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에이우제비우라는 전설적인 선수의 시대가 끝난 후 포르투갈 축구는 1970년부터 1998년까지 월드컵 본선에 한 번 밖에 진출하지 못할 정도로 오랜 침체에 빠졌다. 하지만 루이스 피구로 대표되는 '황금세대'가 등장한 포르투갈은 U-20 월드컵에서 3연속 준우승에 이어 유로 2000에서 4강에 오르며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물론 포르투갈은 우승후보로 꼽히던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에 패해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경험하기도 했다).

피구의 시대는 아쉽게 막을 내렸지만 포르투갈 축구의 전성기는 끝나지 않았다. 피구를 능가하는 재능을 가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는 또 한 명의 천재선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호날두를 중심으로 팀을 꾸린 포르투갈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2년 후 열린 유로 2016에서 개최국 프랑스를 1-0으로 꺾고 최초로 메이저 타이틀을 들어올리는 쾌거를 달성했다.

벨기에로 넘어간 '무관의 제왕'
 
 2일 새벽(한국시각) 독일 뒤셀도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로 2024 16강 프랑스-벨기에 경기가 끝난 후 벨기에 선수들이 응원 온 관중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일 새벽(한국시각) 독일 뒤셀도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로 2024 16강 프랑스-벨기에 경기가 끝난 후 벨기에 선수들이 응원 온 관중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포르투갈이 유로 2016에서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유럽을 대표하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수식어는 벨기에에게로 넘어갔다. 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황금세대를 앞세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8강, 2018년 러시아 월드컵 3위를 기록한 벨기에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경험했다. 그리고 벨기에는 유로 2024에서도 4경기에서 2골을 넣는 빈약한 득점력에 시달리다가 16강에서 탈락하며 '황금세대의 마감'을 세상에 알렸다.

사실 1990년대까지 벨기에는 세계 축구계에서 강호로 인정받지 못했다. 실제로 벨기에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과 같은 조에 속했는데,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2-0으로 이겼지만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고 유상철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1-1로 비겼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브라질에게 패해 16강에서 탈락한 벨기에는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본선 티켓을 따지 못했다.

하지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후 유소년 육성의 중요함을 깨달은 벨기에는 뱅상 콤파니와 드리스 메르텐스, 얀 베르통언, 무사 뎀벨레, 토비 알데르베이럴트 같은 젊은 선수들을 대거 육성했다. 여기에 에덴 아자르와 로멜로 루카쿠, 케빈 더 브라위너, 티보 쿠르투아 같은 1990년대생 선수들이 뒤를 이었다. 그렇게 벨기에 축구는 역사상 최고의 '황금세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12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았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 알제리, 러시아와 한 조에 속한 벨기에는 16강에서 미국을 꺾고 8강에 진출했지만 '영원한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에게 0-1로 패하며 탈락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28년 만의 4강 진출은 좌절됐지만 월드컵 8강 역시 벨기에에게는 역대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이었다. 그리고 벨기에는 2015년 11월 처음으로 피파(FIFA) 랭킹 1위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축구강국 중 하나로 인정 받았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벨기에 축구의 최전성기였다. 콤파니와 베르통언, 메르텐스 등이 전성기 구간을 보내고 아자르, 루카쿠, 더 브라위너 같은 신예들이 팀의 중심으로 성장한 러시아 월드컵에서 벨기에는 우승후보로 불리던 브라질과 잉글랜드를 차례로 꺾고 최종 순위 3위를 차지했다. 특히 일본과의 16강전에서는 0-2의 열세를 뒤집고 후반 추가시간 '버저비터 결승골'을 터트리며 짜릿한 역전극을 만들기도 했다.

벨기에는 러시아 월드컵에서 에이스 아자르가 MVP 2위에 해당하는 실버볼, 4골을 기록한 루카쿠가 득점 3위에 해당하는 브론즈 부트, 쿠르투아가 대회 최고의 골기퍼에게 수여되는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물론 콤파니 같은 노장 선수도 있었지만 아자르와 더 브라위너, 루카쿠, 쿠르투아 등 벨기에 대표팀의 핵심선수들이 여전히 1990년대생이었기 때문에 벨기에 축구의 황금기는 한 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상됐다.

러시아 월드컵 이후 꾸준한 하향세

벨기에는 2018년과 2019년에도 꾸준히 피파 랭킹 1위를 오갔지만 메이저대회 우승은커녕 결승에도 진출하지 못한다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도 있었다. 벨기에는 코로나19로 1년 늦게 열린 유로 2020에서도 8강에서 이탈리아에게 1-2로 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설상가상으로 2010년대 벨기에 축구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아자르는 2019년 레알 마드리드CF로 이적한 후 실망스런 기량을 보인 끝에 76경기에서 7골 9도움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유로 2020에서의 아쉬운 성적 이후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벨기에는 황금세대 중심의 라인업을 고집하며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모로코, 크로아티아, 캐나다와 한 조가 된 벨기에는 모로코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0-2로 패하면서 1승 1무 1패로 승점 4점을 따내고도 3위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본선에 진출했던 대회만으로 계산하면 벨기에의 조별리그 탈락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24년 만이었다.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으로 자존심을 구긴 벨기에는 유로 2024를 통해 명예를 회복해야 했다. 하지만 골키퍼 쿠르투아가 선수단과의 불화 끝에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고 루카쿠와 더 브라위너, 베르통언, 악셀 비첼, 토마 뫼니에 같은 30대 베테랑 선수들이 대거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유로 2024 조별리그에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와 한 조에 속한 벨기에는 카타르 월드컵 때와 마찬가지로 1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3경기에서 2골에 그쳤지만 최소 실점(1실점)으로 루마니아에 이어 E조 2위를 기록한 벨기에는 8강에서 D조 2위가 된 '우승후보' 프랑스를 만났다. 만약 프랑스를 꺾는다면 단숨에 분위기를 끌어 올릴 수 있었지만 벨기에는 프랑스와의 지루한 공방 끝에 후반 40분 베르통언의 자책골이 나오면서 0-1로 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피파 랭킹 2위 프랑스와 3위 벨기에의 빅매치는 세계 축구팬들을 실망시키면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유로 2024를 통해 '황금세대의 건재'를 보여주려 했던 벨기에는 이번 대회 4경기에서 2득점 2실점을 기록하는 실망스런 경기 내용을 보인 끝에 16강에서 탈락했다. '황금세대'로 불리던 선수들의 전성기가 끝나더라도 재능 있는 새로운 선수들이 꾸준히 등장한 프랑스와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 등과 달리, 벨기에는 현재 다음 세대를 이끌 새 에이스 후보가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많은 축구팬들이 벨기에 축구의 슬럼프가 꽤 길어질 거라고 전망하는 이유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유로2024 벨기에 황금세대 16강탈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