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은 '권력 3부작(추적자, 황금의 제국, 펀치)'을 쓴 박경수 작가와 배우 설경구, 김희애가 합심한 작품으로 일찍이 화제를 모았다. 박경수 작가 특유의 현실감 넘치는 상황 묘사와 은유, 비유가 넘치는 대사가 일품인 한편 일찍이 드라마 시리즈에서 본 적 없는 조합인 설경구, 김희애의 연기 대결이 불꽃 튀긴다.

<돌풍>은 설경구가 분한 박동호 팀과 김희애가 분한 정수진 팀이 펼치는 구기종목 스포츠 경기 같다. 한 골 먹히면 두 골을 넣고 두 골 먹히면 세 골을 때려 넣는 식이다. 그 치열함은 그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다. 나아가 둘 간의 수싸움이 점점 강도와 밀도를 더해 가는데 어디까지 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속 시원할까, 허무할까.

작품은 제목이 주는 느낌을 충실히 따른다. 시종일관 군소리 하나 없이 할 말만 하고 쓸데없다고 느낄 만한 장면도 없다. 등산할 때, 주위 경관을 둘러보기보다 오직 정상을 향해 앞만 보고 가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미드(미국드라마)' 느낌이 물씬 풍긴다. 작품 자체가 다분히 목적 지향적이다. 드라마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보지 않을 수 없고 끝을 봐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다.

숨 쉴 틈 없이 치열하게 
 
 <돌풍> 스틸 이미지

<돌풍>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박동호 국무총리(설경구 분)는 장일준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대통령 독살을 시도한다. 재빠르게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그는 대통령 서거 소식을 기다리는데, 정작 들려온 건 대통령이 살아 있다는 소식. 정수진 경제부총리가 정황을 눈치채고 평소 친분이 두터운 대진그룹 강상운 부회장을 통해 검찰을 움직여 박동호 체포를 시도한다. 박동호는 한발 먼저 여당 대한국민당 대표 박창식을 움직여 위기를 모면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른 박동호는 정수진(김희애 분)을 끌어내리는 한편 장일준의 비서실장이었던 최연숙에게 자신의 치부를 보여주는 한편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 포섭한다. 박동호는 곧 대진그룹의 강상운과 장일준의 아들 장현수에 대한 수사를 자신의 오랜 친구인 이장석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맡긴다. 그러면서 "성역 없이 해 달라"고 청한다.

사실 장일준은 대진그룹으로부터 비자금을 받아왔다. 그를 10년 동안 보필했던 박동호가 그 사실을 파헤치자 장일준은 박동호에게 부패혐의를 씌워 감옥에 보내려 했다. 장일준의 30년 동지 정수진 남편은 사모펀드 대표로 대진그룹의 비자금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결국 박동호는 부패를 뿌리 뽑고 세상을 바꾸려 일을 벌인다.

한국 현대사와 얽히고설킨 이야기
 
 <돌풍> 스틸 이미지

<돌풍>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돌풍> 속 인물들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정치인들을 한데 모아 버무려 재배치한 것 같다. 박동호는 오래 모신 대통령을 시해하려 했고, 정수진은 극렬 운동권 출신의 경제통 국회의원이지만 남편 때문에 부패에 휘말렸다. 장일준은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아들이 부패자금에 연류됐다.

'적폐(누적된 폐단) 청산'은 극 중 박동호의 슬로건이다. 최고의 자리 대통령에 올라 부정부패를 일거에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정이 험난하다. 대의와 신념을 이루기 위해 또 다른 대의와 신념을 저버려야 할 위기에 처하니 말이다. 그의 고민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실 박동호, 정수진, 장일준 등은 모두 진보 진영의 오랜 정치적 동지였다. 하지만 정수진, 장일준이 부패에 연루되고 이를 알아챈 박동호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의 방식은 잔인하고 포악하고 치졸하고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린 지, 뭐가 정의이고 뭐가 불의인지 점점 알 수 없어진다. 

현실 세계라고 다르지 않다.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명분으로 꼭대기에 올라가지만 초심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타락 같은 타협을 하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며 해선 안 되는 일을 하고, 결국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진영을, 정권을, 나라를, 국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과정은 아무래도 좋은가
 
 <돌풍> 스틸 이미지

<돌풍>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돌풍>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비록 픽션일지라도 진보 진영의 민낯을 철두철미하게 또 처절하게 들여다보니 말이다. 정치에 환멸이 생길 정도다. 박동호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고, 그의 곁에는 한마음으로 도와주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는 것인가. 쉽게 가시지 않는 의문이다.

극 중에서 박동호는 대통령이던 장일준을 향해 "당신이 만든 미래가 역사가 되면 안 되니까"라고 말한다. 장일준에게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청하며 내세운 명분은 '새로운 미래'다. 시해시도를 비롯해 물불 가리지 않고 하나의 정의를 위해 여러 불의를 저지른 박동호는 스스로에게 또 그의 심복들에게 "나는 선을 넘었다, 선을 넘은 자에게 한계는 없어"라고 강조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나의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이다"라고 천명한다. 자신이 그린 새로운 미래를 위해 무엇이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암시지만, 당시에는 이 말의 뜻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내세운 희생이 무엇인지는 마지막에야 비로소 밝혀진다. 그는 자기 한 몸을 도구삼아 자신이 꿈꾸던,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세상을 만든다. 그러니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작품에서도 그리고 현실에서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돌풍 한국현대정치사 진보진영 미래와역사 적폐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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