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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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지 않은 주제적 완성도
하지만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범죄 영화의 주인공을 새롭게 교체하는 데서 혁신을 멈추지 않는다. 일관적이고 명료한 주제가 본작의 주인공들의 신선함과 맞물려 깔끔하게 영화를 완성하기도 한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을 관통하는 소재는 바로 '중독'이다. 루는 애연가였지만 잭키를 만난 이후로 담배를 끊는다. 한편 루의 언니는 남편과의 유독한 관계에 중독됐으에도 끝내 그를 버리지 못하고, 잭키는 살인을 저지른 직후 가만히 있으라는 루의 말에도 불구하고 홀로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해 둘이 잡힐 빌미를 제공한다.
하지만 루의 언니와 잭키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잭키는 루에게 사랑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루의 언니는 자신이 의식을 잃을 때까지 폭력을 행사하던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안도하지 않으며, 오히려 남편을 죽인 데 일조한 루를 원망하기까지 한다. 구제불능인 언니를 위해 고군분투한 루 역시, 자신의 처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언니와의 유독한 관계에 중독됐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반면, 잭키는 루 아버지의 회유에 넘어가 또다른 살인을 저지르고 루와 대치하기까지 하지만, 마지막에는 진실한 소통을 통해 서로의 오해를 풀고 루와 다시금 함께하게 된다.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러브 라이즈 블리딩> 속 세계에서 서로를 동등하게 사랑하는 조합은 루와 잭키가 유일한 것이다.
"니코틴 중독자들은 흡연하지 않으면 극심한 공허감을 느낍니다. 그들이 다시 담배에 입을 대는 이유는 오로지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초반에 루가 듣던 라디오 방송에선 위와 같이 멘트가 흘러나온다. 서로 속을 빨아먹으며 공허감을 느끼게 만드는 인간관계 속에서 루와 잭키는 서로를 채울 수 있었기에 끝까지 함께할 수 있었다.
영화는 루가 루의 아버지에게 납치당한 잭키를 구하고, FBI를 끌어들여 아버지의 범죄가 심판받게 함으로써 끝에 다다른다. 루와 잭키는 마지막으로 정처 없는 여정을 떠나며, 막막하지만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중독이라는 주제와 여성 중심의 새로운 캐릭터성은 서로 치밀하게 얽혀서, 대물림되는 가정폭력에서 벗어나는 여정이라는 근사한 그림을 완성해 낸다. 하지만 분위기를 통해 관객들을 압도하던 20세기의 누아르(noir) 영화에서 이어지는 본작의 계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처럼 깔끔한 메시지도 장르적 쾌감을 주는 영상미, 살벌한 사운드 디자인과 탄탄한 각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95년작 <함정>을 비롯한 고전 범죄 영화들의 리메이크가 줄줄이 발표되고 있는 요즈음, 두 마리 토끼를 전부 잡은 <러브 라이즈 블리딩>이 범죄 영화의 새로운 교과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