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포스터 이미지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포스터 이미지 ⓒ ㈜영화사 오원


영원한 것은 없다. 특히나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세워진 건물들, 그 건물들이 밀집된 도시 공간이 그렇다. '도시'라는 공간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던 인간이라는 종이 자신을 중심으로 재편한 공간이기에 애초 인공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다. 

수십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도시라는 공간은 인간 문명의 정수이자 거대한 개별 삶들이 소용돌이치며 고유의 순환을 형성하는 하나의 '오케스트라'와 같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그 공간에 인공의 '유토피아'를 창조하려 끝이 없는 노력을 기울여 왔고, 도시의 구성원과 개별 구역은 유기적으로 연계될 때에만 제 기능을 발휘하며 지속할 수 있었다.

독재 권력의 변덕으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도시가 그 권력의 소멸과 함께 수명이 다해 쇠락한 사례는 숱하게 찾을 수 있다. 반면에 삶 그 자체가 어우러지며 입지 조건을 충족한 곳들은 '영원불멸'하진 않더라도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현재까지 연속되는 예시가 흔하다. 즉 오래가고 성장하는 도시 공간에는 다 억지 욕망이 아니라 순리와 순환이 작동하는 것이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도 도시화 비율이 압도적인 곳이다. 국토가 그리 크지도 않은데 2/3 이상이 산악지역이라 대규모 인구가 거주하기 불편한지라 그중에도 극히 일부만 과밀한 인구가 몰려 있다. 자연히 한국의 도시풍경은 고층 건물과 대단위 아파트 단지, 자동차가 빽빽하게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도로와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상업 시설들이 연상된다. 풍경에 여유나 개성이 약할 수밖에 없다. 종종 다른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무서울 만큼 닮은 꼴의 풍경을 목격하곤 한다. 획일화된 경관과 단일한 목적에 치중한 도시 경관은 해당 도시에 업무적으로 들를 일이 없다면 발길을 끊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로 작동한다. 반대로 한 번 들르면 다시 방문하고픈 도시에는 고유의 '색깔'과 '개성'이 있음을 문득 깨닫기도 한다.
 
한국의 도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편의와 행복보다는 위로부터 내려 먹이는 용도에 따라 개편되어 왔다. 돈이 돌고 사람이 모여들면 알아서 낙수효과처럼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전제가 수반된 사고다. 그래서 대공장이나 공공기관 유치, 교통 중심지가 되는데 사활을 거는 반면, 소소한 개별의 삶을 충족하는 데에는 무관심했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고 반영하는 번거로운 작업 대신 소수 엘리트의 식견과 거대한 기획 위주로 독주하는 방식이 너무나 당연시되었다. 그런 일방통행의 결과가 천편일률적인 삭막한 한국 도시의 현재를 규정하는 셈이다. 뒤늦게 그저 외국 대도시의 겉으로 보이는 성세가 알고 보니 해당 공간의 고유한 단면을 오랜 시간 공들여 가꿔내며 조화를 추구한 결과물이란 진실을 깨닫고 또다시 허겁지겁 이를 벤치마킹하려 하지만, 날로 먹는 데에는 한도가 명확할 수밖에 없다.

역사의 현장이던 인천 원도심의 현재 갈등과 쟁점을 풀다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스틸 이미지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오원

 
대다수 한국의 현대 도시공간은 동시기에 비슷한 경로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겪는 문제 역시 공통되는 분모가 지배적이다. 개별 특수성이 엄연히 있지만, 그런 부분만 빼고 따져볼 때 문제와 대안 역시 크게 차이나지 않는 셈이다.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 가운데 도시의 흥망도 가파른 편이다. 그런 시류와 함께 유지와 보수를 끝없이 진행해야 하는 도시 공간의 특성상 재개발은 필수 요건이 된다. 어느 도시나 재개발을 통한 부흥과 영속을 꿈꾼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를 뒤덮은 모두의 욕망, 부동산 가치 증대가 그런 재개발의 지상목표로 설정되기에, 과거의 시행착오를 성찰하며 개선하기보다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남들이 가는 방향에 늦을까 봐 숨을 몰아쉬며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부동산 가치 증가가 신앙처럼 떠받들어지는 상황에서 도시의 고유한 역사성과 가치는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다. 전국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벌어지는 실시간 상황이다.

인천은 서울과 부산에 이은 3위의 대도시인 동시에, 근현대사에서 여러 격변이 일어났던 역사 공간이기도 하다. 부산이나 인천, 군산, 목포 등의 도시는 현재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근현대 시기에 급속하게 팽창하며 수많은 '스펙터클'을 경험한 곳들이다. 특히 인천은 한국 최초의 철도(경의선)와 고속도로(경인고속도로)가 만들어진 곳이자, 지금도 인천국제공항과 항만으로 세계와의 창이 되어주는 공간이다.

그만큼 신문물의 도입 통로이자 원하지 않는 강제 개방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런 기억이 깃든 핵심 공간이 현재 인천광역시의 '원도심'인 과거 제물포항과 중구 일대다. 다큐멘터리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는 해당 공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구시가지의 역사를 간직하고 미래의 활력으로 삼으려는 이들의 분투를 기록하고 비슷한 고민을 품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려는 목적의식으로 만들어진 작업이다.

인천을 무대로 활동하는 클래식 챔버가 근대 인천이 품은 역사적 에피소드를 차례로 소개하며 공연을 펼치는 장면으로 영화는 개시된다. 관객은 진행자의 해설을 통해 개별 레퍼토리의 제작 의도와 압축된 함의를 인지하며 공연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역사책에 실린, 기억이 가물가물 희미해진 근대 한국사의 격동적 사건들이 연이어 소개된다. 최초의 강요된 근대적 조약이 외세의 무력에 의해 체결된 곳이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한국전쟁의 격전이 벌어진 공간의 사연이 절대 평범할 리 없다. 일제의 병탄 야욕과 이에 저항하는 필사적 방어 가운데 자리했던 대한제국 최초의 서양음악 편곡과 러일전쟁 패배에 분개한 러시아의 군가, 그리고 일제강점에 대항하던 독립지사들이 만든 전통과 근대가 어우러진 악곡이 모르고 들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성으로 전달된다.
 
초반부는 현재 인천 구도심 재개발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의 구도를 풀이하는 데 할애된다.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인 '도시 재개발'이 현재 어떻게 개념화되고 있는지, 재개발의 부정적 면모에 반대하는 이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도시재생'과 어떤 차이인지가 막개발 시도와 저지 운동의 충돌을 상징하는 풍경들과 함께 해설된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도시재생 운동가와 단체 대표들의 증언은 물론, 이웃들이 전부 떠난 재개발 예정구역에서 살벌하게 빨간색으로 건물 벽마다 도배하듯 붙은 '철거'와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 이미지에 파묻혀 살아가는 노부부의 살아온 이야기까지 망라된 해설이 늘어지지 않으면서도 쟁점을 이해하기 쉽게 지원한다. 관 주도로 싹 다 갈아엎은 자리에 새 판을 짜는 일방통행이 '재개발'이라면, 핀셋으로 섬세하게 기존 공간의 한계만 치료하는 방식이 '재생'이라는 구도다.
 
구도심이란 캔버스에 미래를 그리는 이들과 영감이 되는 사례들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스틸 이미지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오원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의 영욕이 동시에 깃든 문화유산, '적산가옥'을 개조한 대안적 복합문화공간들이 마치 가이드 투어를 돌 듯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관공서나 공공기관이 자리했던 곳, 오랫동안 대를 이어 가족들이 고유의 작은 역사를 형성해온 단독주택들이 낡았다고 해서 무작정 철거되지 않고 수명을 연장하며 현재 도시의 명소로 거듭나는 장면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관객에게 전염되는 순간들이다.

일본에서 고택 애호가들이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와서 북적거리는 이야기, 과거 해당 가옥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이들이 이미 예전에 사라졌을 줄 알았던 '고향'을 찾아 감사하던 이야기, 자신이 청춘 시절 희로애락을 경험한 뜻깊은 자리이기에 자진해서 챙기는 이야기까지 새롭게 재생된 공간들은 나도 저기 가보고 싶다는 충동을 촉발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도시재생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비록 공간의 유지와 지역 부흥을 위해 관광이나 상업적 수익을 고려하지 않을 순 없지만, 해당 지역에서 삶을 이어가는 지역 시민들이 소외되면 공염불이라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밀려나거나 배제되는 순간에 외지인의 발길을 추동하던 동력 역시 수명을 다한다는 것이다. 머리를 탁하고 치게 만드는 대목이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경치에 혹해 찾아오는 게 출발점이 되지만 계속 사람들의 발길을 잇게 해주는 건 공간이 품은 풍성한 개성과 사연의 힘일 테다. 그런 지속성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 고민은 계속된다.
 
근대도시 인천의 색깔은 개항과 일제강점기라는 그림자와 분리될 수 없다. 마치 중남미 각국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라는 대항해시대 초창기 강자들에 의해 고유의 선주민들이 정복당해 고초를 겪긴 했지만, 오늘날 라틴아메리카라는 통합력을 형성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언어와 문화의 뼈대를 공유하는 특질 또한 획득한 점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를 규정한 일본의 근대 도시계획과 그 후일담이 인천의 미래에도 영감이 되지 않을까? 그런 아이디어로 제작진은 일본으로 향한다. 오카야마현 쿠라시키와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에서 감독과 스태프들은 도시재생 활동가와 그들이 활약하는 거점 공간들을 순례하며 기록해나간다.
 
그곳에는 우리가 일본영화 속에서 종종 목격하곤 하는 아기자기한 풍경들이 가득했다. 지역의 입지조건과 특성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대규모 변화가 아니라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하나씩 오랜 세월에 걸쳐 도시 속 '마을'처럼 조성해나가는 도전 사례가 실제로 상처가 치료되어 새 살이 돋아난 것 같은 거리 풍경과 실적으로 입증된다. 아마 국내에서 도시재생 문제를 고민하는 활동가들에겐 가장 솔깃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대목일 것이다.

10만 조금 넘는 지방 소도시에 경사가 심한 구도심 지형 탓에 대규모 쇼핑몰이나 백화점이 들어오기 힘든 입지는 전화위복으로 기능한다. 활동가와 주민들의 협력 덕분에 보기 드문 소상인들의 개별 점포가 어우러진 상가지구가 유지되며 획일적이지 않은 개성을 잔뜩 품고 있기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인천은 물론 한국의 도시마다 재개발에 개입하는 특정 공기업이나 대형 건설사 대신 지역 출신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주민들과 조화를 이뤄 진도가 느려지더라도 착실하게 설정한 장기계획 덕분이다. 그림 같은 풍경은 이러한 계획이 있었던 덕분에 구현될 수 있었다.
 
획일적 개발에 대한 분노보다 모범 사례에서 얻는 영감을 선택한 영화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스틸 이미지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오원


사연을 가득 품은 원도심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과 공간 소개 이후, 일본의 앞선 사례를 비교해가며 우리도 해볼 수 있겠다는 긍정의 기운을 잔뜩 충전시킨 영화는 다시 인천으로 귀환해 남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특색 있는 분야별 공간과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사연이 연달아 등장한다. 그저 오래된 비슷한 구축들을 활용한 닮은 꼴이 아니라 공간을 운영하는 이들의 철학과 시각을 선별해 참고사례로 활용하라는 제작진의 목소리로 들린다. 건물을 싹 신축하는 것보다 더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걸 감수하며 이 공간에서 무엇을 목표하고 꿈꾸는지 인터뷰 상대들의 표정은 진솔하고 계획을 이야기할 때 말투는 희망에 차 있다. 어떤 이는 최대한 원래 형태의 유지를 지향하고, 어떤 이는 미래와 과거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존재감을 선호한다. 미묘하게 확실히 '선'이 다르긴 하다.
 
문제는 해당 분야 활동가가 아니라면 그 미세한 차별점보다는 결국은 사례 소개 나열로 이해될 측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감독은 자신이 목격하고 기록한 원도심의 희망적 사례 모델을 최대한 꾹꾹 압축해 하나라도 더 소개하고 싶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아직 보통의 관객이 그런 공감을 자기 것으로 체화하려면 과식은 금물일 테다. 그래서 일본에서 다시 인천으로 돌아온 후 개별로는 흥미롭고 참신한 사례들이 전반적으로 나열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머릿속에서 한 번에 처리 가능한 데이터 용량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는 목적의식이 명백하지만,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일정한 흐름, 도시 공간 내에서 강요된 위로부터의 개발에 의한 약자들의 피해를 강조하며 현장에서 함께 하는 작업과는 다른 경로를 꾀하려는 작업이다. 근래 '건축' 혹은 '공간' 다큐멘터리로 대충 통칭하는 관찰자 시선이 강조된 경향의 변주라 해도 좋을법하다.

요즘 도시 공간에서 인스타그램 사진 게시 용도로 인기를 끄는 '브루탈리즘' 디자인의 카페나 레스토랑 공간, 시멘트와 콘크리트 골조가 거칠게 노출되거나 오래된 티 팍팍 나는 인테리어의 유행과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의해 도시의 시간성을 응축한 공간들이 어떻게 다른지, 그 차별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하나하나 풀이해가며 우리 주변의 그저 무심코 지나치던 공간과 장소들을 돌아보게 해주는 작업이다. '시민의 교양'이자 토론 교재로써 상당한 유용성을 지닌 영화가 본 작품에 담긴 풍성한 자원을 지금 필요로 하는 이들과 제때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작품정보>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A Tale of Old Cities
2021│한국│다큐멘터리
2024.06.19. 개봉│82분│전체관람가
감독 조은성
제작 로그필름
공동제작 U-KAS Energy
배급 ㈜영화사 오원
아주오래된미래도시 조은성감독 도시재생 인천 도시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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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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