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아프리카 양궁선수권대회 혼성 단체전에 할라스 마리아(오른쪽)와 함께 나선 이스라엘 마다예(왼쪽). 두 선수는 당시 경기에서 생애 첫 번째 금메달을 받았다.
세계양궁협회
주경야독하며 두드렸던 올림픽의 문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올림픽 채널과 인터뷰를 가졌던 이스라엘 마다예 선수. 인터뷰에 따르면 마다예는 열아홉 살까지 체육과는 큰 연관이 없었던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날 활을 들고 화살을 쏘는 법을 배우고 있던 아이들을 보고 그야말로 운명을 마주쳤다고 그는 전했다.
도전 끝에 어찌저찌 출전한 2012 런던 올림픽 양궁의 아프리카 예선. 하지만 첫 시작이었던 그가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홀로 활시위를 당기며 도전을 이어나간 마다예. 2016년 나미비아에서 열린 아프리카 선수권 대회에서는 8강까지 진출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4강 도전은 쉽지 않았고, 그는 그렇게 2016 리우 올림픽 출전권 역시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전기 기술자 일과 양궁을 병행하며 주경야독하던 그에게 또 다른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2019 아프리칸 게임부터 양궁이 정식 종목으로 편입된 것. 특히 아프리칸 게임의 결과에 따라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됐다.
생업까지 그만두고 양궁에 전념했던 이스라엘 마다예. 그는 "다른 사람들은 왜 일까지 그만두고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알고 있었다"며 의연하게 경기에 나섰다고.
2019 라바트 아프리칸 게임에서 마다예는 혼성 단체전, 그리고 남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기록했다. 가장 중요한 개인전 출전권이 걸린 남자 개인전에서는 준결승, 그리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내리 패배하며 4위에 그쳤고, 2위까지 주어지는 도쿄 올림픽 진출권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저개발 국가를 위한 IOC와 세계양궁협회의 기준도 있었다. 공인 대회의 랭킹 라운드에서 640점을 기록하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것. 세계양궁협회에서도 그의 노력에 화답해 양궁 장비를 제공하는 등 도움에 나섰지만, 아쉽게도 도쿄 올림픽 출전권은 따내지 못했다.
"내전·반란에 고통받는 국민들 기뻐했으면"
그렇게 2023년 아프리카 양궁 선수권대회 혼성 단체전에 할라스 마리아와 함께 나선 이스라엘 마다예. 그는 코트디부아르를 상대로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금메달을 따내며 양궁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포디움 맨 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리고 마다예의 '올림픽 4수'도 2024년, 마침내 끝맺었다. 2024년 4월 스위스 로잔 세계양궁발전센터에서 열린 공인 대회에서 647점을 기록, 마침내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26일 열렸던 개막식에서도 기수단으로 섰다.
비록 랭킹 라운드에서 600점을 기록해 64위, 꼴찌를 기록하며 1위를 기록한 김우진과 바로 맞붙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꿈꾸어 오던 '세계 최강' 한국 선수와의 맞대결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큰 격차는 어쩔 수 없었기에 세트 스코어 6-0(29-26. 29-15, 30-25)으로 패배했고, 1점짜리 화살을 쏘기도 했던 마다예. 토너먼트 한 경기만에 물러서기는 했지만, 꿈의 올림픽 무대에 서면서 이스라엘 마다예는 행복한 도전을 마쳤다.
이스라엘 마다예 선수가 이렇게 올림픽에 열정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올림픽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내전과 불안한 정세로 인해 고통받는 차드 국민들이 자신의 승리로 펄럭일 국기를 보고 힘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다예는 "스포츠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기에, 우리가 운동을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개인에 있어 기쁜 점도 하나 더 있다. 마다예의 노력을 지켜본 세계양궁협회가 그를 수련 선수로 지정해 스위스 로잔 세계양궁발전센터에 소속된 '직업 선수'로서 훈련을 이어갈 수 있게끔 했기 때문. 진정으로 조국 차드를 위해 뛰는 이스라엘 마다예의 두 번째, 세 번째 올림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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