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새 감독 찾기'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최근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 선임 과정을 이끌던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며 그 이유와 사령탑 선임에 미칠 영향에 축구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국내 주요 언론들은 지난 6월 28일 정해성 위원장이 축구협회 측에 전력강화위원장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정 위원장은 올해 2월 국가대표팀 감독이던 위르겐 클린스만의 경질과 마이클 뮐러(이상 독일) 전 위원장의 동반 사퇴로 인하여 공석이 된 전력강화위원장에 임명되어 축구대표팀의 새로운 사령탑 선임 과정을 이끌어 온 인물이다. 협회가 정 위원장의 사표를 수리한다면 불과 4개월만의 사퇴가 된다.

좋지 않은 여론
 
정해성 위원장은 선수-지도자-행정가를 모두 거친 베테랑 축구인이다. K리그 부천, 전남, 베트남 호치민 시티 등에서 프로 감독도 역임했지만, 그의 지도자 커리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코치 시절이었고, 특히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2002 한일월드컵-2010 남아공월드컵 등에서 한국축구대표팀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함께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3년부터는 행정가로 변신하며 경기위원장과 심판위원장, 대회분과위원장 등의 요직을 역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행정가로서의 평가는 썩 좋지않다. 지난 해인 2023년 3월에는 협회가 축구 통합을 명분으로 승부조작범을 포함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축구인의 기습 사면을 결정했던 사건 당시, 협회 주요 임원으로서 동참한 책임을 두고 축구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여론의 극심한 반발로 사면 결정이 철회된 직후, 많은 임원들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했으나 정 위원장은 얼마 지나지않아 새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대회위원장에 임명되며 다시 복귀했다.
 
더구나 지난 2월부터 역임한 전력강화위원장으로서의 평가는 그야말로 최악에 가깝다. 축구협회는 클린스만을 경질하고 무려 4개월이 넘도록 후임 감독을 찾는데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축구대표팀은 3월과 6월 A매치에서 두 번이나 연속 '임시 감독'체제로 일정을 소화하는 촌극을 빚어야했다.
 
그동안 정 위원장은 거듭된 실언과 말바꾸기로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정 위원장은 임시감독 후보로 여러 대안이 있었음에도 이미 올림픽대표팀을 맡고 있던 황선홍 감독의 선임을 강행했다가, 결국 올림픽대표팀이 40년만에 본선진출에 실패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홍명보 울산 HD 감독 등 현직 K리그 감독의 일방적인 국가대표팀 차출 가능성을 경솔하게 주장하다가 프로축구팬들의 격렬한 반발만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타이밍의 문제

정 위원장이 주도한 외국인 감독과의 협상도 줄줄이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던 에르베 르나르, 제시 마치, 헤수스 카사스 감독 등은 모두 영입이 무산됐다. 최종후보군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세뇰 귀네슈 감독은 사실상 이름만 올렸을뿐 애초에 협상할 계획도 없었다는 사실을 정 위원장 스스로 털어놓기도 했다.
 
축구팬들은 정 위원장의 사퇴 자체보다는, 타이밍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황선홍호의 올림픽 진출 실패나, 5월 외국인 감독과의 협상 실패 당시에도 '책임지겠다'던 본인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여론의 비판도 외면해가며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바 있다. 그런데 아직 감독 선임이 마무리되지 않는 시점에 이제 와서 갑자기 물러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다만 한편으로는 전력강화위가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정 위원장의 거취가 감독 선임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축구협회는 현재 재정적인 제약 등으로 거물급 외국인 감독의 몸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감독 선임도 체계적인 프로세스나 원칙보다는, 사실상 정몽규 회장으로 대표되는 수뇌부의 의중에 좌우되고 있다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어느덧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예선 일정이 3차예선 조편성까지 완성된 상황에서 참가국 중 유일하게 한국만 아직 감독을 구하지 못한 상황이다. 클린스만 경질 직후인 2월에는 국내파 감독, 5월에는 외국인 감독 영입에 우선순위를 두고 협상을 진행해왔으나 이런저런 이유도 무산되었다. 6월 현재는 다시 국내파 감독으로 선회하는 듯 했지만 마땅한 후보를 찾기가 힘든 실정이다.
 
또한 28일 <KBS>의 보도에 따르면 차기감독 최종후보군에 포함되었던 김도훈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협회의 감독 제의를 고사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김도훈 감독은 지난 6월 A매치에서 임시 감독을 맡아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대표팀 정식 감독 후보로 떠올랐지만, 대표팀보다 클럽팀을 맡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여 거절했다고 한다.
 
김도훈 감독마저 거절의사를 표시하면서 이제 국내파 감독중에서 협회가 선택할수 있는 대안은 많지 않다. 또다른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홍명보 울산 감독 역시 본인이 고사하고 있는데다 '감독 빼가기'에 대한 프로축구팬들의 반발이 매우 강하다.

3월 임시 감독을 맡았던 황선홍 감독은 올림픽대표팀의 본선진출 실패로 명분을 잃었고 최근 K리그 대전의 감독직으로 복귀했다. 월드컵 대표팀을 맡은 경험이 있는 신태용 감독은 최근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와 2027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외국인 감독 영입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해 보인다. 기본적으로 비싼 몸값 문제도 있거니와, 3차예선이 임박한 가운데 한국축구에 대하여 처음부터 새롭게 파악할 시간이 새 외국인 감독에게는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여기에 자칫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못하는 어설픈 네임밸류의 외국인 감독을 섣불리 데려왔다가는, 오히려 '제2의 클린스만이나 슈틸리케'같은 장고 끝의 악수가 될수도 있다.
 
협회로서는 진퇴양난이 아닐수 없다. 벌써 4개월이나 시간을 지체했고 9월이면 3차예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는데 아직도 새 감독을 구하지 못하며 대표팀이 파행운영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오죽하면 팬들 사이에서는 농반진반으로 아예 월드컵 3차예선까지도 임시감독 체제로 치르고, 본선을 확정하고 나서 정식으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자는 웃지못할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 그동안 정해성 위원장과 전력강화위의 등뒤에 숨어, 정작 곤란한 현안에는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정몽규 회장에 대한 비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점점 축구팬들을 피로하게 만드는 대표팀의 새 감독찾기 드라마는 과연 언제쯤이나 엔딩을 볼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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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성 정몽규 축구대표팀감독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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