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광 다이오드, 즉 LED가 처음 개발됐을 때, 사람들은 이것이 환경보호에 기여하는 획기적 발명품이라 여겼다. 틀린 말은 아니다. 100W 백열전구를 27W짜리 LED가 대체하고, 그 수명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전기를 덜 소모할 뿐 아니라 쓰레기도 덜 발생케 하는 혁신적 발명으로, 기술 발전이 인류는 물론 지구를 구하리란 믿음을 증명하는 사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LED는 환경, 그중에서도 해양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군림했다. LED만 발명되지 않았더라도 해양생태계의 종 다양성이며 절대적 개체수가 지금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으리란 평가도 나온다.
 
이유는 바로 LED 집어등, 동서 아프리카는 물론 인도와 아시아 일대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LED 집어등이 물고기의 씨를 말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에서도 종종 사용이 보고되는 LED 집어등은 기존 전구 집어등보다 발광력이 좋은 건 물론이고 바다 깊은 곳까지 넣어 작동시키는 게 가능해 그 효과가 비할 수 없을 만큼 좋다. 가리지 않고 LED 집어등을 활용하는 어민들이 나타난 건 당연지사, 각국이 이를 규제하는 대책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조류를 거슬러' 스틸컷

'조류를 거슬러' 스틸컷 ⓒ SIEFF

 
한국도 자유롭지 않은 불법어업 실태
 
그러나 눈앞의 이익 앞에서 규제가 제 역할을 할 리 만무하다. 영해에서조차 지켜지지 않는 규제는 각국 원양어선에 의해 우습게 짓밟혔다. 특히 전 세계 바다를 싹쓸이하고 다니는 중국어선은 아프리카는 물론, 서아시아와 인도, 동남아 일대를 거의 초토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LED 집어등을 밝히고 금지된 어망과 어획방식을 쓰는 이들의 작업에 연근해는 물론 먼 바다의 물고기 개체수가 크게 줄어든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또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국제기구가 금지하는 IUU(Illegal, Unreported and Unregulated Fishing), 즉 불법, 비보고, 비규제 어업 국가로 두 차례나 지목된 한국이다. 국제기구가 금어조치를 협의한 수역에서 몰래 조업하고, 심지어는 잡은 걸 가공해 남은 부위를 바다에 무단 투기하다 적발되었던 것이다. 국제사회가 이를 지탄하고 한국 어선에 불이익을 주는 조치까지 했지만, 정부며 국내 언론들은 이를 시민 앞에 제대로 알리지 않아 논란이 됐다(관련기사 : 당신의 식탁에 오른 연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봤나요?).
 
그러나 정부는 국제협약을 무시하고 문제 선사가 잡아 온 고기를 국내에까지 유통하도록 허용했다. 급기야 최근엔 해당 선사에 합법어업증명서까지 발급하고 그 어획물을 수출할 수 있게 했다. 가뜩이나 악명 높은 한국 원양어업이 먼바다에서 횡포를 부리도록 방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꼴이다.
  
 '조류를 거슬러' 스틸컷

'조류를 거슬러' 스틸컷 ⓒ SIEFF

 
뭄바이 앞바다에 의지해 삶을 꾸려가는 가난한 이들
 
역대 최대규모로 열린 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국제경쟁부문 대상 수상작은 인도 영화 <조류를 거슬러>의 차지가 됐다. 사르브닉 카우르의 97분짜리 장편 다큐멘터리로, 일찌감치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드, 시드니영화제, 시애틀국제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화제작이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앞서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이 작품을 국제경쟁에 포함한 것은, 이 영화제가 한국의 주류 영화제와 달리 영화제의 권위를 세우는 데 치중하지 않는단 사실을 방증한다. 우리 시대 환경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그것이 처한 위기를 내보이는 것이 영화의 미학적 가치를 다루는 것보다 중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영화제가 먼저 상을 주었다 하여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한국으로 치면 부산쯤이라 할까. 인도 제2의 도시로, 인도 서안에 위치한 최대 무역항이자 발리우드의 본진인 뭄바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택과 초대형 빈민 밀집 거주지가 공존하며, 발전한 산업들과 황폐한 자연환경이 맞물리는 약 2000만 명이 살아가는 초대형 도시가 바로 이곳이다.
 
이곳 바닷가에 콜리족 마을이 있다. 석가모니의 외가가 바로 이 콜리족이기도 한데, 오늘날 파키스탄과 인도 일대에 퍼져 있는 뿌리 깊은 민족이다. 스스로를 용감하다 여기는 이 일대 콜리족들에겐 오랫동안 뿌리내린 삶의 양식이 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되 멀리 가지 않는 것, 필요 이상 많이 잡지 않고 바다를 풍요롭게 놓아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제 용기와 노동으로 하루를 사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에게 먼 바다로 나가 LED 집어등까지 켜고 불법 조업하는 일은 도외시될 수밖에 없다.
 
 '조류를 거슬러' 스틸컷

'조류를 거슬러' 스틸컷 ⓒ SIEFF

 
불법 LED 집어등 둘러싼 고민
 
그러나 오늘의 바다는 콜리족에게 고난만을 허락한다. 파괴된 환경이 그들의 바다, 즉 수심이 얕은 연근해를 황폐화한 탓이다. 오폐수가 그대로 흘러나오는 뭄바이의 환경파괴가, 또 먼 바다에서 물고기를 남획하는 양심 없는 어선들이 앞바다 생태계를 초토화했다. 오랫동안 지켜온 콜리족 선조들의 방식이 더는 이들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애써 내린 그물을 올려도 그 안에 든 것은 오염된 물에 사는 해파리들뿐이다.
 
사르브닉 카우르의 카메라는 콜리족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담는다. 서로 절친한 친구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다. 가네시는 큰 배를 몰고 먼 바다로 나가기를 선택하고, 라케시는 조상들의 방식대로 앞바다만 오간다. 형제처럼 가까운 이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하는 서로 다른 바다가 그들을 조금씩, 마침내는 아주 멀리 다른 세계로 몰아간다.
 
둘 모두가 처한 환경은 말 그대로 참담하다. 먼 바다로 나가 현대적 방식으로 어업을 하겠다 선언한 가네시지만 그는 LED 집어등만큼은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도는 물론 저 중국의 수많은 어선들이 인도 영해를 조금 벗어난 곳에서 LED 집어등을 써서 큰 물고기를 죄다 잡아가는 상황이 분노를 넘어 절망감마저 안긴다. 라케시를 찾아 술을 마시며 현대적 방식으로 조업해야 한다고 말하던 그가 마치 LED 집어등을 쓰는 이들의 대변자처럼 말하는 순간은 마치 어느 우정의 붕괴처럼 위태롭게 다가온다.
 
큰 배를 몰아 나갈수록 빚만 쌓이는 가네시의 상황, 또 종일 고생해도 쓸모없는 해파리며 잔물고기만 올라오는 라케시의 상황이 참담하기만 하다. 그들의 노력으로는 타개할 수 없는 상황이, 또 그를 불러온 거대한 체계의 부조리함이 막막함을 안긴다. 제 가족과 종족에 책임을 다하려는, 충실히 삶을 꾸리려는 이들의 노력이 필연적으로 닿고 마는 절망을 안온한 극장에서 마주한다는 사실이 민망함을 더한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포스터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포스터 ⓒ SIEFF

 
저들의 가난과 우리의 편리 사이
 
앞에 적은 한국과 중국 어선의 실태를 아는 이에게, 가네시와 라케시의 이야기는 그저 인도의 어부 둘의 대화일 수만은 없다. 언제까지 작은 바다만 고수할 거냐고, 더 현대적인 어업을 해야 한다고, 넌지시 LED 집어등 이야기까지 끼워 넣어 말하는 가네시의 말이 마치 한국과 중국이 제가 앞바다를 초토화한 아프리카며 아시아 나라들에 하는 행태와 얼마 다르지 않게 다가오는 것이다.
 
너는 번듯한 아파트에서 살고 싶지 않으냐고, 네 꼴을 보라고, 종일 일해도 개처럼 살 뿐이 아니냐고, 마침내는 '집에 변기도 없는 자식'이라고 친구를 모욕하는 가네시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면을 상징적으로 내보인다. 남의 앞바다에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물고기를 싹쓸이해 온 어느 나라는, 저보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이들의 방식을 후진적이라고 비웃는다. 우리에겐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
 
더 큰 탐욕만을 불러오는 오늘의 방식을 이제는 돌아볼 때가 되었다. 그 시작은 잘못을 알고 바로잡는 것부터일 테다. 적어도 IUU에 지정되지 않는 것, 잘못을 범한 이에게 책임을 물리는 것, 남획을 거부하고 윤리적 소비를 할 수 있는 조치를 해나가는 것, 한국이 전혀 노력하고 있지 않은 이 같은 일이 모두 그 시작일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변화는 시민들의 관심으로부터 일어날 테다. 준비가 되었는가.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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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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