에는 이런 것이 있다'라고 말하는 기분'이었다며 회상하기도 했다.
그런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이 있기까지는 정은임 아나운서의 뼈를 깎는 노력도 있었다. 원래 영화를 좋아했다지만, '시네필'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프로그램을 모두 이해하기 어려웠을 터.
당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홍동식 프로듀서와 신영희 작가도 "처음에는 정은임 아나운서가 여느 초보DJ처럼 원고를 소화하는 데도 벅찼다"면서도, "그러다 영화를 엄청나게 빌려서 보고, 생전 처음 보는 영화들도 접하면서 '멀쩡했던 아나운서가 영화에 미쳐가는 과정'을 보는 듯 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선배 아나운서', 손석희 아나운서도 출연해 정은임을 기억했다. 손석희 아나운서는 그녀를 오랫동안 보아 온 사람답게, 정은임이 지금까지 사람들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이유에 대해 "청취자들을 어루만진 덕분"이라며 명쾌한 해답도 내놨다.
'정영음'은 사회 참여적인 방송이었기도 했다. 실업계 고교생들에게 벌어지는 교사들의 인권 침해, 그리고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백일간 농성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까지 실렸던 방송이었다. 당시 상부에 걸렸다면 정말 난리가 났을 내용이지만, 새벽 늦은 시간에 방송했던 덕에 다행히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고.
다 해봐야 3년 남짓이었던 방송을 찾아듣는 청취자들이 여전히 많은 '정영음'. 정말로 이상한 프로그램이었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청춘의 기억으로, 그리고 소외받는 이들에게 가장 든든하게 '내 편'으로 다가섰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음을 알게 했던 오디오 다큐멘터리였다.
"기억해주셔서 고맙다"... 정은임이 보낸 20년 만의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