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 스틸컷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 스틸컷 ⓒ A24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케이티 오브라이언 주연의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이 국내 개봉했다. 웰메이드 호러 영화 <세인트 모드>로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로즈 글래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이 걷잡을 수 없는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고전 할리우드 범죄 영화의 문법을 계승하면서도 한 단계 더 진화한 스토리텔링을 보여 준다.
 
중심 인물부터 다르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주인공 '루(크리스틴 스튜어트 분)'는 동네의 작은 체육관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다소 불쾌하게 보일 정도로 과도하게 클로즈업된 남자들의 운동하는 모습인데, 여기서 카메라가 이 공간의 몇 안 되는 여성인 루를 향한다. 주로 염세주의적인 남성 인물들이 주연을 맞던 기존의 범죄 영화와는 다르다고 선언하는 듯한 장면이다.
 
루에게 탐정이나 형사 같은 직업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그 대신 루를 둘러싼 흥미로운 인물 관계가 관객으로 하여금 그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만든다. 루가 최선을 다해 기피하는 아버지는 살인을 서슴지 않는 무기 밀매상이고, 루의 언니는 폭력을 일삼는 남편 'JJ'에게 시달려 살지만 폭력도 사랑의 한 형태라고 굳게 믿으며 JJ에게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루는 이러한 가족을 저버릴 수 없어 마을을 떠나고 싶어 하면서도 그러지 못한다. 폭력의 굴레에 갇혀 탈출하지 못하는 주인공인 셈이다.
 
그런 루의 일상에 새로이 나타난 인물이 바로 떠돌이 보디빌더 '잭키(케이티 오브라이언 분)'다. 잭키와 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랑에 빠지고, 루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보디빌딩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잭키더러 자기 집에 얹혀살게 한다. 그러던 도중 루의 언니가 JJ에게 심각한 폭행을 당해 입원하게 되는데, 남편의 처벌을 원치 않는 언니의 뜻을 마지못해 따르는 루와 달리 잭키는 충동적으로 JJ를 살해해 버리고야 만다.
 
영화는 루와 잭키가 자신들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음모와 배신, 그리고 오해가 일어나지만 끝까지 변함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루와 잭키의 사랑이다. 둘 중 그 누구도 주인공을 꾀어 함정에 빠뜨리는, 교활한 팜 파탈(femme fatale)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루와 잭키가 서로에게 등을 돌리더라도, 서로에 대한 사랑이 그 동기가 된다.
 
마찬가지로 두 여성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범죄 영화 장르의 변화를 꾀한 작품인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91년 영화 <델마와 루이스>와도 유사한 지점이 보이는 부분이다. 하지만 두 주인공이 결말에 다다라서야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델마와 루이스>와 달리,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시작부터 강렬한 사랑을 드러내는 여성애자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과감한 신선함을 선사한다.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 스틸컷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 스틸컷 ⓒ A24

 
놓치지 않은 주제적 완성도

하지만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범죄 영화의 주인공을 새롭게 교체하는 데서 혁신을 멈추지 않는다. 일관적이고 명료한 주제가 본작의 주인공들의 신선함과 맞물려 깔끔하게 영화를 완성하기도 한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을 관통하는 소재는 바로 '중독'이다. 루는 애연가였지만 잭키를 만난 이후로 담배를 끊는다. 한편 루의 언니는 남편과의 유독한 관계에 중독됐으에도 끝내 그를 버리지 못하고, 잭키는 살인을 저지른 직후 가만히 있으라는 루의 말에도 불구하고 홀로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해 둘이 잡힐 빌미를 제공한다.
 
하지만 루의 언니와 잭키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잭키는 루에게 사랑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루의 언니는 자신이 의식을 잃을 때까지 폭력을 행사하던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안도하지 않으며, 오히려 남편을 죽인 데 일조한 루를 원망하기까지 한다. 구제불능인 언니를 위해 고군분투한 루 역시, 자신의 처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언니와의 유독한 관계에 중독됐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반면, 잭키는 루 아버지의 회유에 넘어가 또다른 살인을 저지르고 루와 대치하기까지 하지만, 마지막에는 진실한 소통을 통해 서로의 오해를 풀고 루와 다시금 함께하게 된다.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러브 라이즈 블리딩> 속 세계에서 서로를 동등하게 사랑하는 조합은 루와 잭키가 유일한 것이다.
 
"니코틴 중독자들은 흡연하지 않으면 극심한 공허감을 느낍니다. 그들이 다시 담배에 입을 대는 이유는 오로지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초반에 루가 듣던 라디오 방송에선 위와 같이 멘트가 흘러나온다. 서로 속을 빨아먹으며 공허감을 느끼게 만드는 인간관계 속에서 루와 잭키는 서로를 채울 수 있었기에 끝까지 함께할 수 있었다.
 
영화는 루가 루의 아버지에게 납치당한 잭키를 구하고, FBI를 끌어들여 아버지의 범죄가 심판받게 함으로써 끝에 다다른다. 루와 잭키는 마지막으로 정처 없는 여정을 떠나며, 막막하지만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중독이라는 주제와 여성 중심의 새로운 캐릭터성은 서로 치밀하게 얽혀서, 대물림되는 가정폭력에서 벗어나는 여정이라는 근사한 그림을 완성해 낸다. 하지만 분위기를 통해 관객들을 압도하던 20세기의 누아르(noir) 영화에서 이어지는 본작의 계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처럼 깔끔한 메시지도 장르적 쾌감을 주는 영상미, 살벌한 사운드 디자인과 탄탄한 각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95년작 <함정>을 비롯한 고전 범죄 영화들의 리메이크가 줄줄이 발표되고 있는 요즈음, 두 마리 토끼를 전부 잡은 <러브 라이즈 블리딩>이 범죄 영화의 새로운 교과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영화 러브라이즈블리딩 크리스틴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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