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스페인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유로 2024는 '무적함대' 스페인의 부활을 확인할 수 있었던 대회였다. 7전 전승, 15득점 4실점으로 퍼펙트한 우승 레이스를 선보였다.

1964, 2008, 2012년 대회에 이어 통산 4번째 우승을 달성, 독일(3회)을 제치고 유로 최다 우승국으로 등극했다. 지난 12년 동안 메이저대회에서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며 암흑기에 빠진 스페인이 새로운 제2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스페인, 황금기 이후 12년 동안 하향세

스페인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티카타카와 점유율 축구로 대변되는 새로운 전술 트렌드를 제시하며 세계 축구를 지배했다. 라 리가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유럽 축구 판도를 지배하는 시기와 맞물려있다.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다비드 실바, 세스크 파브레가스, 사비 알론소 등 특급 미드필더들이 구현하는 패싱 플레이는 축구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유로 2008에서 정상에 오르며, 44년 만에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은 기세를 몰아 2010 남아공 월드컵까지 제패, 사상 처음으로 피파컵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유로 2012에서도 최강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사비, 이니에스타 등 주축 세대들이 물러나면서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에 대한 파훼법이 나온 것도 부진의 큰 원인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은 스페인 축구 몰락을 의미했다. 유로 2016 16강 탈락,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 탈락으로 후유증은 당초 예상보다 길었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유로 2020에서 4강에 올랐지만 내용적으로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일본에 1-2로 패하며 망신을 당하더니 결국 모로코와의 16강전에서도 승부차기 끝에 탈락하며 짐을 싸야 했다. 

데 라 푸엔테 감독, 연령별 대표팀 거쳐 A대표팀 승격

월드컵 실패 이후 엔리케의 후임으로 루이스 데 라 푸엔테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스페인축구협회는 연령별 대표팀과 A대표팀의 연계를 고려해 데 라 푸엔테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파격적인 시도를 택했다. 

사실 그는 1961년생으로 60대 초반의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유럽 내에서 무명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지도자 경력은 스페인 연령별 대표팀에 집중돼 있다. 2013년부터 연령별 대표팀을 지휘한 데 라 푸엔테 감독은 2015 UEFA 유로 U-19 챔피언십과 2019 UEFA 유로 U-21 챔피언십 우승, 2020 도쿄 올림픽 은메달을 이끌며 한 단계씩 성장했다. 

데 라 푸엔테 감독은 연령별 대표팀 시절 다수의 선수들을 지도해본 경험이 풍부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번 유로 2024에서 스페인 스쿼드의 26명 가운데 30대는 단 6명에 불과했다. 라민 야말, 니코 윌리엄스 등 영건들을 과감하게 주전으로 기용했으며, 대표팀 경력이 없던 로뱅 르 노르망을 발탁해 주전 센터백으로 키운 점도 눈길을 끌었다. 이밖에 헤수스 나바스, 다니 카르바할 등 일부 30대 노장들을 중용하면서 스쿼드의 신구 조화를 이뤄냈다.

데 라 푸엔테 감독의 기조는 전임 엔리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높은 볼 점유율과 후방에서의 세밀한 빌드업, 강도 높은 전방 압박을 가한다. 

감독 부임 초반 출발은 좋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스코틀랜드와의 유로 2024 예선에서 0-2로 패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6월 2022-23 UEFA 네이션스리그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으며, 유로 2024 예선을 7승 1패로 통과해 본선에 진출했다. 

지난 3월 두 차례 평가전에서는 불안감을 남겼다. 콜롬비아에 0-1로 패했고, 브라질과 3-3으로 비겼다. 그래서인지 이번 유로 2024를 앞두고 스페인은 프랑스, 잉글랜드, 독일 등에 밀려 우승후보 1티어로 분류되지 않았다. 

'7전 전승' 스페인의 완벽한 경기 운영 능력

하지만 스페인은 대회 직전 6월 열린 안도라(5-0승), 북아일랜드(5-1승)와의 2연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유로 2024에서 죽음의 조에 속한 스페인은 첫 경기 크로아티아전에서 3-0으로 승리하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이날 스페인은 점유율에서 크로아티아에 뒤졌다. 유로 2008 결승전 이후 A매치 136경기 연속 점유율 우위를 점한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었다. 

스페인은 이번 대회에서 24개 참가국 가운데 대회 평균 58.3%의 점유율(3위). 경기당 평균 슈팅 17.4개(3위)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데 라 푸엔테 감독은 상황에 맞게 실리적인 색채를 더하며 점유율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전술적 유연성은 대회 내내 빛났다. 이후 이탈리아(1-0승), 알바니아(1-0승)를 연파하며 조별리그에서 유일한 3전 전승이자 무실점으로 16강에 올랐다.

토너먼트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조지아와의 16강전에서 선제 실점에도 흔들리지 않고 4득점을 몰아치며 승리를 거둔 뒤 최대 고비였던 개최국 독일과의 8강전에서도 2-1로 승리하며 탄력을 받았다. 이번 대회 우승후보 1, 2순위로 평가받은 프랑스(2-1승), 잉글랜드(2-1승)도 스페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프랑스, 잉글랜드 등 강호들이 실리 축구와 선수 개개인에 의존하는 전술로 일관한 것과 비교해 스페인은 우승할 자격이 충분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다니 올모(3골), 파비안 루이스, 니코 윌리엄스(이상 2골), 알바로 모라타, 다니 카르바할, 페란 토레스, 라민 야말, 미켈 메리노, 로드리, 미켈 오야르사발(이상 1골) 등 한 명에 집중하지 않고, 고른 득점 분포를 보인 점도 특징이다.

득점력이 뛰어난 스트라이커의 부재가 대회를 앞두고 최대 약점으로 꼽혔으나 데 라 푸엔테 감독은 모라타를 적극적으로 신뢰했다. 첫 경기 크로아티아전 득점 이후 골맛을 보지 못한 모라타는 상대 수비수와 싸워주며 공을 간수하고, 2선으로 내려와 연계 플레이에 집중하며 동료들을 도왔다. 

무엇보다 스페인이 전성기 시절과 비교해 큰 차이점이라면 전문 윙어 야말(2007년생), 윌리엄스(2002년생)의 존재감이다. 과거 스페인은 좌우 측면에 중앙 미드필더 성향이 짙은 선수들을 배치했다. 측면 돌파보단 볼 소유와 패스가 뛰어난 미드필더 숫자를 늘려 점유율 극대화에 치중한 바 있다. 

야말과 윌리엄스는 저돌적인 측면 드리블 돌파로 공간을 만들었고, 중요한 고비처에서 골과 도움을 기록했다. 야말과 윌리엄스는 잉글랜드와의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합작하며 우승에 힘을 보탰다.

유로 역대 최연소 득점자에 이름을 올린 야말(1골 4도움)은 이번 유로 2024의 어시스트왕과 영 플레이어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토너먼트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조지아전 1도움, 독일전 1도움, 프랑스전 1골, 잉글랜드전 1도움)를 올릴만큼 순도가 높았다.  

이밖에 수비형 미드필더 로드리는 빌드업의 시작점과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대회 MVP에 선정됐다. 대회 중반까지 후반 조커로 쏠쏠한 활약을 선보인 올모는 페드리의 부상 이후 주전으로 도약해 총 3골 2도움으로 야말(1골 4도움)과 함께 최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스페인은 현재보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팀이다. 2년 뒤 열리는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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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2024 스페인 야말 로드리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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