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포스터.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포스터. ⓒ 와이드 릴리즈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문제작 <아사코>로 명성을 떨친 카라타 에리카는 2020년 새해 벽두에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아사코>에 함께 출연해 훌륭한 연기를 펼친 바 있는 히가시데 마사히로와 2017년쯤에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일파만파 퍼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 그녀의 나이는 만 18세였다. 둘의 나이 차는 10살 가까이 났고 말이다.

이후 카라타는 두문분출하며 소속사 사무실에서 지내다가 이듬해부터 조금씩 활동을 재개했다. 와중에 그녀와 동갑내기 절친 배우 이모우 하루카가 전작을 함께한 이시바시 유호 감독에게 그녀를 추천했다. 이시바시 감독은 카라타와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인터뷰하며 그녀를 두고 캐릭터화해 각본을 썼다.

그렇게 나온 영화가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로 카라타 에리카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70여 분으로 상당히 짧은 편이고 등장인물도 많지 않으며 사건이라 할 만한 게 없다시피 한다. 그런가 하면 카라타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탄생시킨 영화 속 캐릭터가 동시대의 동년배들을 위로한다.

일본 경제가 최근 들어 급속도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쌓인 젊은이들의 절망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경제 활황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 전혀 다른 문화를 만들고 마인드셋을 새롭게 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여전히 적절하다. 그리고 한국에 개봉하는 선택도 유효하다.

조용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그녀의 사연

이이즈카는 편의점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다. 그녀는 말수도 적고 낯도 가리는데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하다. 엄마한테도 숨기는 게 있는 것 같고. 그래도 점장의 야간 근무 부탁은 빼지 않고 잘 들어주니 조용하게 신뢰가 쌓이는 중이다. 점장 입장에서 신입이 뽑히질 않으니 이이즈카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중학교 동창 오오토모를 만난다.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던 것. 그들은 집에 같이 가고 우연히 길에서 만나기도 하고 같이 볼링도 치고 술도 마시고 오오토모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도 한다. 오오토모는 파견직으로 일하고 있고 중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이곳에 와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오오토모의 조용하고 진심 어린 위로에 마음을 여는 이이오카, 그녀는 사실 취업에 성공했었지만 적응에 실패해 도망치듯 퇴사했다고 한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고 엄마한테도 말하지 못한 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에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동반자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가 줄 수 있는 것

극 중 이이오카는 곧 극 밖의 카라타 에리카다. 신상을 뒤흔들 일련의 일을 겪고는 아무한테도 터놓을 수 없는 채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런가 하면 영화 안팎의 그녀들은 우리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해 봤을 테니 말이다. 혹여 그런 경험이 없다면 그것대로 좋은 것이고.

영화가 아닌 TV 단막극처럼 아니 그보다 더 별 이야기 없이 소소하게 흘러가는 이이오카의 이야기는 오오토모와 엄마의 '괜찮아' 말 한마디에 달라진다. 극 중 그녀의 마음도 풀리고 극 밖의 우리의 마음도 풀린다. 사실 괜찮다고 말하는 건 무책임한 말일 수 있다. 뭘 해 주는 것도 아니고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그녀의 상황에서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는 모든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무슨 말도 아닌 정확히 그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 누군가 뭘 해 줄 수도 없고 방법을 가르쳐 줄 성격의 고민도 아니니까. '괜찮아'는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회사를 나왔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말인 것이다. 이후에는 그녀의 몫이다.

누구나 이 영화의 진심에 위로를 받을 만하다. 영화가 카라타 에리카의 진심을 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나아가 관객에게도 위로를 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그 또한 영화의 이유일 테니 괜찮다. 내가 보고 좋았으면 되는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 추천해 줄 수 있으면 되는 것이며 그 또한 보고 좋으면 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아침이오면공허해진다 카라타에리카 절망 위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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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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