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사범학교의 '수학 천재' 대학원생 마거리트, 그녀는 후줄근한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며 항상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오직 수학, 수학, 수학뿐이다. 얼마나 대단하면 교지에서 인터뷰 취재를 나올 정도다. 그녀가 요즘, 아니 평생 연구하고 있는 건 '골드바흐의 추측(1을 소수로 간주했을 때 2보다 큰 모든 정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로 20세기 수학계 최대 난제로 손꼽힌다.

마거리트의 지도교수 베르네르 또한 평생을 골드바흐 추측 연구에 바쳤다. 그들은 드디어 골드바흐 추측 증명의 중간단계에 접어들었다. 유서 깊은 로잔 세미나에서 마거리트가 발표하기로 했다. 순조롭게 이어가는 세미나, 하지만 막바지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온 베르네르의 또 다른 제자 루카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마거리트는 이내 세미나를 박차고 나서고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더 이상 수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엄마한테는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베르네르 교수는 그녀에게 실망했다며 지도교수직을 내려놓겠다고 한다. 마거리트는 우연히 만난 댄서 노아와 룸메이트로 지내며 스포츠용품점에서 일해 4년 장학금을 갚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노아가 자신의 꿈을 위해 돈을 빼돌렸고 마거리트는 불법 도박장에서 마작으로 돈을 벌어 충당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머릿속에 느닷없이 수학 공식이 찾아오는데... 마거리트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이성 대신 감정을 담다
 
 영화 <마거리트의 정리>의 한 장면.
영화 <마거리트의 정리>의 한 장면.영화사 진진
 
영화 <마거리트의 정리>는 굉장히 정직하다. 비록 수많은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에겐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소재가 영화의 중심축을 형성하니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 수학은 수단이자 도구로 작용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영화가 보여주려 한 건 수학의 어려움이나 위대함이 아닌 마거리트의 진정한 성장이다.

10대 초반에 처음 접하고 이내 빠져든 세기의 수학 난제 골드바흐의 추측. 이후 인생의 절반을 넘게 오직 수학만 생각하며 살아온 마거리트는 학교에서도 수학 천재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로웠을 때 느닷없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강력한 '자기확신'이 한순간에 철저한 '자기부정'으로 뒤바뀌는 순간. 누구라도 자신을 완전히 놔버릴 것이다.

이후 그녀는 평생 해 보지 못한, 앞으로도 해 보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경험을 뒤늦게 시작한다. 알바, 친구, 섹스, 도박 그리고 사랑까지. 삶의 모든 걸 '이성'적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했던 지난날과 달리 이제 '감정'을 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보이기 시작한다. 골드바흐의 추측을 해결할 핵심 말이다. '안'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밖'으로 나오니 비로소 보인 것이리라.

자연스레 추측할 수 있다. 마거리트가 다시 수학계로 돌아갈 거라는 걸, 아니 그녀는 다시 수학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특별한 소재와 특별할 것 없는 주제
 
 영화 <마거리트의 정리>의 한 장면.
영화 <마거리트의 정리>의 한 장면.영화사 진진
 
특별한 소재와 특별할 것 없는 주제를 버무리는 솜씨가 탁월하다. 소재든 주제든 뭐 하나라도 특별할 때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중요할 테다. 그리고 그것들을 마거리트로 분한 엘라 룸프가 한 데로 모았다. 그녀는 영화 속, 오직 수학밖에 몰랐지만 서서히 세상을 알아가는 마거리트 그 자체다.

마거리트를 두고 가장 먼저 따오른 건 '불광불급', 즉 미쳐야 미친다라는 말이었다. 마거리트의 성장은 '정반합', 즉 헤겔의 변증법을 도식화한 논리 전개 방식으로 풀이해 볼 수 있겠다. 기존 유지 상태인 '정'은 수학밖에 모르던 상태, 부정하며 새로운 상태를 제시한 '반'은 나락으로 떨어져 수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는 '합'은 세상을 알아가며 수학이 다시 찾아온 상태. 그리고 '합'은 다시 '정'으로 돌아가 정반합은 반복된다.

성장이라는 게 그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물이 고여 있지 않고 계속 흐르는 상태, 유지하다가 부정하고 배제한 후 다시 유지하길 반복, 이것저것 고정관념 없이 다 해 보는 것. 그리고 나락으로 떨어져 밑바닥을 경험하고 다시 올라와 보는 것. 그런 면에서 '미친 사람은 성장하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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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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