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중동 5개국과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B조에 편성됐다.

한국이 중동 5개국과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B조에 편성됐다. ⓒ 아시아축구연맹 홈페이지 캡처

 
한국 축구가 북중미월드컵 3차예선에서 역대 최상의 조편성을 받아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지난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아시아축구연맹(AFC) 본부에서 진행된 대회 3차 예선 조 추첨 결과 한국은 이라크, 요르단, 오만, 팔레스타인, 쿠웨이트와 함께 B조에 편성됐다. 특이하게도 한국을 제외한 5개 팀 모두 중동팀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한국 입장에서는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할 만하다. 한국은 지난 2차예선에서 조 1위를 차지하며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포인트에서 호주를 따돌리고 아시아 톱3 자리를 지켜내 3차예선 톱시드를 배정받았다. 이로써 한국은 3차예선에서 같은 톱시드(1포트)에 포함돼 가장 부담스러운 강적이었던 일본과 이란을 모두 피하게 됐다.
 
또한 이번 조 추첨에서는 각 포트별로 가장 부담스럽다고 평가되던 상대들을 모두 피해갔다. 최대 변수였던 2포트에서 유럽식 축구를 구사하는 호주와 아시안컵 2연패를 차지한 카타르를 피해, 그나마 세 팀 중 가장 약하다는 이라크를 만나게 됐다.
 
3포트에서는 지난 아시안컵에서 한국 축구에 1무 1패의 굴욕을 안겨준 요르단을 만나게 됐지만, 남은 상대가 아시아의 또다른 강호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우즈베키스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크게 아쉬워할 만한 결과는 아니다. 4포트에서도 파울루 벤투 전 한국대표팀 감독을 이끌고 있던 복병 아랍에미리트(UAE)를 피해 전력상 한 수 아래로 꼽히는 오만을 만나게 됐다.
 
약팀들이 배정되는 5포트(중국, 팔레스타인, 키르기스스탄)와 6포트(북한, 인도네시아, 쿠웨이트)에도 경계할 만한 상대들은 있었다. 중국과 북한은 전력상으로는 한국과 상대가 되지 않지만, 정치적 특수성으로 인해 경쟁의식이 강하고 텃세가 심한 원정경기 일정이 부담스러운 상대들이었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한국 축구가 4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을 좌절시킨 신태용 전 한국 대표팀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이들을 모두 피하고 팔레스타인과 쿠웨이트를 만나게 된 것은 한국 축구로서는 천운에 가깝다.
 
FIFA 랭킹에서 한국은 22위로 B조 6개국 중 가장 높고 나머지는 모두 50위권 밖이다. 이라크(55위), 요르단(68위), 오만(76위), 팔레스타인(95위), 쿠웨이트(137위) 순으로 따르고 있다. 물론 피파랭킹이 전부는 아니지만, 한국과 다른 팀들간의 전력 차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대 전적에서도 모두 한국이 우위에 있다. 한국은 이라크를 상대로 통산 9승 12무 2패를 기록했다. 요르단은 3승 3무 1패. 오만에는 4승 1패, 쿠웨이트에는 12승 4무 8패다. 팔레스타인과는 아직 A매치를 치러보지 못해이번 3차예선이 첫 맞대결이다.

아시안컵의 악몽, 감독 공백... 방심은 금물
 
물론 한국 축구로서도 마냥 방심은 금물이다. B조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상대는 요르단과 이라크다. 요르단은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한국보다 떨어지지만 만날 때마다 쉽지 않은 경기를 펼친 바 있다. 특히 지난 2월 카타르 AFC 아시안컵 4강전에서 손흥민-이강인 등 역대 최고의 멤버로 구성됐다는 한국을 압도하며 0-2의 완패를 안긴 것은 두고두고 흑역사로 남았다. 물론 당시엔 한국 축구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무전술과 선수단 내분 등으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이라크 역시 상대 전적상 우위지만 맞대결의 절반 이상이 무승부였을만큼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더구나 이라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스페인 출신 헤수스 카사스 감독은 최근까지 한국 축구 대표팀 차기 사령탑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인물이어서 기묘한 만남이 성사됐다.
 
3차예선의 최대 변수는 상대팀의 전력보다도 오히려 장거리 원정에 따른 이동 부담과 중동 특유의 침대축구(시간 지연 플레이)가 될 전망이다. 5개국 모두 중동에 위치해 한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비행기 직항편이 없기에 원정경기를 치를 때마다 12시간 이상 이동이 불가피하다. 홈과 어웨이 경기를 번갈아 치러야 하는 일정이 되면 선수들이 시차 적응문제로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수 있다.
 
상대팀들이 모두 한국과 전력 차가 큰 만큼, 한국을 상대로는 라인을 내리고 수비적인 플레이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한국이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지 못하고 오히려 역습이라도 당한다면 어김없이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시간을 지연하려는 악명 높은 침대축구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들어 FIFA가 추가시간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으로 인플레이를 강조하는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중동 특유의 교묘한 심리전과 도발은 항상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C조 6차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 손흥민이 선취골을 넣은 이강인과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C조 6차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 손흥민이 선취골을 넣은 이강인과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그 어떤 변수에도 불구하고 한국 축구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이상적인 조 편성을 얻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한국이 중동 원정을 껄끄러워하는 만큼이나 상대팀들도 한국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어차피 마찬가지다. 4년 전 카타르월드컵 최종예선처럼, 오히려 서로를 너무 잘아는 중동팀들끼리 물고 물리는 혼전을 벌이다가 한국이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이번 대회부터는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본선 티켓이 8.5장으로 늘어났다. 한국은 3차예선에서 상위 2위 이내에만 들면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짓는다. 설사 3차예선에서 월드컵에 직행하지 못하더라도 4위 이내에만 들면 '패자부활전'격인 4차예선(각 조 1위가 월드컵 본선행), 대륙간 플레이오프(PO)까지 두 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다. 물론 한국 입장에서는 무조건 3차예선에서 조기에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짓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이 정도로 문턱이 낮아졌고, 이 정도로 수월한 조 편성을 얻고도 월드컵에 나가지 못한다면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이 있는 B조와 비교하면 A조와 C조의 분위기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C조의 일본은 톱시드팀이 다름없는 호주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까지 함께 '죽음의 조'에 속하게 돼 울상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가간 감정이 좋지않은 중국과의 원정경기도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도 최종예선 첫 진출부터 죽음의 조에 속하게 돼 험난한 행보가 예상된다.
 
A조는 이란-카타르의 2파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UAE-우즈베키스탄의 다크호스 2중이 도전장을 던지는 형국이다. 2약으로 꼽히는 북한과 카자흐스탄이 얼마나 다른 팀들의 발목을 잡아주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줄지가 관건이다. 벤투 감독이 한국에 이어 UAE를 다시 한번 월드컵 본선 진출로 이끄는 매직을 보여줄지도 관심사다.
 
걱정거리는 항상 내부에 있다. 한국 축구는 3차예선에 앞서 먼저 감독 선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축구협회는 지난 2월 클린스만의 경질 이후 벌써 4개월이 넘도록 후임 감독을 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한국 축구가 다시 월드컵에 나설 수 있는 최상의 전력에 더해 최상의 조편성까지 모두 갖춰진 지금, 가장 분발해야 할 대상은 바로 축구협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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