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메모리> 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모든 탄생과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 그 순간에 헤어질 때의 장면을 미리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한한 존재가 피할 수 없는 정확하고도 단일한 사실이다. 이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존재의 생이 다해 사별하는 경우나 관계의 종말로 인해 남아있는 시간 동안에 완벽한 단절을 선언하며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그중 하나일 수 있다. 때로는 개인의 의지나 뜻과는 무관하게 잃어버리게 되거나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쪽이든, 나라는 개인을 중심에 두고 보자면, 어떤 상황에도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는 존재는, 그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와 별개로 생의 종말, 죽음을 맞이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상태와 무관하게 자력으로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 이야기하는 많은 작품들에서 이제 만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남은 사람들의 감정이 소재가 되는 것 또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대체하고자 하는 마음. 어쩌면 오랜 세월 계속되어 온 인간의 탐욕과 헛된 희망의 새로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실과 무관하게 아직 떨쳐내지 못한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미련을 안은 존재의 모습은 가슴 한 구석을 강하게 관통하는 면이 있다. 다시,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이별한 경험을 안고 있어서다.
02.
"진짜가 돼 저게? 진짜가 되냐고."
영화 <메모리>에 등장하는 시우(박경은 분)는 세상을 먼저 떠난 아빠 도준(조형래 분)을 다시 만나고 싶다. 고인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가정용 복제 로봇을 통해서다. 문제는 엄마 지연(김영선 분)이다. 딸과 마찬가지로 남편의 기억으로 매일 힘들어하지만 진짜가 아닌 로봇을 통해 존재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지는 않다. 모든 가족 구성원의 동의가 없으면 로봇을 정식으로 계약하기는 힘들다. 지금으로서는 3일 동안 제공되는 체험만이 가능할 뿐이고, 딸 시우는 엄마가 그렇게라도 외형은 물론 행동까지 아빠와 동일한 로봇에 마음을 열어주길 바란다.
로봇을 바라보는 이 작품의 시선은 두 가지다. 외면으로 드러나는 것은 누군가를 대체하는 금속 물성인 로봇을 대하는 이들이 갖는 서로 다른 태도다. 로봇을 통해서라도 잃어버린 존재와 다시 마주하고자 하는 시우와 그렇지 않은 지연의 모습. 분명한 것은 이 차이가 두 사람이 도준이라는 인물, 이제 닿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해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어 발생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동일한 감정과 다른 태도. 이것은 감정이 아닌 위치와 역할의 차이로부터 발생한다.
엄마 지연이 남편 도준을 닮은 로봇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는 감정적인 부분 외에도 하나가 더 영향을 미친다. 로보틱스 이론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와 연관된 부분이다. 실제로 그녀는 상의도 없이 딸이 집안으로 들인 로봇을 앞에 두고 생각보다 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자신의 배우자와 너무나도 닮은 모습 때문이다. 로봇의 모습이나 행동 자체는 사진과 딸의 기억에 기댄 인터뷰에 근거한 프로그래밍일 뿐이지만, 지연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