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안양과 A.S.U. RED의 한 시대를 기록하다
<수카바티: 극락축구단(이하 <수카바티>)>은 축구에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중에서도 국내 축구, 그것도 2부 리그에 소속된 시민구단, FC 안양을 소재로 한다. 그렇다면 종목은 다르지만 2015년에 제작된, 역시 비슷한 조건의 야구단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파울볼>을 떠올리는 이들이 나올 테다. 하지만 <수카바티>는 '언더독' 정신으로 무장한 선수와 구단 관계자들이 주인공이 아니다. 구단은 오히려 배경일 뿐, 이 영화의 주역은 'A.S.U. RED'라 불리는 FC 안양의 '서포터즈'들이다. 팬이 종종 인터뷰 대상으로 등장하긴 해도 그저 배경으로 머물던 여타의 스포츠 다큐멘터리와는 궤를 달리하는 시도인 셈이다.
영화는 '안양'이라는 '노잼 도시'에 대해 소개하며 출발한다. '태초에 안양에는 LG 치타스가 있었다.' 1990년대 중후반 이들은 인접한 수원 삼성과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프로축구의 열기를 지폈다. 당연히 열성적인 응원문화가 초기부터 형성되었다. 그런 열기는 2002년 월드컵으로 이어졌다. 초창기 각 구단의 서포터즈들의 연합이 곧 월드컵을 상징하는 '붉은 악마'가 된 셈이니 감개무량할 관객들이 제법 나올 테다. 그렇게 재미없는 도시일지언정, 주말에는 축구 응원으로 한주의 피로를 날려버릴 거리가 생겼다. 모두가 행복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월드컵 주 경기장이던 서울의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는 정작 주인이 없었고, 서울의 상징성을 탐낸 치타스의 모기업은 연고지 이전을 단행한다. 기습적으로 일어난 이 '대사변'은 그동안 열정적으로 구단을 성원하던 서포터즈에겐 배신행위 그 자체였다. 제작진의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은 그 당시의 좌절감과 울분을 터뜨린다. 그저 넋두리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들 중 몇은 실제로 서울로 이전해 '신분세탁'을 마친 구단의 첫 경기장에 항의 현수막을 들고 난입해 분노를 표출한다. 그들 표현대로라면, '계란으로 바위는 깰 순 없지만 더럽힐 순 있을 것'이라는 한풀이나 다름없다.
이때까지라면 그저 해프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난동에 불과할 테고,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이들이라도 더는 물리적으로 뭘 해볼 수 없는 이들의 자폭쯤으로 여기고 넘어갈 구석이다. 하지만 이들은 안양에 축구단을 재건하려는 노력에 돌입한다. 지역 정치인들과 접촉하고, 제안서를 꾸며서 여기저기 안 가본 곳이 없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몇 번의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2012년, 시민구단 설립이 승인된다. 근 10년 만에 그렇게 안양에 축구단이 부활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취지에 동의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은 물론, 아마 이 건이 아니라면 살면서 단 한 번도 들를 일 없었을 시의회에 출석하며 온갖 사건 사고의 주역이 된다.
그렇게 비록 잘 나가던 과거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긴 해도 안양에 시민구단이 들어선다. 물론 대기업의 지원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1부 리그 명문 팀과 비교하면 전력이건 인지도건 형편없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이 서포터즈 구성원들은 그저 자신들이 일체화할 수 있는 FC 안양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패배할지라도 열심히 뛰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종종 상대 구단 서포터즈와 충돌하고, 심판 판정에 가장 격렬하게 항의하는 집단으로 악명도 날리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성원하는 구단에 대해선 본인들이 최후의 보루라 여기며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보기 드문 응원문화가 이들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이들에겐 신선한 발견이 되어줄 테다.
불타는 홍염에서 우리 곁의 '축구 좋아하는' 이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