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명의 유럽파 코리안리거가 탄생했다. 프로축구 광주FC의 엄지성이 영국 프로축구 챔피언십 소속 스완지시티 AFC로 이적을 확정했다.
 
광주FC는 지난 3일 공식 채널에서 엄지성의 스완지시티행을 발표했다. 광주는 구단 노동일 대표이사와 스완지시티 대표 간 화상 회의를 통해 이적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를 진행했고 엄지성의 스완지시티행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엄지성은 부드러운 드리블과 넓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찬스메이킹 능력이 뛰어난 2선 공격수다. 광주FC 유스인 금호고 출신으로 2021년 졸업과 동시에 곧바로 콜업되어 프로 무대를 밟았다. 프로 첫해부터 37경기에 출전해 4골 1도움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줬으나 이해 광주는 아쉽게 2부리그로 강등됐다.
 
2022년에는 본격적인 에이스로 도약하며 28경기 9골 1도움으로 K리그2 베스트11과 영플레이어상을 동시에 휩쓸었고 한 시즌 만에 팀의 1부리그 승격까지 이끄는 겹경사를 누렸다. 2023년에는 K리그1에서 28경기 출전 5골 4도움을 기록하며 승격팀 광주의 3위 돌풍에 기여했다. 올해인 2024년에는 리그 15경기 2골 3도움을 기록 중이었다. 엄지성의 광주에서의 통산 기록은 108경기 20골 9도움이다.
 
엄지성은 연령대별 국가대표팀에도 여러 차례 발탁됐다. 하지만 병역혜택이 걸린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과는 아쉽게도 인연이 없었다. 지난 2024 AFC U-23 아시안컵 최종명단에도 포함됐으나 한국이 8강에서 인도네시아에게 덜미를 잡혀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해 엄지성의 파리올림픽 출전도 물거품이 됐다. A대표팀에서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던 2022년에 깜짝발탁 되어 아이슬란드와의 친선전에서 교체멤버로 출전하며 데뷔전-데뷔골을 터뜨리기도 했다.
 
스완지 시티는 영국 웨일스 웨스트 글러모건 주 스완지를 연고지로 하며, 1912년 창단하여 무려 112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구단이다. 1969년부터 팀명을 스완지 타운에서 현재의 스완지 시티 AFC로 바꾸었다. 하지만 역사의 대부분을 2,3부리그에서 보내며 1부리그에서는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한국축구 팬들에게는 무엇보다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 기성용(FC서울)의 전 소속팀으로 친숙하다. 스완지에서 기성용은 2012년부터 임대기간을 포함하여 6년간 머물며 유럽 경력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활약했던 구단이다. 기성용은 2012-13시즌 스완지시티의 유일무이한 리그컵(현 카라바오컵) 우승 멤버다.
 
하지만 기성용이 몸담았던 마지막 시즌인 지난 2017-18시즌 스완지는 결국 2부리그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이후 스완지는 6년이 넘도록 1부리그에서 다시 복귀하지 못했다. 2020-21시즌 챔피언십 4위까지 올랐으나 이후 최근 3시즌간은 15-10-14위에 그치며 챔피언십에서도 중하위권에 그칠 만큼 고전하고 있다.
 
스완지는 기성용에 이어 한국인 선수 영입에 관심을 보였고 엄지성이 레이더에 포착됐다. 스완지는 엄지성 영입을 위하여 기성용에게 연락해 기량과 스타일 등을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소속팀 광주와의 협상에서 최초 제안보다 옵션 포함 몸값이 두 배 가까이 상승했을 정도로 엄지성의 영입에 적극적이었다고 알려졌다. 엄지성이 프로 커리어나 국가대표 경력이 아직 짧고, 병역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리스크를 감안하면 적지 않은 투자였다.
 
스완지가 이 정도로 엄지성 영입에 적극적이었던 건 같은 챔피언십 소속의 스토크시티가 역시 K리그 출신의 배준호를 영입하며 톡톡히 효과를 누린 모습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배준호는 K리그 대전하나시티즌과 20세 이하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스토크시티에 입단했다. 챔피언십에서는 2023~24시즌 리그 38경기 2골 5도움으로 구단 선정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고, 지난달에는 생애 첫 성인 대표팀에 발탁돼 A매치 데뷔골까지 터트리며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다.
 
젊은 K리거들의 유럽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한국축구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셀틱의 양현준, 잉글랜드 브렌트포드의 김지수, 세르비아 FK 파르티잔의 고영준 등이 잇달아 소속팀과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무대 진출에 성공했다. 여기에 강원FC의 18세 신성 양민혁도 영국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관심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K리그의 위상과 인지도가 예전과 달라진 데다, 2023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항저우아시안게임 등을 통해 잠재력을 인정받은 젊은 재능들이 이제는 유럽무대에서도 주목받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들이 국내보다 큰 유럽무대를 통해 선수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한다면 한국축구의 경쟁력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다만 소속팀 입장에서는 마음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공들여 키운 핵심선수들이 꿈을 쫓아 유럽으로 떠나버리면, K리그 구단들로서는 단기간에 그 공백을 메우기가 쉽지 않다. 2023년 주전공격수 오현규를 스코틀랜드 셀틱으로 이적시켰던 수원 삼성은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결국 그해 2부리그로 강등당했다. 전북 현대도 지난해 조규성이 덴마크 미트윌란으로 이적한 이후 최전방 공격수 부재로 고전하며 올해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광주FC 역시 엄지성의 이적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깊었다. 광주는 올 시즌 K리그1에서 7위로 상위스플릿 진출을 놓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데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까지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광주는 한국프로축구연맹 재정 건전화 제도 위반으로 여름 영입 금지 징계를 받은 상태다. 에이스인 엄지성의 이적으로 이적료 수입을 얻어도 당장 전력보강을 위한 영입이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광주가 결국 스완지의 제의를 수락한 건 금전적 조건 때문이라기보다는 선수의 유럽진출 의지가 매우 확고했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로 알려졌다.
 
사실 K리그 구단들 입장에서는 젊은 선수들을 조기에 유럽에 보내고 받는 이적료보다 몇 년간 더 데리고 있으며 얻는 마케팅 효과, 관중 동원력 등과 같은 가치가 더 크다. 선수가 성장할수록 구단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넓게 봤을 때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 유럽에 진출할 수 있다는 방향성과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선수들에게는 더 큰 동기부여가 생기고, 해외진출 기회를 적극 지원해 주는 구단들에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이 성공하는 사례가 더 늘어나야 한다. 배준호처럼 성공적으로 연착륙한 사례도 있지만, 오현규-양현준-권혁규처럼 주전경쟁에 애를 먹으며 고전하고 있는 선수들도 있다. 선수들도 유럽이라고 성급하게 도전만 앞세우는 것보다도, 자신의 현재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철저한 준비와 적응, 인내의 과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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