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한국축구를 둘러싸고 다시 한번 '정몽규 회장 책임론'이 도마위에 올랐다. 남자축구 대표팀 사령탑 영입 작업을 담당했던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이하 전강위)가 사실상 무너지면서, 사실상 그 배후에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강위는 지난 2월 AFC 아시안컵 부진과 선수단 내분 사태로 전임 위르겐 클린스만(독일)이 경질된 이후, 차기 감독 선임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벌써 4개월이 지났는데도 새 감독 선임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더구나 지난 6월 28일에는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돌연 사퇴했다. 감독 영입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는 많은 이들의 의구심을 자아낸 후 정 위원장과 축구협회 모두 명확한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축구협회는 정 위원장의 사의를 곧바로 수용했으나, 뒤를 이어 또 다른 전력강화위원들도 줄줄이 사퇴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축구협회는 이임생 총괄이사체제로 새 감독 영입 작업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과연 이런 상황에서 감독 선임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해성 위원장의 사임은 축협 내부의 갈등과 밀실행정의 폐해를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표류 거듭하는 축구협회

축구협회는 클린스만 사태 이후 수개월째 방향성을 잃고 계속 표류를 거듭했다. 새 감독 후보군 선정에서부터 국내 감독과 외국인 감독을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반복했고, 결국 양쪽 모두 협상이 불발되며 퇴짜를 맞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동안 축구대표팀은 지난 3월과 6월 A매치에서 두 번이나 임시 감독 체제로 운영되는 파행을 겪었다. 올림픽축구대표팀은 사령탑 황선홍 감독이 A대표팀 임시 감독을 병행하면서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되는 대참사를 맞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전강위의 실제 역할과 권한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강위가 후보군을 선정하고 추천하는 작업만 할 뿐, 실제협상에서는 사실상 감독의 몸값이나 근무조건을 보장할수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외국인 감독들의 협상이 줄줄이 결렬된 것이나 끝내 정해성 위원장이 사퇴하게 된 것도 이러한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한 축구협회 감독선임 과정의 혼선을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뜬금없이 축구대표팀 차기 감독 후보로 '갑툭튀'한 호주 출신 그레이엄 아놀드 호주 대표팀 감독의 등장이다. 아놀드 감독은 이라크 대표팀을 맡고있는 스페인 출신 헤수스 카사스 감독에 이어 또다시 아시아 경쟁팀의 현직 감독이 후보로 거론된 사례다. 두 팀 모두 한국과 함께 3차 예선에 진출했고 특히 이라크는 한국과 같은 B조에 속했다.
 
카사스 감독은 그나마 유럽 선진축구를 대표하는 스페인 출신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아놀드 감독은 축구인으로서의 경력을 대부분 자국 안에서만 보낸 인물이다. 아놀드 감독은 한국축구와 친숙한 거스 히딩크 감독이 호주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시절에 수석코치를 맡은 바 있다.

그런데 우리가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면서 기대하는 것이 선진축구의 노하우와 시스템을 접목시키는 것인데, 호주가 한국보다 피파랭킹이나 축구 수준이 더 높은 국가라고 보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경쟁팀 감독을 대회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빼온다는 것은 가능성도 낮을뿐더러 도의와 상식에도 맞지 않다.
 
이처럼 당초 전강위가 제시한 후보군에는 포함되지도 않았던 아놀드 감독이 갑자기 급부상한 배경을 두고 여러 의혹이 나오고 있다. 결국 전강위와 별개로 축구협회 내부에 감독선임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또 다른 목소리가 있다는 배후설을 나왔다. 만일 아놀드 감독이 후보군으로 점점 급부상한다면 이런 의혹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모든 논란의 중심에는 다시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있다. 정 회장은 2022년 클린스만의 한국대표팀 감독 선임 역시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이전부터 지도자로서는 각종 자질논란에 휘말렸던 클린스만은 당초 한국대표팀감독 후보군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지만, 정몽규 회장과의 개인적인 인연과 신뢰를 통하여 감독직에 올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협회가 세웠던 감독 선임과 검증 프로세스가 무너졌다는 평가다. 정 회장은 자신이 클린스만 영입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부인했으나, 클린스만은 해외 외신과의 인터뷰에도 한국대표팀 감독 선임의 비하안드 스토리를 고백하며 정회장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시인했다. 

정 회장은 클린스만 경질 이후, 새 감독 선임 작업에 있어서는 손을 떼고 전력강화위에 일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정황을 보면 과연 정 회장이 전강위에 과연 실질적으로 전권을 보장하려고 했는지는 의문이다.
 
여론의 비판과 별개로 정몽규 회장은 여전히 축구협회를 장악하고 있는데다 4선 연임 의지까지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강위가 감독 후보를 추천하더라도 최종결정은 상부 기구인 이사회에서 내린다. 결국 정 회장의 의중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만일 정 회장이 원하는대로 차기 감독이 결정된다면 누가 되든 클린스만 사태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

국내파 지도자중 유력한 축구대표팀 차기 감독 후보로도 거론된 홍명보 울산 HD 감독은 지난 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축구협회의 행태를 작심비판하여 눈길을 끌었다. 홍 감독은 축구협회 전무이사를 지내며 협회 내부 사정에도 밝은 인물이다. 또한 홍 감독은 2018년 김판곤(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 당시 감독선임위원장과 함께 파울루 벤투 감독의 영입을 주도하기도 했다.
 
홍 감독은 자신의 축협시절 경험담을 토대로 "당시 저와 김판곤 위원장이 있을 때는, 책임도 있었지만 권한도 있었다. 벤투 감독을 뽑을 때 김판곤 위원장과 대화를 하면서 '이 사람이 정말 한국축구에 맞는 감독인지,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뽑아라. 그리고 그 책임은 나와 김판곤 위원장이 지겠다'는 생각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 감독은 "지금의 축구협회는 클린스만 사태와 이후에 벌어졌던 문제들에 대하여 얼마나 학습이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정해성 위원장이 일을 하는데 뒤에서 얼마나 서포트를 해줬냐고 한다면 협회에서 누구도 해주지 않아서 고립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이례적으로 축구협회를 작심비판했다.
 
덧붙여 홍 감독은 자신이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설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홍 감독은 "협회에서 저보다 경험이나 경력에 더 나은 감독을 데려온다면, 자연스럽게 제 이름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다시 한번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축구계 내부에서도 정몽규 회장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축구지도자협회(이하 지도자협회)가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한국 축구 지도자들을 더 이상 들러리로 활용하지 말라"라고 주장하면서 "정해성 위원장 선임부터 경질까지 과정을 보면서 정몽규 회장의 협회 운영 방식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이고 땜질식인지를 여실히 증명하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도자협회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의사결정은 모두 정몽규 회장이 실질적이고 공식적 최종 결정권자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정 회장은 축구인들에게 책임만 지우고 회장 명의의 어떠한 입장표명도 들을 수 없었다. 정 회장이 더 이상 본인의 치적과 4선 연임을 위해 축구인을 들러리나 소모품으로 활용하고 폐기하는 것을 중단하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현재 축구계에서 정 회장을 바라보는 인식이 어떠한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 팬들이 짊어지게 된다. 또한 새로운 감독이 선임된다고 해도 그 절차와 명분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시작부터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반쪽짜리 감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제는 정몽규 회장이 축구계와 여론의 쏟아지는 비판과 문제 제기에 대하여 합당한 입장표명을 해야 하는 시점이 아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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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감독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 정몽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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